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며
내게 말했다.
“엄마, 오늘 저는 따뜻한 마음을 느꼈어요.”
“왜 갑자기...?”
“시장에 뻥튀기 튀기는 아저씨 아시지요?”
“응.”
“그곳에서 무인 판매를 하더라구요. 처음엔 웃겼어요.
그런 곳에서 무인 판매라니...”
“무슨 말이야?”
“오늘 오는 길에 보니까 사람도 없이 뻥튀기와 돈 넣는 함만 있더라구요.
일주일에 몇 번만 뻥튀기 튀기고 나머지는 튀겨놓은 것만
판다고 팻말이 쓰여 있었어요.“
“그래...”
기말고사가 가까운 요즘 아들은 학교에서 오는대로 식사를
하고 곧장 학원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나는 아들의 말을
들으며 상을 차렸다. 아들 녀석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는 누가 그냥 그것을 가져가면 어떡하나 걱정이
돼서 그곳에서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며 있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아무도 그냥 뻥튀기를 짚어가지도 않고
돈 통에 손을 넣는 사람들도 없더라구요. 왠지 참 괜찮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마음이 들어서 날은 추운데 마음은 따뜻했어요.“
녀석의 말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잘 자라고 있구나... 고마웠다.
아들은 간간히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어른스런 따뜻한 말들로
나를 감동시키곤 한다. 그런 녀석이 나를 배반하듯 때론 철부지 행동을
할 때가 있어서 그때마다 나는 무섭게 돌변해서 다그치곤 했다.
매를 들어 엉덩이와 종아리를 때리기도 하고 감정이 억제가
안될 때에는 손에 닿는 대로 등짝이며 팔 같은 곳을 있는 힘껏
때릴 때도 있다. 그럼 녀석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피하지 않고
내 매를 고스란히 맞고 서서
“죄송해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하고 반성의 말들로 용서를
구하곤 했다. 제법 큰 녀석에게 여적 매를 들고 있는 사람이 주변에선
나만 존재했다. 너무 엄격한 엄마의 그늘 때문에 마마보이가
되면 어쩌느냐고 주변에서 걱정 섞인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도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매번 생각으로 끝나고 말아서
혼내고도 반성 같은 마음으로 편치 않아 우울하곤 했다.
전과 다른, 섣불리 대할 수 없는 아들을 간간히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난 병적으로 남편처럼 무능력하고 책임감 없는
아들이 될 것이 걱정되어 긴장을 늦출 수가 없고 물러 설 수가
없어서 오기로 녀석을 잡곤 했다.
“네가 착해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걸 거야.
그런 것을 보고 모두가 너와 똑같은 생각을 하진 않아.
어쩌면 ‘저 사람 요즘 같은 세상에 정신 못 차리고 살고
있구만‘ 하고 흉볼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엄마 아들이 마음이 깨끗해서 순수한 아저씨의 믿음을 봤을
거고 그곳을 탈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고맙게 봤던 마음이
너를 따뜻하게 만들었겠지. 엄마는 네가 그런 말을 할 때...
잘못 키우지는 않았구나, 뿌듯한 마음이 든다.“
점점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인색해지는 나를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요즘은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내 말에 기분이 좋아진 녀석이 시간이 없다면서도
밥상에서 묻지 않은 이런 저런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세상을 헛살았다는 생각이 나를 힘겹게 했다.
해놓은 것이 너무 없는 것 같아서...잘하는 것이 없는 것 같아서...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나조차 내가 싫을 때... 나는 내 남편이
미치도록 싫었고 목숨같은 아이들도 미워질 때가 있다.
봄과 가을이면 그 병적인 마음이 심하게 요동을 쳐서 나를
반 미친 사람을 만들곤 했다.
가을이 지났다. 찬바람이 분다. 그래서 이런 조금은 안정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자꾸만 자신의 곁에서 떨어져 있는 나를 따라다니며 스킨십을
해도 참아내고 있다.
“사랑해, 아빈엄마. 아영아, 엄마는 누구꺼? 아빠꺼야.
알았지?!“
장난처럼 말하는 것도 참아 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자꾸만 거북하다. 남편이...
자꾸만 부담스럽다...
어쩜 그렇게 태평할 수가 있니?
아이들과 살려면 들어가야 하는 돈이 얼만데...
‘생활비 한번 제대로 준적 없어도 내가 살아가는 것이
신기하지도 않니?...‘ 따져 묻던 내입을 닫으니 세상
행복한 얼굴로 살아가는 남편이...나는 정말 싫다.
