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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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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이 삼촌(13)- 얄궂다...


BY 솔바람소리 2008-12-06

주접의 입을 소유한 그 치의 돌발적인 발언이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손님을 왕처럼 대해야 한다던 신조의 엄마의 룰을 깨버리는 계기를

만들고 말았다. 그동안의 스마일을 고수하던 엄마 얼굴이 찬 서리 같은

냉기를 머금고 싸늘해졌다. 바다일로 다져진 다부진 체력의 엄마가 말없이

엽기남이 앉아있던 자리로 가더니 그의 한 쪽 팔을 거머쥐고 문밖으로

끌고 나갔다.

 

“이거 아직 계산 안했는데... ”

 

험악해진 분위기가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됐는지 제가 먹던 빵과 우유를

치켜들고 엽기남이 말했다.

 

“가, 그냥 가! 다신 여기 와봐라! 이런 곳에 처박혀 있으니까 별 거지깽깽이

같은 놈이 와서 염병을 떠네. 에이, 소금을 한바가지 갖다 뿌리던지 해야지,

감히 어디라고 썩은 주둥이를 놀려?!“

 

엄마는 내가 할 말을 대신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그 치가 미적미적

사라져가고도 잠시 동안 화를 가라앉히지 못해서 씩씩거렸다.

엄마 못지않게 황당하고 어이없어서 발끈했던 나였지만 딸의 일에 있어서는

늘 예민하게 반응하는 엄마의 돌변하는 모습에 나는 그저 웃고 말았다.

보일러 계에 있어서는 의사선생 겪인 사돈이 환자(?)의 상태가 불치가 아닌

가벼운 몸살 정도를 앓고 있었는지 도착한지 30분도 안돼서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몇 개월 전인, 어업을 중단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갓 잡아 온 해산물들

중 일부를 엄마는 부둣가에서 손수 간이 포장마차처럼 ‘조개’와 ‘게’구이와

바닷장어를 비롯한 활어를 떠서 술과 함께 팔아서 짭짤한 수입을 얻곤 했다.

그 막바지쯤에 엄마는 선영이 삼촌이 친구들과 가끔 장사하는 곳으로 찾아와서

먹고 간다는 말을 했었다. 그 나이에 객지로 떠도는 것이 안타까워 이것저것

챙겨주었다고... 선영이 삼촌 역시 그 날들이 기억에 남는지 시골집에서

두 번의 보일러 이상으로 졸지에 함께 있던 날 중, 첫째 날 한다는

말이 사돈어머님은 뵐 때마다 자신만을 특별히 챙겨줬다며 성격이

좋은 분 같다고 덧붙였었다.

 

웃는 얼굴의 인상 좋은 모습만 접했던 사돈이모였던 내 엄마의

낯선 모습에 선영이 삼춘이 위축된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 됐어요... 이제 이상 없을 거에요... 그만 가보겠습니다.”

 

엄마는 벌이도 시원찮은 슈퍼 일이 장시간의 수고에 비해 수입이

턱없이 부족한데 보일러까지 교체하게 되면 어쩌나 꽤나 신경

쓰셨나보다. 부품 몇 개로 당분간 사용하는데 큰 지장이 없을

거라니 다시 입이 귀에 걸렸다. 수고비를 안 받겠다는 사돈에게

엄마는 가다가 밥이라도 사먹으라며 봉투를 건넸고 마지못해 받아들고

나서려던 사돈이 계산대에 앉아있던 나에게 눈을 맞추고 떠나갔다.

 

또 다시 며칠이 흐른 토요일, 수원에서 읍내로 내려오던 오후였다.

민욱이 내가 내리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한참을 서있었는지 코가

벌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버스 출입문 계단을 내려서기도 전에

민욱이 다가와서 며칠 전에도 봤건만 오랜만에 만나는 것처럼 반겼다.

터미널을 나서는 길가엔 눈이 치워지지 않아 곳곳에서 빙판으로 변해있었다.

한손에 쇼핑백을 들고 있던 민욱이 빙판 위를 걸으며 다른 한 손으로

내 팔을 잡아 중심을 잡아 주었다.

우리는 터미널과 멀지 않은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추억의 팝송이 은은하게 흐르는 실내에 아이비처럼 늘어지는 줄기식물들이

곳곳에서 초록을 뽐내고 있었다. 이국적인 분위기는 겨울이 아닌듯한 기분을

만들었다. 우리는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웨이터에게

음료수를 주문하고 나서 민욱이 자신의 옆자리에 놓았던 쇼핑 가방 속에서

안개꽃처럼 작은 꽃모양 무늬가 그려진 은박포장지에 리본으로 멋을 낸 제법

부피 있는 꾸러미 하나를 꺼내어 마주 앉은 내게 건넸다.

민욱에게 그동안 받은 선물들도 많았다. 습관처럼 익숙해진 일이지만

선물이란 것은 풀 때마다 기대감에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뭐야?”

 

생겨먹길 성질 급한 내가 질문과 함께 손을 움직였다. 테이프를 하나씩

뜯기가 번거로워 리본을 푼 끝부분을 벌렸다. 귀여운 인형이었다...

