2009년은 새롭게, 희망차게 맞고 싶었다.
하지만... 나만 그랬나보다.
12월 31일 점심을 먹고 있을 쯤 전화가 왔다.
막내 시동생에게.
그동안 손이 마비가 왔다가 이제사 풀려서 전화를 했다나?
너스레를 떨며 새해 복 많이 받으란다.
그 말에 난, ‘삼촌은 이제라도 마비가 풀렸어요? 난 아직 마비가
유지돼서 전화 할 생각도 못했는데... 삼촌도 새해 복 많이 받아요.‘
맞장구를 쳐줬다.
시동생의 전화는 시어른들 전화보다도 내겐 어렵다.
윗사람이 돼서 모범이 돼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늘 부끄럽다.
1월1일, 절묘하게도 팔순을 바라보시는 어머님의 생신과 겹친 날이
되었다. 꼭 내려가고 싶었다.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나...남편은 무능력한 인간이었다.
‘알았어...’ 이 말이면 모든 것이 통과다. 더 물고 늘어져봐야 내 혈압만
올라가고 말 일이었다.
제 형제들과도 맨 정신에 전화통화 조차 회피하고 마는 인간.
시동생이 말을 빙빙 돌리며 어쩔거냔다.
어떤 대답을 해도 못가기는 마찬가지, 불효막심한 며느리와 책임감 없는
형수의 낙인은 못 벗어 날 일이었다.
요즘처럼 불경기에 어렵지 않은 사람 누구라고 수금이 안됐어요, 늘 쓰던
핑곌 되기도 면목 없었다.
정말 성의와 책임감과 도리를 모르는 인간이 따로 있는데 언제나 죄인은
내가 되고 마는 것이 이제는 지치지만... 함께 살고 있으니, 그런 인간
사람 꼴 못 만든 내 죄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시동생에게 웃으며 말했다.
“삼촌이 1차로 다녀와요. 우린 다음에 내려갔다 올게요. 한번 몰려왔다
가는 것보다 나눠서 다니는 것도 좋잖아요?“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란 어느 가수의 노래가 뇌리 속을 헤집고
다녔다. 끈질긴 시동생과의 전화통화를 죄인처럼 받고 나서 중간에 자리를
떴던 식탁으로 돌아왔지만 식욕은 사라지고 말았다.
밥 잘 쳐들고 TV 앞에 자리한 남편이란 웬수를 보니 그나마 먹었던 밥알까지
곤두설 판이다.
한 달 생활비로 백만원도 힘겹게 주던 인간이 지난달에는 8만원을 생활비라고
주었다. 그리곤 말일을 기약하더니 또 새달 2일을 얘기했었다.
무능력한 인간이 가정 꾸리고 살라니 저도 힘겹겠지, 이해할 수 있으면
하려고 했다.
시댁 행사에 참석하지 못할 때, 매번 내가 곤혹을 치루긴 했지만, 제 집안
일인데...저도 사람이라면 마음이 괴롭겠지...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난 매일 하루같이 이해만 무제한으로 할 수 있는 마음이
한량이 아니기에 번번이 혼자 괴롭고 힘겨워하다가 다시 그런대로
살아가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될 수 있으면 얼굴 마주 칠 일을 피했다.
자빠져있던 인간이 오후 5시가 되니 겨나갔다.
그 인간이 1월1일 새벽 2시가 넘어서 들어왔다.
또 술이 떡이 되었다.
그리곤 한다는 말이
“아빈엄마! 우리 아침에 시골 내려가자!” 혀가 말린 소리를 한다.
조용하고 자라니까 또 한다는 말이,
“그치?! 가기 싫다는 거지?!” 개소리를 지껄인다.
새해를 새로 맞기는 애 저녁에 글렀다.
아침나절까지 술이 깨지 않은 인간은 간간히 술자리에서 주고받은
얘기를 재생테이프 돌아가듯 주절거렸다.
상대가 있는 것처럼 낄낄거렸고 화도 냈다가 누군가를 타이르듯
씨부렁거렸다.
그런 놈에게 떡국을 끓여주고 싶지 않았다.
있던 국에 김치만 내서 아침을 줬다. 친정 동생들에게 아침부터
전화가 왔지만 아이들에게 대신 받으라고 했다.
벙어리도 입을 닫고 살 수 없게 만드는 인간에게 새해 아침부터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아들한테 학교와 학원을 오갈 때 왜 곧장 집엘 안 오냐고
잔소리를 늘어놓던 인간이었다. 건성으로 대답만 한다고 잡던 인간이었다.
