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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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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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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남지 않았따.


BY 솔바람소리 2008-12-30

“나이가 들면 들수록 모든 게 다 귀찮아져요.”

 

이제 12살이 되는 딸이 한 말이다.

언젠가 아들에게,

 

“네가 몇 살이지?”

 

했더니 그 질문에 잠시 침묵했던 아들이 한다는 말이,

 

“저도 이제 나이가 많아서 헷갈려요...엄마, 제가 몇 살이지요?”

 

하며 오히려 내게 물었다.

골똘히 생각했던 내가 대답을 해줬다.

 

“내가 널 94년도였던 24살에 낳았으니까, 15살이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내 나이는 감사하게도 년도와 뒷자리 숫자가 똑같이

가고 있어서 앞자리만 잊지 않으면 까먹을 일이 없다.

요즘 TV와 담쌓고 사는 내가 즐겨보던 시트콤을 안보는 대신 주변에서

내게 유머를 선사하고 있으니 감사할 일이지...

7살 차이나는 막내 동생과 며칠 전 통화했을 때... 무척 피곤한 목소리가

걱정되어 공부 욕심도 좋지만 잠 좀 자면서 쉬엄쉬엄 하라니 한다는 말이,

 

“누나, 제가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봐요. 전엔 며칠 잠을 못자도 견딜만 했는데

요즘은...힘들어요.“ 한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것도 기술이지,

슈퍼타이 앞에서 거품 푸는 것도 예술일겨.

고성능 마이크 앞에서 도레미파솔~ 읊어보는 것도 용기다...

 

동생의 말 앞에서 내 입에서 어이없는 웃음이 실실 흘러나왔다.

 

“그럴 거다. 많이 살았지... 언젠가 아빈이가 나이를 많이 먹으니

제 나이도 헷갈린다던데, 나이 많은 니그들 둘이서 한번 오래 산 고단한 삶을

의논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흘러나오는 웃음을 잔뜩 묻혀서 동생에게 말했더니 깔딱 뒤로 자빠지게

웃어대더니 “아빈이가요? 그놈이...캬~ 할 말이 읎네.” 한다.

 

하긴, 내가 중학교 입학하니 초등학생이 젓내 났었다.

고등학교 입학하니 어른들이 모두 만만해 보였었다.

20살 넘고 삼십이 가까우니 세상 갖잖게 보이더만 벌써 40이 낼모레다.

그런데 우습게도 살면 살수록 세상이 두렵게 느껴지고 있다.

연세 지긋하신, 자식들 모두 출가시키며 깊게 패인 주름을 훈장처럼

달고 계신 노인 분들이 존경스럽다.

그들 중 누군가 내게 말했다.

 

“젊을 때가 좋은 거야... 내가 그 나이만 됐어도...”

 

부러운 듯...

내 나이만 돼도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듯, 하셨던 말씀의 여운이

지금의 나를 나태할 수 없게 만든다.

무뎌진 머리를 느끼며, 허술하다 못해 나사가 헐거워진 듯 간당간당한

뇌를 느끼며 때론 참담할 때도 있지만...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뜻대로 되지 않아도... 따라주지 않더라도... 녹슨 머리를 움직이려 노력한다.

재활하는 심정...이랄까...

10번을 마셨던 크고 작은 전신마취 약 때문일까...

폭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일까...

나이 때문일까...

아니면 이 모든 탓들이 나를 집어 삼키려는 것일까...

깜빡이는 것들이 많아진다. 알고 있던 것들까지 새롭게 느껴질 때가 많아진다.

그러면서 또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를 탓하고 만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나를 느끼고, 지구력이 부족한 나를 느낀다.

무능한 나를 느낀다. 그것들에 맞서려는 나를 느낀다.

 

오늘 오전이 몇 분 남지 않았을 때, 한 동네지만 조금 떨어져 살고있는

결한이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피자를 사려는데 먹겠다면 한판 더 사려고 한다나?

난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다치 않는다며 ‘땡큐’를 외쳤다.

