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장품 '나‘뿐이다
집주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을 팔겠으니 살 의향이 있는가를 간접적으로 물어 온 것이다. 이 집으로 이사할 때 우리가 팔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었다. 집안을 한 바퀴 둘러본다. 이 아파트를 살 것인가,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장롱이 새삼스럽다. 설렁설렁 지나온 시간 속에서도 살림살이는 늘어나 있었다.
언젠가 이런 생각으로 집안을 둘러보았던 생각이 났다. 칠년은 족히 지난 일이다. 내가 ‘우리’에서 빠져나오기로 하고 주변을 정리할 때로 여름이었다. 삼복중이었고 내 인생도 여름의 삼복을 치러 내느라 숨 막히던 시간이었다. 난 여름을 극도로 싫어했다.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칠월의 마지막 주 이었으니 모두들 휴가를 떠났거나 떠나느라 도시는 텅 비어 있었다. 우리의 결혼 생활도 공허한 가슴만 남기고 텅 비어 있었다. 빈 가슴에 들어앉은 인천의 바람으로 흔들거리느라 어지러웠다.
그때 둘러본 주변은 우선, 애물단지로 자리한 친정에서 바라볼 내 위치가 두려웠고, 그가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았으니 살림을 드러낼 형편도 아니었다. 집안 구석구석 10여년을 쌓아온 찌든 서로의 일상은 이미 마음에서 정리한 터였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 것이라곤 없었다. 3년 전에 새로 구입한 장롱은 그 사람 취향으로 고른 것이었고 마누라보다 애지중지 하던 오디오도 물론 내 것은 아니고 덜덜거리는 세탁기와는 이미 정이 떨어진 상태였다. 어렵게 정을 붙이고 새끼까지 낳았던 강아지도 다른 집으로 보낸 지 오래되었고, 모든 것이 ‘우리’것이었지 온전히 내 것이라곤 없었다. 입는 옷가지에도 인천의 바람과 우리가 묻어있어 손대기도 싫었으니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있을 리 없었다.
빈손으로 약간은 두려운 무전여행 떠나듯 칠월의 마지막 주에 인생의 휴가를 떠나왔다. 그렇게 빈 내 인생의 여름을 새로운 곳에서 맞이한 것이다. 장마철처럼 질질거리며 꿉꿉한 시기를 보내며 가을을 맞이하고 겨울을 살았다. 아마 그때는 ‘나’도 없었던 날들이었을 것이다. 내 몸 하나 둘 곳도 아쉬웠던 그 시기를 그래도 흐트러지지 않고 살아낸 것은 아버지와 형제들 근처였기에 가능했으리라.
어차피 다~아 버리고 떠나 빈털터리가 된 김에 난 내 것이라고 이름 부칠 아무것도 갖지 않기로 마음을 다졌다. 사람은 물론 한줌의 흙을 품은 화분의 꽃 한 송이까지 말이다. 아마 가질 형편도 되지 못했던 자기 합리화였을 것이다. 마음은 평화로웠다. 날마다 하늘을 날 것처럼 가벼워 어디든 마음껏 날수 있을 줄 알았는데 무일푼이었으니 내 시간을 팔아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만 했다. 누구의 마누라를 포기하고 그저 나로 살려고 시작한 생활이 나를 빼앗아 가고 말았다. 아직도 나를 위한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부자가 된 것도 아니면서. 어느새 시간이 흘러 열자나 되는 장롱을 안고 살면서 나를 돌아보며 내 소리를 듣는다.
인천에 마음을 주고받던 친구가 있었다. 그녀 아직 신혼이었을 때 신랑이 퇴근할 시간이면 화장을 하곤 했다. 야채가게를 하는 중에도 맨얼굴을 하고 있으면 신랑이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토닥거리는 그녀에게 “등에 본드 칠을 해 줄 테니 잘 보이는 벽에 가서 붙어 있어라”고 놀려대곤 했다. 남편이 그녀를 소장품 취급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는 내색을 한 것이었지만, 부부는 서로 조금씩 그런 생각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사는 것 같다. 이제 내 것이 아닌 그를 만나면 조금은 너그러워 질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때는 우리도 사랑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녀는 엄지공주가 되어 남편의 양복주머니를 들락거리는 새댁이었을 것이고, 그는 하루 종일 주머니 속의 새댁을 진정으로 어루만지는 신랑이었을 터 나는 당신 꺼야, 당신은 내 꺼야를 노래하지 않은 신혼부부는 없으리라. ‘소장품’이라는 주제로 합평회를 하기로 했기에 나 스스로를 소장품으로 내세우기로 했다.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하늘은 도도하기 이를 데 없이 파랗게 반짝이며 높고도 드높다. 산에는 물론 거리에도 단풍이 들어 화려하고 풍요로워 기쁘고 예쁘다. 요즈음 내 가슴 한쪽도 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세상을 버리고 싶을 만큼 힘겨웠던 순간도 있었다. 이제 그 기억은 까마득한 남의 일이 되어버렸다. 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 있어 행복하다. 산에 오르면 숨이 턱에 차도록 힘겨워도 꼭 정상에 오르고 만다. 산마루에 서서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본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슬아슬한 계곡을 톺아 오른 기억은 희미하고 기쁨만이 가득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더욱 나의 소장품‘나’를 갈고 닦을 것이다. 도도한 하늘을 찌르려고 산에 오른다. 그리고 밤이면 독수리가 되어 자판을 두드린다. 그러면 열릴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