공부할 때 계획도 안 세우냐고, TV 앞에만 있지 말고, 게임만 하지 말고
책 좀 보라고 했던 주둥이를 갖고 있던 인간이었다.
마누라 없으면 자식에게 버림받을 거라고 걱정하던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이 하는 짓거리가 늘 일 끝나면 곧장 집엘 오지 못했고
밥 먹고 온다고 하면 술만 처먹고 꼬박 굶어서 배고자 죽겠다고 술주정을
해대던 인간이 제 엄마를 챙기지 못했고 어쩌다 찾아가도 동네 돌아다니며
술이나 푸러 다니곤 했던 인간에게 난 정말 그 뇌 속에 어떤 생각들을
담고 사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 질문에 역시나 그 주둥이에서 나온 말이
“알았어... 그만해.” 였다.
“뭘 알아? 뭘 그렇게 잘 알아?”
싸울 작정이었다. 나 역시...
“오늘은 그만하고 할 말 있으면 내일 해라...”
지각 있는 인간처럼 그런 말을 했다. 오늘은 그만하고...?
새벽 2시 넘겨 들어와서 한참을 떠들고 자빠져 잔 놈이 그걸 말이라고 했다.
“새해를 동해를 가서 뭐를 어쩌려고 했던 사람이 새벽까지 술을 마셔?
도대체 그 술은 뭐로 먹는 거야?“
그리고 시작된 싸움이었다. 쪽팔릴 것도 없었다.
그날 아침 내 마음이 그랬다.
왜 매일 나만 참아야 하지? 언제까지 참아야 하지?
뭐가 낫은 것이 있어야 보람을 느끼지...
처음부터 지금까지 저는 우리를 먹여 살렸다고 주둥이 놀렸는데
그 뻔뻔함에 이제 진저리가 나고 말아서...
더는 참을 수 없는 2009년 1월1일 아침이었다.
우리 부모님이 내 부모님이란 죄로 해준 것이 얼마고 앞으로 더 얼마를
더 해야 하는 건가, 그것도 죄스러운 아침이었다.
자식들만 아니면... 정말 목을 매고 싶은 아침이었다.
자식들만 아니면... 어느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아침이었다.
그러면서 또 ‘내가 왜?’ 억울한 아침이었다.
내 끈질기고 서슬퍼런 잔소리에 그 인간이 이제 입버릇처럼
붙어버린 ‘씨발년’을 운운했다.
나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 관두자고 했다. 재수 있는 인간 혼자 살라고 했더니
‘너란 년은 그렇지!’라고도 했다.
그 놈이 고래고래 소리칠 때 나도 발악으로 대들었다.
난 내 몸 구석구석에 암세포가 뿌리내린 것이 아닌가, 몸이 고통스러울 때가
많아졌다. 하지만 병원에 갈 마음 절대 없다. 다신 수술 침대에 몸을
눕힐 마음 없다.
그 마음이 내 입으로 나오고 말았다.
“너란 인간, 내가 암으로 죽어가도 좋다고 춤 출 놈이야!”
“씨발년아! 소설을 써라”
그 더런 놈이 또 문 앞에서 남들 들으라고 떠들었다.
“그래! 이 개새끼야!!! 난 소설을 쓴다!!! 씨발 놈아. 내가 뒤지고 나도
네가 그 말이 나오나 봐라! 거지같은 새끼!“...
차마 날 때리지 못하고 나간 인간이 나가기 전에 내가 있던 안방 문을 걷어찼다.
비열한 놈이 교묘하기까지 하다.
차라리 때리지... 난 맞을 생각이었으니까...
고스란히 맞을 생각이었으니까...
미칠 것 같다.
어쩜... 이러다가 내가 그 놈을 먼저 죽일지도 모를 것도 같다...
기약 없고 가망 없고 희망도 없고...
매일 이런 말 하는 자체도 궁상스럽고...
이틀을 꼬박 괴로워했다.
이틀을 굶고 누워있었다.
남편이란 놈이 병 주고 약 주듯...죽을 사다가 디밀었다.
평소와 달리 아이들 먹을 것도 하지 않았다.
기어 다니는 한이 있어도 아이들 챙겨먹이던 내가...
냉장고에 먹을 것도 사다 넣지 않았다.
갈 때까지 가고 싶은 심정이다.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