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장이 섰다. 죽은 바다를 펼치느라 사람들이 파닥거리는 이른 아침, 장마당엔 비둘기만 모여 있었다.
한 달 만에 병원에서 돌아오니 목요 장터가 열리고 있었다.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병세가 깊어질 데로 깊어진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체 장 구경을 하신다. 널뛰듯 하던 당 수치도 조절되었고, 푸슬푸슬한 병원 당뇨 식에 물린 참에 집에 왔으니 공기부터 다르다 하신다.
나는 속내를 감추고 입원하기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백두대간을 함께한 회원들과 정기산행이 있는 날, 이번에는 태안바다로 간다고 했다. 어렵사리 시간을 내서 따라 나선 것은 아버지처럼 아픈 바다였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에서 간간이 비를 만나기도 했지만 오늘의 일정을 소화하는데 무리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도, 바다도 갑자기 당한 사고의 충격에서 벗어나려고 허둥거렸다. 응급처지를 하는데도 많은 사람과 시간이 필요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비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물씬 풍기는 기름 냄새에 내릴 곳을 찾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는 걸까. 갯내음이 사라진 바다의 슬픈 몸부림일까. 기름유출사고로부터 100일이 지났고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비가 오고 있어서 섬으로 들어가지 못해 아쉬웠다.
바다를 등지고 앉아 손끝이 아프도록 자갈밭을 팠다. 거머리 같은 타르 덩어리가 물위로 떠올랐다. 아버지의 낡은 내의로 기름덩어리를 찍어냈다. 돌멩이를 박박 문질러 닦고 또 닦았다. 할 수만 있다면 빨간 새살이 나도록 닦고 싶었다.
바다는 아무것도 모르는 개구쟁이처럼 빗속에서 철썩철썩 보채고 있었다. 우리는 이리저리 헤집어서 암 세포를 발견했을 뿐이다.
물때가 든 바다는 우리를 밀어내고 비마저 내려 그저 충만하기만 하였다. 우리는 무거운 걸레 부대를 져다 놓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왔다. 항의하듯 세찬 비가 계속 따라왔고 아파트 입구에서 흩어졌다.
새벽까지 아버지의 기침소리는 철썩철썩 뒤척인다. 내일도 여전히 아픈 태양은 떠오르겠지. 서해안에서 그리고, 우리 집 베란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