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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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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BY 써머스비 2008-09-17

 

                                   거리에서

                                                                            

 나는 움직인다.

 길을 걸을 때는 정지되어 있는 것을 바라보며 버스에 앉아 저절로 굴러갈 때는 다른 움직이는 것을 바라본다.

 산에 가면 지치도록 걸으면서도 나는 걷는 것이 너무 좋다. 요즈음은 방학이라 시간에 맞춰야 하는 부담이 줄어서 출근을 할 때도 걷고 퇴근을 하면서도 반쯤은 걸어 다닌다. 아파트 상가에서 가꾸는 꽃밭이라는 안내판이 있는 화단이 도로를 바라보고 아담하게 펼쳐져 있어 걷는 내내 눈길이 바쁘고 기분이 좋았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때 이른 가녀린 코스모스가 어설프게 피었다가 땡볕에 타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었다. 여기는 넓은 도로로 언제나 차들로 넘치는 곳이다.

  대개는 갈마고개쪽으로 걷게 되는데, 갈마재에 이르면 조그만 동산이 있다. 동산이 흘러내린 인도엔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강아지풀, 까마중 등이 무성한 잡초와 어우러져 있다. 그 사이로 누군가 먹다버린 수박쓰레기에서 자라난 수박이 허약하나마 넝쿨을 뻗어내고 있다.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곳에서 풀 한포기라도 만나면 애처롭게 느껴진다. 일주일에 한번 충남대학교에 가다가 만나는 은평공원 잔디밭에는 하얀 분칠을 한 철근을 구부려 담장을 만들어 보랏빛 도라지꽃을 가두고 있다. 휙휙 달려가는 자동차의 매연에 고개를 흔들어 대던 도라지꽃이 수박넝쿨위로 겹쳐진다. 다행히 아파트담장을 오르는 나팔꽃이 있어 어린 날 기차놀이하면서 불던 추억이 생각나 흐뭇해진다. 소박할지라도 자연은 언제 어디서나 날 미소 짓게 한다.

 버스를 타고 있는 동안은 거리를 본다. 거리를 채우고 있는 간판들과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달리는 차 안에서 달려가지 않으려고 몸을 뒤로 당기고 있는 내 모습을 느끼기도 한다. 나에게 버스는 사색의 공간이다. 금방 내려야 하는 짧은 거리가 아쉽지만 그도 방학동안 만 느끼는 여유일 뿐이다.   여행이라는 것은 잠시 일상에서 떠나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을 떠나 또 다른 일상이 기다리고 있는 문구점까지 가는 동안은 생활에서 비껴나 나만의 세계에 몰입할 수가 있다. 비록 짧은 거리로 잠깐일지라도 방학이 끝나면 멀게만 느껴질 거리이니 모든 게 내 마음 안에 있는 것이다. 감옥살이 한다고 안쓰러워하던 도라지꽃에서 지난 산행 길에서 만난 도라지꽃을 만날 수도 있으니 척박한 도심의 거리에서 연약한 꽃들을 만났음을 감사할일이다.

 버스에서 내리면 회화나무 가로수에서 떨어진 노란 꽃잎을 밟으며 서대전고교의 빈 운동장을 지키고 있는 전나무와 벚나무 그늘을 걷다가 가게가 있는 아파트 담장을 따라가게 된다. 도로와 인도를 가르는 쥐똥나무는 자동차가 일으키는 먼지를 걸러주는 있는 듯 시커먼 먼지를 이고 있다. 아파트 담장 안에서 향나무와 단풍나무그늘에서 달개비 꽃이 노란 수술을 안고 삐죽삐죽 내다본다. 달개비 꽃과 눈을 맞추며 걷노라면 달개비 꽃 흐드러진 개울가에서 가재 잡던 코흘리개시절이 따라오는데, 저기 문구점의 내려진 셔터는 나를 손짓하고 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려준다.


  저녁이 되면 버스 안에서의 시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통계청이 있는 복개도로를 지나는 곳에는 음식점이 많이 모여 있다. 한 달이 멀다하고 사라지는 간판과 새로 들어선 간판들로 어쩌다 지나는 이들에게는 낯설기도 한 곳이다. “엄청 매운 돼지갈비”집은 “누룽지 삼계탕”으로 이름을 바꾸고 환하고 텅 빈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내 퇴근시간이 늦어 다들 돌아간 것이라면 좋으련만 건너편 갈비집엔 도로까지 손님이 벅적이는 것을 보니 내 집에 손님이 없는 양 속이 짠하다. 도로를 바라보고 있는 집들은 아파트가 아니면 모두 간판을 달고 있으니 겉모양은 화려해도 속은 비어있지 않을까 싶다.

 버스는 교통방송국을 지나, 가로등 한등 끄기를 하는 내동사거리에 나를 내려놓는다. 길 건너 편의점 오락기에 아이들은 매달려있고, 어른들은 파라솔 아래 모여 있다. 정류장 모퉁이에선 “달고 맛있는 꿀수박”을 외치는 과일트럭이 귀가하는 사람들을 부른다. 아파트로 들어서니 한 평이나 될까 경비실에서, 나이 드신 경비아저씨가 늦은 저녁을 홀로 드시는 게 또,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밤이 늦도록 “달고 맛있는 꿀수박”은 보채고 있다.

 

  버스도 집으로 가느라 바쁘기만 하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