 

-말과 행동이 영락없는 섬 머슴이였던 나는 어릴 때부터 인형을 좋아했다.

그동안 모아놓은 것들만도 방바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다양한 동물 봉제인형들부터 바비들, 다양한 크기의 벽걸이 인형들,

마니아들이 선호하는 수제인형들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민욱은 내 들뜬 질문에 대답 없이 그저 웃는 얼굴로 폭신한 페브릭 의자에

기대어 한쪽 팔로 턱까지 괘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내 표정을 살폈다.

포장지 밖으로 나온 인형은 시중에 등장한지 얼마 안되는 멜로디 인형이었다.

토실토실한 여자 아이가 연한 핑크색 드레스에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가슴에

꽃다발을 안고 앉고 있었다. 인형의 모자 밖으로 나온 헤어스타일은 얼마 전부터

긴 머리를 양 갈래로 땋고 다니는 나와 흡사한 모양이었다. 뜨개실 같은 인형 머리

결은 연한 노랑을 띄고 있었다. 인형의 등 쪽에 있는 태엽을 감아보았다.

조용한 음악의 선율이 흐르는 레스토랑 안으로 감미로운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로미오와 줄리엣>... 모양만으로도 충분히 귀여운 인형이 멜로디와 함께 머리를

목운동을 하듯이 천천히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앙증맞기까지 했다.

언젠가 시내를 함께 돌아다닐때 한 팬시점에서 살짝 보고 꼭 사야지 마음먹었던

모델보다 훨씬 마음에 드는 인형이었다. 역시...세심한 그였다.

레스토랑 안에 앉아있던 다른 커플들도 울려 퍼졌던 멜로디 때문에 우리들을 봤나

보다. 우리와 가까운 자리에 앉아있던 한 커플이 다투는 듯하더니

여자가 먼저 나가고 동행인 남자가 따라 나가며 민욱에게 노골적인 불만이 담긴

눈초리를 보냈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무렵, 집에 도착했다.

동생이 있는 줄 알았던 집은 잠긴 채로 비어있었다.

내 방 창문가에서 큰소리로 막내 이름을 불렀다.

역시나... 선영이 삼촌이 묵고 있는 민박집 현관문이 열리고 동생이 꽁지에 불붙은

것 마냥 달려 나왔다.

뭐가 그리 재밌었는지 상기되어 들어 온 막내가 변명처럼 길에서 ‘삼촌’을

만났는데 군것질 거리들을 샀다며 같이 먹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가 있었다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리곤 내방 침대 위에 놓은 인형을 본 막내가 신기하다며

계속해서 태엽을 감고 멜로디를 켰다. 난...고장 나지 않도록 살살 다루라며

배고플 동생을 위해 쌀을 먼저 닦았다.

밥솥에 쌀을 올리고 옷을 입고 나올 때까지도 나는 막내가 나간 것을 몰랐다.

방마다 돌아다녀도 동생이 없었다. 인형도 없었다... 집 밖은 벌써 하루의 업무를

마친 해가 자취를 완전히 감춘...밤이 되어있었다.

나는 두 번째로 목청을 가다듬고 막내 이름을 창가에서 불렀다.

(내 목청이 큰대에는 이런 일이 빈번했던 탓이 아닐까...)

 

동생이 다시 민박에서 나왔다. 난...벌써 화가 난 상태였다.

뛰어 들어온 동생의 손에 있어야 할 내 인형이 없었다.

 

“인형은!”

“... 삼촌이...안준대요...”

잔뜩 주눅이 들어버린 막내가 겨우 입을 떼고 말했다.

 

“그걸 왜 가지고 나갔어!”

“신기해서...요...자랑하고 싶어서...그랬는데... ”

“빨리 안 찾아와!”

 

화가 극에 달한 내 목소리가 집안을 울렸고 동생이 다시 밖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몇 분이나 흘렀을까... 동생이 내 방 창밖에서 불렀다.

 

“누나!... 삼촌이...하루만 갖고 있다가 준다는데...요...”

“뭐?!”

 

얄궂었다... 어쩜 주인의 허락도 없이... 애가 생각 없이 한 행동에 맞장구를

칠 수가 있을까... 난 결코 내 물건이 그와 함께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삼춘 얼른 나와 보라고 해!”

 

동생은 저의 철부지 행동에 동반된 불미스런 일에 쩔쩔매면서

어두운 밤 속에서 민박과 내 방 창가를 몇 번의 왕래를 해야 했다.

사돈이 끝내 나오지 않겠다는 고집을 부렸다.

동생의 말을 빌면 그는 벌써 술을 한 잔 한 상태였다... 술... 그 놈의...술...

 

(중학생 2학년이던 동생은... 내가 집을 나온 얼마 후, 저 때문에 누나가 그리 됐다며

나를 찾겠다고 집을 나갔었단다... 동생을 찾은 곳이 내가 나오기 전까지 다닌 악세사리 디자인

학원이 있던 영등포 역이었다고 했다... 일주일이 다 돼서 상거지 꼴로 변한 동생을 찾았을 때...

그때서야 엄마는 세상 포기하려던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고 했단다... 자식들을 모두

망칠 수는 없었다던...엄마셨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