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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아, 나는 통곡한다 (1)


BY 들꽃 2008-09-30

아직 겨울의 위풍이 겹겹이 껴입은 옷 사이로 스며 들어 오는 대학의 강의실은,  안그래도 정 붙일곳 없어 빙빙 겉돌고 있는 나의 맘에 시린 추위만 안겨줬다.

답십리에 있던 외갓집에서 흑석동 까지의 버스길 역시 만만찮았다.

갑자기 바뀌어진 환경에 도무지 잘 알아 들을 수 없던 서울말 억양의 교수님 강의 까지.

모든게 낯설었고 그래서 토요일만 손꼽아 기다렸으며  이른 아침 고속 버스에 몸을 싣고서야 정신없이 보낸 한 주의 고단함에 온 몸이 결리지 않는곳이 없었다.

 

하지만 가족의 반김도 시간이 흐를수록 반감 되어졌고  무엇보다 고속버스비가 차지 하는 금액은 빠듯한 용돈이 감당해 내기엔 무언가 대책이 요구되는 지경에 이르러있었다.

 

그즈음 이었다.

'국문과 전학년 상견례'가 교문 들어서서  왼쪽 벽에 자리하고 있던 학교 게시판에 대문짝 만 한 글씨로 눈길을 사로 잡은 것은.

별 흥미가 당기진 않았지만  내 생활의 변화가 절실히 요구되던 상황에 봉착 되어 있은지라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어느새 '새침떼기' '얌전이'란 닉네임으로  불려지던 나는 강의가 없는 시간엔 누구와 어울리는 주변 머리 없이  넓은 캠퍼스를 이리저리 다니며 혼자 놀았다.

입술에 침 튀기며 잠시 써클방에 들어와 따뜻한 차 한잔 마시고 가라는 선배의 간절함도 나에겐 소귀에 경 읽기였다.

 

어쨌던 전체 모임에 나가서 선배들 얼굴도 익히고 분위기 파악도 해 보자는 심산으로 모임 장소와 시간을 품에 안고 있던 노트 귀퉁이에 열심히 베껴 적었다.

"어머~~너도 갈거니? 너, 학사주점이 어디에 있는지 아니? 재미있을것 같지 않니? 난 마구 설렌다 얘.

근데 넌 너무 얌전하다 얘! 우리과 남학생들이 널 알고 싶어 몸살들을 하던데, 넌 알고 있었니?"

피부가 뽀얗다는 것 말고는  눈길 끄는 이쁜 구석이 없는 평범한 얼굴의  박경숙 이란 애.

그러나 그녀는 활달 했고 거침이 없었다.

난 그런 그녀가 내심 부러웠던 참이다.

스스럼 없이 그녀가 내 팔장을 끼고 들어왔다.

반가운건 아닌데 그렇다고 슬그머니 빼 버리기도 뭣하여 그냥 덤덤히 그녀가 하는대로 따랐다.

 

안그래도 모임 장소에 혼자 쭈볏거리며 찾아 가기도 난감 하던 차에 다행이라 여겨졌다.

강의 듣는 내내 그녀는 나에게 쪽지를 건냈고 약간 성가시다 여겨 지니 짜증이 곤두섰다.

막 마음을 추스리려 할 즈음 뭔소리 하는건지 하나도 귀에 들어 오지 않는 노 교수님의 수업이 끝났다.

 

강의실 문을 빠져 나오니 아직 매운 바람의 끝맛이 오히려 기분 전환을 시켜줬다.

한시간 비는 강의 시간을 청운 다방에 앉아 보내기로 작정 하고 다방에 들어서니 커피향 컴프리 차 향 홍차향이 끝없이 피워대는 담배 연기에 희석 되어 dj의 말과 흐르는 음악에 출렁 거리며 내 앞에 먼저  길 안내 하는듯 했다.

 

잠시 혼돈스러워 다시 나갈까 망설이고 있는데 눈치 빠른 dj가 나를 향해 한멘트 날린다.

"방금 들어 온 언니~~뭘 그리 멀뚱하게 서 있나요? 이 옵파 앞 자리로 써억 들어 오세요. 김양~~어서 이 언니께 뜨거운 오찻물 대령 하시구요~~~

자~~언니는 무슨 뮤직을 리퀘스트 하실건가요? 김양, 언니께 음악 신청 용지도 함께 배달 하세요"

 

그의 수다스러움도 역겨웠지만 화악 내게로 쏠리는 눈길이 너무 당황 스러워 입구에 마침 비어 있던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서울로 유학 와서 바뀐 내 성격중 하나가 사람 많은곳이 싫어지는것이었다.

형제간 많은곳에서 남부럽지 않게 성장 했던 나는 성격도 당연히 밝았다.

하지만 왠지 이곳에선 한없이 위축 되어지는 자신을 당황스레 바라볼 뿐 이었다.

 

어영부영 하루 강의가 끝나고 전체 상견례 할 시간이 다가 왔다.그물에 물고기 몰이 하듯    이탈자 생기지 않게  선배들은 부산하고 빠른 몸놀림으로 우리 신입생을 선한 얼굴로 호감 사기에 바빴고 그 중에서도 행동 민첩한 이들은  강의실 마다   입나팔 불어대며 학사주점 오후 7시 전원 참석을  외쳐댔다.

 

학사주점 앞 까지 나는 혼자 찾아갔다.

어느새 삼삼 오오 무리들을 지어 주점 안을 부유 하고 있었다.

그냥 구두 앞 주둥이로 애꿎은 땅을 파 헤치며 그때 까지도 선뜻 마음 정리 못하고 서성대고 있던 나는  누군가의 우악스런 손길에 코트 자락을 낚아 채여 뒷걸음질로 술집에 끌려 가는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주점 문턱을 넘었다.

 

밖에서  흘깃 봤던 내부의 모습은 예상보다 넓었고 참석한 인원들이 쏟아 내는 무수한 말의 홍수는 이미 모든 기능을 압도 하고 있었다

 

나도 어느 테이블에 앉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그곳엔 선배들이 버티고 있는 아성 이었다.

나중에 느낀 일 이지만 정해진  인연의 오랏줄은 나를 그 시간 그 테이블로 초대 하고 있었던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