‘취직을 해야겠어... 40이 넘으면 그마저도 직장 구하기가
어렵겠더라... ‘ 내 말에 남편은 여전히 쓸데없는 소리
한다며 집에서 애들 돌보는 것이 자신을 도와주는 거라고 했다.
웃긴다. 미치겠다.
남편은 애들만 대학 보내면 자기 할 일은 끝이라고 했다.
대학만 보내면 산골로 들어가서 배추 세포기 무 세뿌리 심어서
나랑 오순도순 먹고 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했다.
그래... 네 맘대로 하세요... 난 그럴 마음 없습니다.
댁을 따라가서 살 마음 손톱만큼도 없습니다. 애들만 키워보세요...
나도 이제 정말 자유롭게 살랍니다.
그런데...무슨 돈으로 애들 대학을 보낼랍니까?
중학교 초등학교 가르치기도 벅차서 내 입에서 매일
나오는 말이 누구네서 돈을 꿨네, 카드로 긁었네, 하는 거짓말들
뿐인데... 그래도 ‘알았어...’ 말뿐인 행동 없는 그 정신머리를,
그 무책임을 어쩌고서 계획도 없이 그리 살면서 입만 붕어처럼
뻐끔거리며 말입니다....
나는 이제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내게 안방에서 tv를 보던 남편이 갑자기
급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곤 했다. 내가 숨쉬기 위해 이 짓을
하는 것마저 또 방해하면 어쩌나 싶어서 비참함을 감추고
쪼르륵 침대로 가서 팬티를 내리며 다리를 벌려주곤 한다.
“빨리 끝내.”
내 입에선 어김없이 그 말 먼저 튀어 나오고 만다.
어느 땐 비참한 마음이 거부감을 어쩌지 못하고서 부르는 그의
뜻이 뭔지 알면서도 오기부리 듯 나는 말하고 만다.
“어쩌라고... 대 달라고?”
“이 사람이... 뭘 대 달라고... 사랑을 하자는 거지.”
“사랑? 흥분도 없이 갑자기 부르면 와서 다리를 벌려주는 것이
사랑이야?“
“알았어. 이리와 그럼.... 내가 기분 좋게 해줄게.”
마지못해 나는 다시 팬티를 내리고 침대 위로 올라간다.
남편의 까칠한 얼굴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흥분은커녕 소름이 돋고 말았다.
“그냥 빨리 끝내.”
아들과 딸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연기를 하면서, 아니
한쪽의 불편한 마음을 무시하며 부부로써 엄마로써
내색하지 않으려고 버티며 있다.
내 마음이 문제일까...
남편이 돈만 많이 가져다주면 내 마음을 돌릴 자신이
있을까?... 아니다... 아니 올시다, 다. 남편은 그럴 사람이
못된다.
먹는 것만 집착하는 돼지새끼처럼... 먹을 것만 찾는다.
그런대도 몸에 살이 없으니...이 마저도 억울하다.
남편은 하루만 살면 되는 하루살이처럼 나중이란 없는
사람으로... 욕심도 없다.
돈이 좀 생길라치면 밖으로 돌면서 주변사람들을 챙길 뿐
내 새끼, 내 마누라가 없었던 사람이라... 태생이 가정을
이룰 사람이 못되는 것을 그동안 살면서 난 뼈저리게 느꼈던 터다.
친정에서 들어와서 쌓였던 내 금고를 열었을 때
남편은 여유자작 태평했던 사람이었다. 금고를 열었던 것을
후회하곤 했다.
자존심... 적절한 자존심도 아닌 불필요한 오기로
살아갔던 사람이었다. 나와 생각도...이상도 맞지 않는 사람...
수없이 그를 용서하고 믿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배반된 행동들이었다.
내 마음.... 내 생각이 지금은 어떤 거든지 용서할 수
있을 것도 같고, 죽으라는 법은 없을 거라는 여유를 부리게도
하지만...나는 벌써 아직도 한참 남은 봄이 두렵다.
얼마나 미쳐서 날 뛰게 될지...
그때도 내가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고비가 거듭될수록 버티기 힘든 나를 느꼈기에...
그때는 이런 낙서조차도 거들떠보지 않고 반쯤
미쳐서 날뛰겠지...
미리 걱정하지 않으려던 마음도 참으로 쉽지 않다.
지금 이렇게 글로 의안 삼는 것만으로도 감사를 하고 싶은
마음마저 흔들릴때... 나는... 내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