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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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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BY 박 정애 2012-04-19

친구

힘들게 살다가 보니 옛 고향친구 들을 잊고 살았다.

오십줄에 들어 동창회 결성으로 자연 고향친구를 찾게 되었다.

사십년만에 만난 친구들도 드러있었다. 얼굴로는 감이 없고 옛 이름만이

그 기억을 생생하게 해 주었다. 시골서 초등학교 중학교 9년을 함께 한

친구들의 이름은 잊을리 없다.

이름보다 별명이 더 퍼떡 떠오르는 친구 아주 공부를 잘했던 친구 아주 못했던 친구

말썽쟁이 친구 기억의 부류도 가지각색이다. 그 동창 모임을 15년이 넘었다.

그 당시 시골사정으로는 중학교 진학을 못한 친구가 반을 훨씬 넘었다.

그 중학교 대열에 못 끼었던 친구, 6학년 때 책을 못 읽는다고 벌 청소를 했던

친구 바로 내 뒷자리에 있었던 친구는 못 읽는게 아니라 서서 읽어라면 주눅이 들어

울어버린 친구이기에 기억에서 잊혀지질 않았다.

그 친구가 어느날 혜성처럼 나타나 온 동창생의 부러움을 차지했다.

모양새도 단번에 갖추어사는 폼새다. 훤출한키에 날씬한 몸매

세련된 차림을 해온 고생끼가 없는 환한 얼굴이 친구의 삶을 말해 주었다.

동창회에 나타나기 전에 소문이 무성했다. 판검사 부인이니 교수 부인이니

미꾸라지 용되었다느니 40년 세월은 잊어버리고 지금은 사십년전 친구를 평했다.

시선은 자연 그 친구에게 집중이 되었다. 그 친구가 일어서서 한마디 했다.

국민학교 때 성적표가 내가 맨 꼴찌로 기억된다면서 여러분도 그런 나를

잊을리 없을거라고 웃으면서 말하는 친구를 따라 모두가 웃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 서울대를 나와 국가 기관에 연구원인 남편과 산골짝 초등학교

꼴지로 졸업한 내친구와 그 인연은 아무리 그 시절이지만 이해가 잘 안되었다.

솔직하게 배운만큼 배운 나로서는 그 친구가 몹시도 부러웠다.

그 사십년을 어떻게 살았는지는 우리는 모르고 지금에 와있는 친구가 으아하기까지 했다.

사실은 이러했다. 가난하게 자란 수재는 고생으로 서울대까지 가게 되었다.

친부모와 양부모를 모셔야했던 남편의 결혼의 상대자는 어려운 선택이였다.

남편의 처지를 잘 아는 오빠가 남편에게 동생을 추천하는대는 많은 노력을 감수했다고

했다. 딸아이는 공부를 시키지 않았던 그 시절 그 오빠는 연대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었다. 심성착한 친구는 오빠집에 있었다.

결혼을 하고 신랑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계속 공부를 해 박사까지 취득하고 친구는

온 정성으로 양가 시부모를 섬기면서 가정을 꾸렸다고 했다. 그 짬짬이 시간을

내어 서실에서 글을 쓴게 국전출품에 입선까지 했다고 했다. 남편은 말없이 순종하면서

가정을 잘 이끌어 나가는 아내를 사랑했다. 자연 아이들도 잘 자라 아버지의 후배가 되어

전자공학 박사다. 결혼식에서 본 아들은 아버지 못잖은 수재로서 엄마 아버지 좋은점만

닮았다. 키 작은 아버지를 안 닮고 엄마를 닮아 큰 키에 인물이 보통아니어서 모두

갖추어진 신랑이라고 한마디씩 던진다. 역시 카이스트 출신인 신부는 누구에 딸이라고 하는데

기억이 안되다. 오빠친구와 오빠보다 먼저 결혼했다는 자그만한 딸은 공주처럼 예뻤다.

어느 날 초정장이왔다. 조카 결혼식과 겹쳐 가지는 못했지만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회를 가진다는 내용이었다. 힘들었던 아내를 위해 남편이 열어주는 전시회란다.

국전입상자의 작품과 명단도 내게 보내주었다. 끊임없는 친구의 피나는 노력으로 남편도

자식도 우뚝서게 한 내 친구가 너무도 장했다. 엄마를 한없이 높이 평가하면서 존경한다는

그 자식들도 참 인성이 아름다웠다. 서로가 잘 선택한 인연이 이렇게 모범가정을 이루고

사는구나 그 가족 한사람 한사람 마음가짐이 너무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