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에게 안부를 묻다 / 김미애

작년 초겨울, 가게 셔터 문을 열려고 할 때면 셔터 문 앞쪽에 쌓여 있는, 한 줌의 모래를 발견하게 되곤 했었다.

보도블록 틈 사이에 생긴 몇 개의 바늘구멍이 점점 커지고, 한 무리의 개미들이 그 틈을 드나드는 것을 보면 한 줌의 모래는 개미들이 땅속으로부터 지상으로 운반했던 것이 틀림없다.

겨우 좁쌀 두 개 이어놓은 듯한 개미들이 일일이 입으로 물어 운반했다고 보기엔 너무 많은 양이어서 처음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가게 셔터 문을 열어놓고 그 앞에 발이 저려올 때까지 쪼그리고 앉아 개미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보니 그 개미들의 입에 물려있는 것은 분명 모래였다. 

구멍 속에서 나온 개미들이 입에 물고 있던 모래를 구멍 바깥쪽에다 내다 버리더니 나왔던 구멍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또 다른 개미들 역시 모래를 입에 물고 구멍에서 나왔다가 맨몸으로 다시 구멍으로  들어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공사를 감독하는 개미가 따로 있어 그 지휘 아래 움직이는 듯이, 한 알갱이 알갱이를 입에 물고 운반하는 작업이 밤새 쉴 틈 없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을 보면, 개미들에게도 나름의 의사소통과 어떤 질서에 의한 집단생활이 엿보였다 .

그렇지 않고서야 땅속에 있는 모래를 구멍 바깥쪽으로 옮기는 반복적인 작업을 집단으로 할 수 없지 않겠는가?

나는 게으름에 빠져 이불 속에서 뒹굴며 '딱 오 분만!', '진짜 오 분만!'하고 미적거리고 있을 때도 개미들은 졸리는 눈을 비벼가며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티끌 모아 태산'은 개미들이 옮기는 모래더미를 두고 하는 말이란 생각도 든다.

개미들이 철야작업으로 물어다 수북이 쌓아놓은 모래더미를 아침마다 빗자루로 쓰는 게 나의 하루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넓혀진 구멍들이 몽당빗자루의 움직임에 밀려 모래더미가 사방으로 흩어지고, 기껏 파 놓은 구멍도 도로 메워졌다. 이제껏 밤샘작업을 하여 구멍을 넓히는 공사가 번번이 나의 심술로 허사가 되어 버렸고, 한 눈 팔 사이 없이 모래 한 알씩 입에 물고 끊임없이 운반하던 개미의 무리들도 힘없이 떠밀려졌다.

개미들의 가족에게 비상을 알릴 틈은커녕 한 마디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고, 몇몇 개미들의 파르르 떨리는 움직임이 멈추었다. 

개미들에게는 정말 못할 짓이었지만, 하필 가게 바로 앞에서 진행된 공사인지라 나로선 가게 미관상 몽당빗자루로 쓸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몽당빗자루로 모래더미를 치우고 주변정리를 하는 나는, 본의 아니게 개미들의 땅굴공사를 방해하고,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몽당빗자루에 의해 떠밀려졌어도 운이 좋은 몇 마리의 개미들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몸을 추스르더니, 앞발로 제 얼굴이며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낸 후 싸늘하게 나자빠져 있는 동료들에게 다가갔다. 조금 전까지 부지런히 발놀림을 하며 함께 모래를 물어 나르던 동료의 죽음을 마냥 슬퍼할 겨를도 없이 죽은 동료를 입에 문 비장한 행렬이 보도블록 사이의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가족들에게 비보를 알리고 장례를 치러 주기 위함인 듯했다.

무지막지한 빗자루에 의해 동료들을 잃었음에도 굴하지 않고, 다음날 아침에 가게 앞에 와서 보면 또 다시 진행된 땅굴 파는 공사에 의해 어김없이 모래더미가 쌓여 있었고, 날마다 쓸고 또 쓸어도 수북이 쌓여 있곤 했다. 대단한 집념이 아닐 수 없었다.

몽당빗자루에 의해 깨끗해진 바닥 그리고 보도블록 틈새가 조금 더 커진 사이로 몇 마리의 개미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중의 한 구멍에는 밤벌레 한 마리가 구멍 바깥쪽으로 통실통실한 궁둥이를 쳐들고 있었다. 밤벌레가 그 구멍 안쪽으로 들어가기엔 바늘귀만 한 구멍인데도 그 주위에 대여섯 마리의 개미들이 밤벌레를 구멍 안쪽으로 들이기 위해 합심하여 낑낑거리며 잡아당기고 있었다.

개미들에 의해 통실통실한 궁둥이가 속절없이 들썩이고 있던 그 밤벌레는 11월 말경에 남편의 친구 부부와 우리 가족이 지원동의 한적한 야산에 도토리를 주우러 올라갔다가 다람쥐에게 도토리묵을 쑤어다 갖다주마 약속하고, 낙엽 밑에 감춰둔 다람쥐의 겨울 비축 식량을 배낭 가득 얻어올 때 엉겁결에 딸려왔던 모양이었다.

가게 앞에 돗자리를 깔고 다람쥐에게 얻어온 도토리를 말리기 위해 내다 널어놓았더니, 초겨울 햇살치고는 강렬하여서인지 반나절도 안되어 성미 급한 놈들이 저절로 톡! 톡! 콩 볶아지는 소리와 함께 겉껍질이 쩍 갈라지며 노르스름한 속살을 보여 주었다.  

그중의 한 도토리에서 머리인지 꽁무니인지 분간이 안 되는 통실통실한 벌레의 몸뚱이가 고개를 내밀더니 부신 햇살에 번데기처럼 주름을 잡으며 꿈틀거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벌레의 출현에 너무 놀라 손을 탈탈 털면서 밤벌레가 들어있는 도토리를 내팽개쳤다. 도토리와 함께 데굴데굴 땅바닥에 구르던 밤벌레가 나에게서 멀찌감치 벗어나려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바삐 기어서 도망갔었다. 그런데 매연 냄새 폴폴 풍기며 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의 기세에 눌려 적응하지 못하고 도심에 나온 지 채 하루도 안 되어 그만 목숨 줄을 놓아 버렸던 모양인데, 운수대통한 부지런한 개미들이 그 죽은 밤벌레를 땅밑으로 거두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밤벌레는 도토리 속에 둥지를 틀고 커다란 상수리나무 밑동 아래 누워 푹신한 낙엽을 이불 삼아 덮고 겨울을 나려 했었을 텐데, 다른 도토리들에 섞여 전혀 낯선 도심으로 휩쓸려 들어왔다가 나비가 되려는 꿈을 채 펼쳐보지도 못하고 졸지에 개미들의 밥이 될 팔자였을까?

지지리 운이 없는 놈이었다. 

개미들이 밤벌레를 땅속에 묻어줄 심사는 아니었을 테고, 아마도 겨울 식량으로 운반하는 듯 했다.

그렇게 한 며칠 부산스레 움직이던 개미들이 찬바람이 분 이후 조용해졌다. 그동안 부지런히 비축해 둔 식량으로 땅속에서 겨울나기엔 큰 어려움이 없었겠으나, 개미들이 파놓은 구멍 또한 흔적도 없이 메워져 있어서 아직 땅 속에 묻혀있을 개미들의 안부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