얼마 후, 아래로 내려오라는 말에 집에 있던 채로 점퍼만 걸치고

내려갔더니 곱상한 결한이 엄마가 추위에 코가 딸기코가 돼서 서있다.

남편이 있어서 올라오란 말을 못한 것이 미안하다니 자신도 빨리

가야 한단다. 그러면서 한마디 한다.

 

“나, 오십 견 인가봐. 어깨가 결려서 죽겠어...병원에서 침 맞는데도

듣지도 않아...“

 

하긴, 나도 벌써 삐걱거리는 곳이 늘어나는데 나보다 6년 더 살고있는

결한이 엄만들 오죽할까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섭섭해할까봐 나도 대꾸 한마디 해줬다.

 

“음... 다들 갈 때는 한군데밖에 없어...”

“어디?”

 

동안의 앳된 얼굴이 궁금증에 눈이 동그래져서 묻는다.

 

“여기...”

 

내가 땅을 가리키며 대꾸하니 찬바람 입에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까르르... 웃어 넘어간다.

 

아... 나도 참 많이 살았다.

동사무소에서 근무할 때, 직원의 반 이상이 도장을 파게 만들었던

도장아저씨가 저주처럼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39살... 이때 뭔 일이 일어나는데... 난 차마 할 말이 없네...”

 

줄담배 태워대던 아저씨 몸에서 났던 역한 담배 냄새가 코끝을

마비시켜도 꿋꿋이 앉아 물었다. 프라이버시를 지켜준다는 차원으로

상담실에서 1대1로 끝부분에 내가 들어가 있던 차였다.

내가 그동안 겪었던 사람들이 얼만데... 오히려 그의 꼼수에 결코

말려들지 않겠다며 오히려 장난처럼 즐기고도 싶던 마음이었다.

 

“차마 하지 못할 말이 뭘까? 제가 죽나요, 아님 남편? 그도 아니면

이혼? 그중에 몇 번짼가요?“

 

담담하면서도 당당하게 맞받아치는 내 말에 그 아저씨 눈이 황당함으로

조금 떨리더니 비벼 껐던 담배를 또 하나 입에 문다.

 

“39살이 고비야...죽을 수도 있고 이혼할 수도 있고...”

 

담배로 찌든 성대 탓일까, 아저씨의 목소리가 쩍쩍 갈라진 목소리로

찜찜한 여운을 계속해서 남발했다.

 

“확실하게 말씀해주세요. 밖에선 모두 용하다던데, 저에겐 아들하나,

딸하나, 이거 말고 딱부러지는 대답 해주신 것이 없는데.

죽나요, 이혼하나요? 목숨 부지하기 귀찮았는데 내가 죽어도 괜찮고

결혼생활 힘겨운데 이혼해도 괜찮구요. 확실하게 말씀하세요.

어떤 거예요?“

 

아저씨는 끝내 내 대답을 회피했다. 5만원하는 도장을 파면 고비를

잘 넘길 수 있다고 했지만 좋은 얘기 잘 들었다며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그분이 선심 쓰듯 비책 하나 알려 준다며,

빨간 속옷을 입고 살란다. 그럼 살을 태울 수 있다나?

39살만 무사히 넘기면 살아가는데 별 걱정 없다고 위로같은

말도 해줬다.

 

그날 찜찜한 기분으로 근처에 친구 몇 명에게 전화를 했다.

내 말에 우스갯소리를 던지던 사람들이 장사속이라며

찜찜할 내 마음을 달래주려 했다.

그때는 무시했던 말들이 2009년, 39살이 코 앞으로 다가오는

요즘 부쩍 신경 쓰인다.

내가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있다.

 

“만약, 내가 죽거나 이혼을 하게 되면, 그 사람 용한거니까,

** 1동 사무소로 찾아 가서 도장 파는 아저씨를 찾아봐서

인생 상담해봐봐봐...“

 

2009년까지 카운트다운 하루하고 조금 남았다.

기대되는 새해가 될 것 같다. 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