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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일기 5


BY 써머스비 2008-09-17

                                                                                     2008. 03. 06 木


 아버지 형제분들이 병원으로 모이기로 했단다. 부산고모 내외분이 11시 조금 지나자 제일 먼저 도착하셨다. 부산에서, 서울에서 각각 출발하여 신탄진역에서 11시에서 11:30분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간을 맞췄다고 했다. 조금 있으니 평택 고모부와 작은 아버지 내외분, 안양고모 내외분이 다 오시니 좁은 병실이 꽉 찬다. 형제분들이 놀라서 달려오시는 것을 그저 가벼운 병문안으로 인식시키느라 오빠와 나는 덤벙거리며 허허대야 했다. 특히, 나는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점심 드시는걸 보고는 다 함께 (택시한대와 오빠차로) 대청댐 가는 길에 있는 매운탕 집으로 이동했다. 오빠는 우리 일행을 식당마당에 내려놓고 곧 바로 신탄진역으로 가서 서울 일행들의 표를 바꾸러갔다. 모처럼 부산 고모 네까지 다 모였으니 한 시간이라도 늦게 헤어지려는 것이었다. 그 사이 우리는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시키는데 평택 고모부와 안양고모부가 이것저것 질문도 많고 비싸다며  꽤 깐깐하셨다. 물론 부산 고모부야 더 말할 나위없고.

 

 오빠가 돌아오고 매운탕을 드시면서는 꽤  흡족해하며 옛날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평택 고모부는 원래 ‘진모래’라는 마을에 사셨다. 대청댐이 생기면서 수몰된 고향을 떠나 이주지인 평택으로 가신 것이다. 진모래 고모부가 평택 고모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고향 언저리에 오니 얼마나 그 시절이 그립고 금강의 물고기 맛이 간절하실까, 그 마을에서 쏘가리와 메기를 많이 잡기도 했었는데 감회가 남다르기도 했을 것이다. 작은 아버지까지 자연산 매운탕 맛에 빠져 그 시절을 추억하신다. 식사를 마치고 오빠는 신탄진역으로 대전역으로 차량 운행하느라 또 바쁘다.

 저녁에는 오빠 학교에는 직원들이 열댓 명이 한꺼번에 다녀갔다. 오빠 직장에서 병문안이 끊이질 않는다. 두 개의 난화분이 아버지의 쾌유를 빌고 있는 병실이다.

 

                                                                                     2008. 03. 07

 

 오늘도 하루 종일 오빠 손님이 이어졌다. 교대해주기로 한 오빠는 손님접대로 술이 취해 전화를 했다. “너, 6:10분 차(병원에는 나오는 버스 시각)라고 했지? 내가 지금 가니까… 가슴이 짠하다. 오빠에게 오지 말라고 전화를 하고 동생을 시켜 또 전화를 하게 했다. 네가 교대해 줄 테니까 그냥 집으로 가서 쉬라고.

 

 밤중에 병실에 환자가 들어왔다. 백령도에서 오셨단다. 여든 다섯의 연세에 전립선암이라고 한다. 등에는 욕창이 생겼고 풍채가 상당히 좋으시다. 부인과 함께 입원을 했다. 할아버지 병간호를 하다가 허리가 휘었다는 표현이 적절한 형편이었다. 부부가 함께 오셨지만 병실을 따로따로 써야 하니 병원에서 헤어져야했다. 할아버지는 우리 아버지와 한방을 쓰고 할머니는 앞에 있는 6인실로 가셨다. 병원 규칙상 여자 남자로 성을 구분하니 비록 부부라도 합방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거참 80이 넘은 나이에도 여자, 혹은 남자라니….그 밤에 간병인 한명이 왔다.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간병인을 두 명 둬야 했다. 한 병실에 있으면 그런 저런 것이 반으로 줄 수도 있을 텐데.

 

 할아버지 간병인으로 온 여사님이 책을 읽고 있다. 나도 책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