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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봉투를 나눠주겠다더니


BY 김미애 2010-11-26

재활용 봉투를 나눠준다더니/ 김미애

 

쓰레기 분리수거 규정이 강화되었다며 약 5분간에 걸쳐서 한달 사용분의 재활용 봉투를 나눠주겠으니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나오라는 안내방송이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하여 점방 밖을 내다보았다.

 

건너편 철물점 옆에 천막을 쳐놓고 사람들을 모으느라 골목골목을 누비는 봉고차의 지붕 위에 설치해놓은 확성기에서 나는 소리였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들먹이며 재활용 봉투 운운하기에 난 당연히 구청에서 홍보차 나온 줄 알았고, 5분간에 걸쳐서 나눠준다고 하니 금방 갔다 와도 될 것 같아 일손을 멈추고 천막을 쳐놓은 곳으로 갔다.  

중소기업 제품 박람회에 갔을 때 사람들의 상체가 천에 가려 안 보이는 그 틈새로 뭘 하는지 비집고 들어가 보고 싶은 호기심을 갖게 했음직한 작은 천막이었다. 

 

천막 안에는 재활용 봉투라고 쓰인 박스가 놓인 탁자를 앞에 두고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마이크 테스트를 하고 있었고, 천막 바깥에 서 있던 또 한 명의 남자가 손을 모아 나팔처럼 입에 대고 얼른 오라고 외쳐 느릿느릿 걸어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리 점방 바로 옆의 부동산 할아버지는 편찮으신 할머니 대신 참석하셨고, 점방 건너편의 노블젠 옷가게의 수다쟁이 할머니도 벌써 나와 계셨는데, 나를 보자 점방은 어쩌고 나왔느냐고 알은체를 하셨다. 

귀가 많이 어두운 그 할머니가 점방에 오시면 당신이 하고 싶은 말만 쉴 새 없이 말씀하셔서 정신을 쏙 빼놓게 만드는 할머니다. 

 

"우리 아들이 잘 먹는 빵은 어째 안 갖다 놨네? 다른 빵을 묵으믄 속 아프다고 함스로 안 먹어도, 식빵 같이 생기고 안쪽에 크림이 든 그 빵은 잘 먹는디 안 갖다 놨구마. 이 빵은 맛있는가? 앙꼬는 뭐 들었어? 팥 들었어? 우리 아들이 술을 안 먹응께 빵이라도 사다 줄라고 그란디 안 먹는다고 그라믄 바꾸러 오께. 그래도 되제? 그란디 오늘이 며칠이까? 이 빵은 유효기간이 언제까지여?" 

 

천 원짜리 한 장 달랑 들고 우리 점방에 오셨다가, 내가 대답을 해 드릴 틈도 안 주고 연달아 질문을 하며 이 빵 저 빵을 수선스럽게 한참 뒤적여 겨우 한 개 집어 카운터 위에 올려놓고는, 아들이 속 아프다고 안 먹는다고 하면 꼭 바꿔달라고 또다시 신신당부하신 후, 계산을 끝내고 가실 때에는 "워따, 고생하네. 재미 많이 보소! 오늘은 꼭 100만 원어치 파소잉!"라고 나름의 덕담(?)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다. 

아들이 옷가게를 하고 있는데 돈을 많이 벌어서 며느리가 다른 데다 점방을 또 크게 차렸다는 자랑을 입에 달고 살고, 노인네들을 상대로 건강보조식품이나 의료기구를 파는 업체를 찾아다니며 몸에 좋다는 약은 기백만 원도 아까워하지 않으시면서 껌 값을 지불할 때는 (지금은 그나마 삼백 원짜리 껌은 없어져버렸지만) 삼백 원짜리 살까, 오백 원짜리 살까, 한참을 망설이는 분이시라 한 달 분량의 재활용 봉투를 나눠준다는 자리에 빠질 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낯익은 얼굴들이 몇 명 더 있었다.

 

수중에 천 원권이랑 만 원권 지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폐를 헐면 금방 써지니까 안 된다고 기어이 백 원 단위를 외상하고 가는 얼룩무늬 몸빼 바지 입은 아주머니도 보였고, 두부 사러 왔다가 두부판에 서너 모가 남아 있는데도 제사 모시려고 그런다고 새 판에서 잘라 달라며 억지를 쓰던 내 또래의 여자, 과자 진열대 사이의 통로에 쪼그리고 앉아서 술 한 병을 종이컵에 부어 안주도 없이 물 마시듯이 마셔버리고 또 한 병을 바지춤에 쑤셔 넣어 가곤 하던, 부스스한 파마 머리를 고무줄로 묶은 아주머니도 나와 있었다. 

 

다들 나처럼 안내 방송을 듣고 공짜로 나눠준다는 말에 혹해서 나온 듯하였는데 대부분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고, 젊은 층은 얼마 전에 결혼한 리모델링 사무실의 새댁 밖에 안 보였다.

도로변 리어카에서 붕어빵 장사하시는 아주머니와 함께 천막 바깥쪽에 서 있던 새댁이 그쪽으로 다가간 나를 보더니 아주머니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자신이 멋쩍은 듯 배시시 웃었다.

