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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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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이 삼촌(1)- 회상 속으로...


BY 솔바람소리 2008-12-02

전 날 밤에 출근을 몇 시에 할 거냐는 내 질문에

남편은 아침 8시를 얘기했고 아이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다음 날인 어제, 아침 식사하라는 딸의 깨움에 남편이 부스스

일어나서 화장실에 들러 상 앞으로 앉았다.

8시 15분쯤에 아이 둘이 등교를 하고 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도 보지 않는 아침드라마를 대단한 집중력을 동원하여 침대에

누운채로 시청했다.

 

함께 산지 얼마돼지 않아서 사고가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란 걸 깨달았다.

내게 낼모레는 정확한 이틀 후를 뜻한다. 남편의 낼모레는 한 달도

두 달도 길게는 몇 년도 될 수 있었고 어느 것은 기약도 없는

뒤로 미뤄짐을 뜻하기도 했다.

내게는 자라온 환경쯤 극복할 자신이 있었다. 바보온달을 훌륭한

장수로 만들었던 평강공주도 있었다며 강한 자신감을 갖기도 했다...

개그맨을 꿈꾸던 나는 역시나 <웃기는 년>일 뿐이었다.

낼모레의 뜻도 모르는 남편은 신용 따윈 흔하게 널려 있는 값싼

콩나물보다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외상값 따윈 줘도 그만 안줘도 그만, 셈도 흐린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이 지금은 자기 것은 못 받아도 줘야할 것은 꼬박꼬박

챙기게 된 것이 내 덕이라며 같잖은 말을 한 적도 있었다.

싫은 사람과 1초도 못 있던 내가 남편과 적과의 동침을

16년째 지탱하고 있다.

 

“8시에 나간다며, 벌써 20분이 넘었는데 언제 간다는 말이야?”

내가 참지 못하고 TV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남편에게 한마디 했다.

내 말에 역시나 예상했던 <낼모레>같은 불확실한 대꾸가 나온다.

“알았어. 나갈거야...”

 

몇 해 전까지 내가 글 쓰는 것까지 방해하던 남편은 컴퓨터를

뽀사버린 다는 협박을 일삼았다.

글뿐 아니라 아이들 때문에 맡은 학교에서의 임원 활동으로

엄마들과 몰려다니는 것도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남편은 내가 집 밖이 아닌 집 안 울타리에서만 꼼짝 않고 새장 속에 새처럼

틀어 박혀 있기를 바랬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틀에 박힌 삶을

견딜 수 없어하던 사람이었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온갖 시비꺼리를

만들어서 싸움을 걸던 남편은 큰 아이 1학년 때 운전면허를

따겠다며 학원을 다닌 나를 방해하기 위해 일주일도 안돼서 이론

시험에 합격하고 머지않아 코스시험도 무난하게 통과하고 도로주행

연습을 시키던 강사에게까지 내 핸드폰으로 시비를 걸며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1종 면허를 따던 날 비아냥거리는

얼굴을 대하며 맘껏 기뻐할 수 없던 나였다.

남편의 온갖 방해에 오히려 오기로 맞섰던 나... 우리는

서로를 죽일 듯 물어뜯었고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일 수가 없었다.

열거할 수 없는 온갖 일들이 많았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 다는 옛말 저리가고

요즘은 기술의 발달로 1년만에도 강과 산이 뒤바뀔 수 있다니

15년 함께한 우리도 환경만큼 빠르게는 아니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굼뜨게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

 

8시에 나간다던 남편이 TV에 타임까지 맞춰놓고 잠이 들어서

깨어난 시간이 오후 12시가 다된 시간이었다.

밥을 차려주고 늦은 남편의 출근을 배웅한지 6시간도 되지 않아 퇴근해서

들어 온 남편이 춥다며 호들갑을 떨며 현관문을 따고 들어와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나와 눈을 맞췄다.

“아빈엄마, 추워~... 엄청 추워~”

7살 나보다 더 먹은 그 나이를 어쩌고서 어리광을 부린다.

“일은 벌써 끝난 거야?”

“응! 후딱 해치우고 들어왔어. 당신보고 싶어서,

여기저기서 잡고 연락 오는데 뿌리치고 들어왔지, 해피야!!!

아빠 왔네?!“

 

때려죽이겠다던 ‘개새끼’를 향해서 달려가서 부둥켜안고

여전히 호들갑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기가 부담스럽지만

내가 컴퓨터에 앉아있는 것을 참아주니 나 역시도 봐주며

섞고 싶지 않은 말을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 이쁜 마누라 주머니에 넣고 다니지. 보고 싶은 거

참느라고 고생했어...“

“해피야! 아빠가 엄마를 주머니에 넣고 다닐까, 엄마 말대로?”

 

머지않아 <세상에 이런 일이>에 아니면 <놀라운 세상>에

코끼리만한 마누라를 주머니에 넣고 수레에 실고 다니는

남자가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나이 값 못하는 이 남자와의 끈질긴 인연에 대해서 이제는

슬슬 털어놓을 때가 도래한 듯하다.

이번 기회가 좀체 정리되지 않는 쓰러져버린 내 마음 한편을

차곡차곡 세울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