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밖을 거닐었다.
녀석이 많이 컸다. 남편과도 껴본지조차 가물거리는 팔짱을 끼고
걸었다. 든든하니 매달릴만했다.
“아빈아, 엄마가 동안이잖아. 그치?”
“네, 그럼요.”
“한 미모 하잖아. 그치?”
“그렇죠.”
“혹시 말이다. 엄마가 너무 젊어 보여서 너와 또래로
보여서 네 친구로 보면 어쩔까, 엄마가 잠시 그 걱정했다.“
“......”
아빈이가 마지막 내 멘트에 대답대신 나란히 서서 앞을 보고 걷던
시선을 거두고 나와 눈을 맞췄다.
그리곤 점퍼에 달린 모자를 푹! 뒤집어쓰더니 입을 닫았다.
뻔뻔함에 있어서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나였기에 뻘쭘하지 않았다.
결코... 결단코... 절대로... 뻘쭘하지 않았다.
이제 제법 주고받을 말들이 늘어난다. 대화가 통하는 것도 같다.
어느 것은 벌써 내가 생활상식조차 녀석에게 뒤지는 부분들이 늘고 있다.
날 넘고 서는 자식들을 보면 뿌듯함을 느낀다.
내 작은 배에 두 아이를 품고 키울 때 10달이 가깝도록 갈비뼈로 느껴지는
통증과 장기들로 전해지는 압박감에 숨이 턱에 차올라 눕거나 서는 것도
힘겨웠는데, 그래서 곧 죽을 것도 같았는데... 녀석들 때문에 내 몸의 체형까지
변하게 됐지만 낳길 잘했다.
“엄마가 쪽 팔리냐?”
“헉! 아뇨.”
“그럼 모자 왜 써 임마.”
“에잉! 엄마, 제 못난 얼굴이 엄마 얼굴에서 나는 광채를
가릴까봐... 그것이 걱정되어서 말이죠.“
훌러덩 썼던 모자를 벗어 재꼈다.
“아들...”
“네?”
“다음 세상에 또 엄마 아들로 태어 날 거냐?”
“그럼요.”
“왜?”
“모르겠어요. 그냥 저는 엄마 아들로 쭉 태어나고 싶어요.”
“그 거짓말 진심이냐?”
“에잉, 거짓말 아닌데. 그럼 엄마는 다음 세상에 저의 엄마로
계실 거예요?“
이젠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졌다. 호락호락한 녀석이 아니다.
“글세... 너 하는 거 봐서. 네 엄마로 사는 일이 보통 일이냐?”
“헉...”
손해 막심하다며 억울해하는 녀석에게 매정하고 소견머리 좁은 내가
그럼 너도 다음 세상에 엄마하는 것 봐서 아들로 태어나라니 절대
그럴 수 없다며 꼭 나의 아들로 태어나겠단다.
잘 못 해 먹이는데?... 그래도요...
엄마 성질 못됐는데?... 그래도요...
상처투성이 제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녀석에게
나는 볼 일보고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먹고 싶다는 곱창을
사줬다. 안면 있는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다 성숙해진 아빈이를 보고
놀랐다.
앳된 모습이 없어졌다며 훤칠하게 자~알 생겼단다.
딸래미도 보면 어쩜 그리 이쁘게 크냐며 예절도 바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두 아이 뱃속에 있을 때 깡 소주, 막걸리를 겁 없이 마셨다.
그런 내게 태어난 아이들은 감사하게도 열 손가락, 열 발가락...
온전하게 갖추고 작은 배에서 나온 것이 맞는지 미달의 몸무게는
겨우 면했지만 키들은 평균을 넘었다. 한껏 움츠리고 10달을 작은
뱃속에서 견딘 탓인지 녀석들은 종종 앉아 있는 자세가 꼿꼿하지 않고
등을 움츠리고 있어서 내게 호된 잔소리를 듣기도 한다.
“엄마.”
“응”
“제가 좀 잘 생겼지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번엔 녀석이 농을 걸어왔다.
“그려...”
“헉...”
“왜?”
“쉽게 인정하지 않으실 줄 알았는데...”
누가 자식이고 엄마인지, 우리들의 대화는
보통 한쪽이 한 없이 유치한 쪽으로 기울어져 간다.
결코...결단코... 절대로... 내 쪽이 유치한 쪽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 즐거운 성탄 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