 

약 5분간에 걸쳐 봉투를 나눠준다고 하면서 재활용 봉투에 분류해서 담아야 할 것을 당부하던 남자가 일회용 비닐봉지를 한 장씩 나눠준 다음, 재활용 봉투를 나눠주기 전에 먼저 협력업체에서 협찬한 사은품을 나눠주겠다며 좀 더 가까이 다가와 나눠준 비닐봉지를 내밀게 했다. 

 

비좁은 천막 안에서 바짝 붙어 서서 너도나도 서로 먼저 받으려고 봉지를 든 손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틈바구니에 끼어 있으려니 이 사람 저 사람의 구취와 땀내가 범벅이었고, 담배와 술 냄새까지 진동을 하여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사은품이라고 나눠준 것을 받고 보니 소량의 더덕 씨앗이 든 봉지였다.

 

받아봐야 심을 공간이 없으니 그런 것 말고 애초에 나눠주겠다는 재활용 봉투나 얼른 주면 좋겠는데 홍보하는 중간에 자신이 홍보한 내용을 몇 번이고 되묻고 사람들이 대답을 하면 제일 먼저 대답한 사람이나 크게 말한 사람에게 더덕씨앗을 한 봉지 더 담아 주니 그거라도 더 타려고 열심히 귀를 기울이며 묻는 내용에 대한 답을 합창했다.

 

약속한 5분은 30분이 훌쩍 넘었는데 여전히 협력업체 운운하는 것으로 보아 말이 길어질 게 뻔했다. 역시나 구청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고 재활용 봉투를 나눠주겠다는 것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특정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던 것이다.

언젠가 그릇 선전이나 신토불이 국수 판매업체에서 나왔다고 했을 때도 그와 비슷한  경험했던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다. 이왕 나온 김에 뭐라고 하는지 끝까지 지켜볼 심산이었지만, 좁은 천막 안에 감돌고 있는 역겨운 냄새를 견딜 수 없어 천막 바깥으로 빠져 나왔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심호흡을 하며 맑은 공기를 마시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딱 5분간에 걸쳐 한 달 분량의 재활용 봉투를 나눠준다는 말만 믿고 모두들 바쁜 일손을 미루고 나왔던 것일 텐데 특정 제품에 대한 홍보는 좀처럼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끝까지 지켜보고 있자니 너무 따분하여 리모델링 사무실의 새댁과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먹으면서 수작이 뻔한 결말을 논하고 있는데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선전이 포장마차에까지 들렸다.

 

"여수, 목포등 타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맛을 보시라고 소량이나마 열흘분을 공짜로 나눠줬었는데,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솔직히 열흘 먹어보고 큰 효과는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곳 광주에서는 단 몇 분이라도 많은 효과를 보시라고 30여만 원짜리의 홍삼엑기스를 감사의 뜻으로 딱 네 분한테만 한 병씩 나눠주려고 하는데, 여기 계신 분들 중에 혈압 높으신 분 안 계세요? 혹시 당뇨 있으신 분? 그런 분들은 필히 드셔야 하니 주저 말고 손을 드세요. 딱 네 사람한테만 공짜로 드릴 테니 부담없이 드시고 효과만 얘기해주면 됩니다. 어디 희망하실 분?" 하며 자신의 한 손을 높이 들고 좌중을 두리번거렸다. 

 

예전에야 시골 장터에 가면 유랑 국극단이 보름 이상 머물면서 구성진 판소리가 가미된 창극의 중간 중간에 약 선전을 하였는데, 지네나 굼벵이를 말려 빻은 가루를 몸에 좋은 약이라고 해도 다들 혹할 정도의 사탕발림으로 군중심리를 자극하였겠지만, 이제 그런 상술은 하도 판을 쳐서 다들 심드렁하였다. 혹시나 하고 왔다가 역시나 하는, 속은 느낌이 들었는지 한 사람 한 사람 자리를 이탈하였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비싼 제품을 공짜로 주겠냐 싶어 선뜻 아무도 호응을 하지 않자, 이제까지 침을 튀겨가며 열을 내서 홍보를 했던 그 50대의 남자가 지원을 안 할 사람은 얼른 돌아가라고 신경질적으로 얘기를 하여 분위기는 삽시간에 썰렁해졌다. 

한 시간 동안 기다렸던 시간이 아까워서 끝까지 남아 있던 몇 사람들이 재활용 봉투는 언제 주느냐고 묻자, 이미 줄 사람은 다 나눠줬다고 인상을 구기며 얼른 가라고 손으로 쫓는 시늉을 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애초부터 재활용 봉투는 순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미끼였던 것이다.

 

아무리 제품 홍보도 좋지만 정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그처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주민들을 우롱하여 피해를 주는 홍보는 하지 않아야 하는데, 다른 곳에 가서 또 얼마나 입에 발린 말과 미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현혹시켜 몸에 좋다는 말에 귀가 얇아진 시골 노인들을 등쳐먹으려 할지 심히 염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