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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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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이 삼촌(4)- 선영이 삼촌과의 첫 만남


BY 솔바람소리 2008-12-02

언니에게 시동생이 온다는 말을 전해 듣고부터

발길을 끊고 집에서만 지내던 나날로 있었다.

의경으로 입대한 큰 동생이 심심해하는 나를 위해서

하얀 강아지(마르치스) 한 마리를 사다 준 덕에 의안삼아

지낼 수도 있었지만 조카의 예쁜 짓이 눈앞에 아른거려

한동안 애를 먹어야 했다.

 

그런 어느 날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하루아침에 발길을

끊느냐며 섭섭하다고 했다. 이제 갓 돌을 지난 선영이가

‘이모’를 찾으며 운다는 싫지 않은 과장까지 덧붙였다.

시동생이 신경 쓰이면 점심식사가 끝나는 오후 1시만 넘겨서

오라는 친절한 방법도 알려줬다. 나는 알았다고 했다.

 

다음날,

초여름의 비릿한 바다향이 코끝을 간질이는 밖을 나섰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하늘 아래로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를 나풀거리며 50m쯤 떨어진 언니네로 향했다.

오후 2시가 넘은 점심시간대를 훌쩍 벗어난 시간이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성질도 급하게 현관문을 벌컥 여는 것과 동시에

“선영아!!!”... 하고 조카 이름을 외쳤다.

 

내 눈에 안쪽의 잔뜩 흩어져있는 신발들과 현관 앞의 또 다른 문이

활짝 열려있는 것, 그리고 뭣 보다 거실 안을 가득 메운 거무죽죽한

아저씨들이 한데모여 식사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인 것은 한껏 목청 높여

조카 이름을 부르고 난 뒤였다.

형부를 비롯해 하나같이 피부가 검게 그을린 아저씨 3명이

교자상을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사를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소란스럽게 등장한...그래서 뻘쭘하게 서있는 내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헉!... 음... 아니... 그러니까...식사들을 하시어요...죄송합니다...”

 

조용히 갔더라면 발길을 돌리기도 쉬웠을 텐데... 여성스럽지 못한

성격 탓에 경솔함을 들러리처럼 달고 다니는 내 자신이 그 순간

어느 때보다도 한심스러웠다. 활짝 열 때와 달리 조용히 문을 닫고

돌아서려는데 형부가 나를 불러 세웠다.

 

“처제, 들어와. 내 동생들인데 어때? 선영엄마, 처제 왔어!!!”

 

검은(?)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던 형부가 그동안의 당돌하기 짝이 없던

내가 조금은 주눅 든 것 같은 모습이 재미난 듯이 의아하단 표정의

웃음 띤 얼굴로 언니를 부르니 곧 안방에서 언니가 나왔다.

그리곤 우물쭈물하는 나의 팔을 잡아끌고 자신이 나왔던 방으로

이끌고 들어갔다.

마지못해 끌려들어가면서도 연실 내가 자신에게 눈을 흘기니

미안한 듯 히죽거리던 언니가 말했다.

 

“기집애, 언니 잡아먹겠다... 얼른 들어와. 오늘 삼촌들이 바빠서

좀 식사가 늦었어, 어쩜 때맞춰서 이러냐, 그치?...“

 

한쪽에서 곤하게 누워 잠든 선영이의 토실토실하게 오른 볼 살을

살짝 건들고 쓰다듬다가 냉장고에서 시원한 오렌지주스를 따라와

건네는 언니를 향해서 나는 여전히 새침한 눈길을 보냈다.

 

“뭐야? 시동생이 뭐가 그리 많아...”

내가 밖을 의식해서 한껏 낮춘 말로 언니에게 따졌다.

 

“시동생은 한명이고 두 명은 시동생 친구들이야...”

언니도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누가 시동생인데 그럼?”

“형부 옆으로 앉은 초록색 티를 입은 사람...”

 

초록색 티를 입은 사람이라... 낮선 사람들이 떼로(?)로 몰려

있어서 무안했기에 스쳐지나오면서도 무슨 옷을 입었는지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주의 깊게 관찰할 여유 따윈 없었다.

좁은 동네에서 마주쳐도 누군지 몰라서 인사도 않고

지나치다가 사둔처녀가 안면몰수 한다는 말로 흉봐도

할 말이 없게 생겼구나, 들어설 때부터 불편했던 마음이

쉽게 떨쳐지지 않았지만 새근거리며 잠든 조카가 며칠사이

더 큰 것이 신기해서 엉덩이를 두들기고 머리를

쓰다듬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언니가 한다는 말이,

 

“기집애, 그렇게 예뻐하는 조카를 안보고도 견딜 수 있디?“

하며 따지는 말투에는 기쁨이 묻어있었다.

 

“처제!, 잠시 나와 봐. 이제 한동네서 지낼 건데 인사는 해야지.“

 

식사를 다 마쳤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형부가 나를 불렀다.

귀찮게 생겼다며 궁시렁 거리던 내가 거실로 나설 때는 태연한척

가장한 얼굴로 서있었다. 형부의 소개로 한명 한명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시동생이라는 초록색 티를 입은

사람의 얼굴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다들 억양이 형부와 같은 남도지방의 강한 사투리를

쓰는 것이 이색적이면서도 웃겼지만 실례가 될까봐서 참았다.

마지막 사람의 소개를 끝으로 내가

 

“처음 뵙겠습니다...” 라고 인사말을 건네니

사돈의 친구라는 한 사람이 의미심장한 웃음 뛴 얼굴로

한다는 말이,

 

“우리는 처음이 아닌디요...” 한다.

“네?!”

 

무슨 뜻인지 몰라서 되물으니 자기들끼리 웃으며 3명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나갔다.

언니가 결혼식을 목포까지 내려가서 했던 관계로

당시에 멀미가 심했던 나는 참석하지 못했다.

봤다고 해도 형부의 식구들의 안면을 모두 익힐 순

없었겠지만 형부의 형제자매가 어떻게 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초록색티를 입은 사람이 형부의

큰아버지의 5째 아들인 사촌 동생인 것을 그들이 나가고

나서 형부가 부연설명을 해줘서 알게 되었다. 이종사촌 형부의 사촌동생...

족보가 희한하게 꼬였지만 어쨌든 내게는 친한 사촌언니의 시동생일 뿐인

...사돈으로써 우리는 동성동본이란 인연까지 지닌 사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