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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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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잔영, 가을빛


BY 들꽃 2008-09-08

떠났구나...

정해진 틀 어쩌지 못해, 입고 있던 옷들 추억인양  벗어 두고 떠난거 맞네.

이젠 익숙할 때도 되었건만,

아니, 익숙해진척 하느라  니가 깔고 잤던 이부자리 서둘러 세탁기에 넣고  주섬주섬 방 정리 하는 척 하다가

개켜 놓은 니 옷가지 위, 언제나 처럼 놓여 있는 편지 한통에 꼭꼭 숨겨논 어미 마음 그냥  퍼질러 놓는다

이제 10개월 남았다 그쟈?

세상속 부대끼며 살아가는 나는 짧은 시간 일 수 있건만 커피 한잔 전하려 다가간  니 방앞에서 친구에게 하는말 본의 아니게 듣고 말았구나

"훈련병 일땐 멋 모르고, 이병 일병 일땐 그냥 시키는 대로 죽어라 일만 하면 되었는데 이젠 알만큼 알아 버려서인지 이번 휴가 마치고 귀대 하면 남은 시간이 참 지루해 질 것 같다 사회 생활에 밀린것 같은  조바심도 나고.."

 

아려오는 맘 주체할길 없어 미처 전하지 못한    커피잔 들고 내 방으로 왔었지.

하지만 이번 휴가는 의미가 새로운것 같지않니?

안치환 콘서트가 그랬고 호텔 부폐 식사가 좋았었지.

세상 모든일이 좋은것과 나쁜것이 함께 하듯, 선희 아버지 생신에 그쪽이 보인 태도.

두고두고 가슴에 걸림돌로 남는구나

 

휴가전, 설레고 떨렸을 니 마음. 생신전날 선물 고르기에 약간 들 떠 있던 너의 그 맘 씀씀이가 물거품 된 순간을 맞이하곤, 어른이라고 다 어른의 모습은 아니구나 느꼈을거다

 

나도  사람으로 인한 잔인한 아픔이 있은 터라  추석을 맞아  곳곳에 보내고 싶던 내 맘의 정표를 모두 접어 버렸다

크고 작은 모임들도 모두 유보해 둔 상태다

그냥 다 허무하고  두렵고 헛짓 하는것 같은 생각에 패닉 상태가 되어 있다

 

선희와 결혼 한디는것, 그래 찬성한다

굳이 그애가 맘에 있어서가 아니라 니가 사랑 하는 여자 이기에 내 사랑도 덤으로 아낌없이 보태는거야

하지만 일방적인 사랑주기 고려했음 한다

주는쪽은 진심을 다 하지만 받는쪽은 그냥 데면데면 할 수 있음이더라

아프지마라. 니가 사랑했던 사람으로 부터 아픔 당하지 않았음 한다

 

니가 저번 3월 휴가 나온 후 나는 헬스장을 다녔는데  이번엔 니가 제대 할 때까지 짬짬이 여행 다닐 계획을 세웠다 

예진이 수능 끝나면 황산 7일 코스 다녀 오려 맘 정했고, 선영 언니 있는 터키에 가서 있고싶은 만큼 있다 오려고 해.

속 모르는 사람들은 팔자 좋은 여편네라 숙덕 거릴지 모르겠고, 내년이면 대학생이 둘이나 되는데 정신이 어찌 되지 않았나 웃음거리 삼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내맘 가는대로 할거야

 

통장에 잔고는 커녕 마이너스 생활 십여년 했지만 빚갚고 큰집 사고 차사고 너희들 부족함 없이 키웠으니 이젠 나를 위해 투자해 볼 참이야. 너도 적극 찬성해 줄거라 믿어.

 

요즘 책 읽기 하다보면 '여행'이 대세야

'끌림, 유럽의 책 마을, 라틴 화첩 기행, 일생에 한 번쯤은 파리지앵 처럼..'

이 책들엔 나의 부러움 담긴 밑줄긋기가 수두룩 빽빽.

그래서 맘에 끌리는 책은 무조건 사고본다. 밑줄 긋고 싶어서 ....

 

니가 시간이 한가로워지거든 알려줘.

너에게 읽히고 싶은 두권의 책이 있는데   꼭 사서 면회갈때 들고 갈게.

할레드 호세이니 의 '천개의 찬란한 태양' 과  신달자님의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나는 이 두 권의 책을 읽은 후 며칠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천개의 찬란한 태양'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소리내어 울어 버렸다  말과 글이 무색한  깊은 감동을 주는 책이었다.

 

두권 다 지난한 여성의 삶을 수려한 필체로 엮은 책인데, 남자인 너에게 꼭 강추 하고 싶어.

 할레드 호세이니가 쓴 '연을 쫓는 아이들'은 아프가니스탄 남자들의 얘기를  담고 있는데,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먼저 읽은터라 맛이 밋밋했고, 이번에 사서 읽은 '명에 살인'은 너무 싱겁기까지 해서 약간 당혹 스러웠다

또 강추 하고픈 책,  '위대한 패배자'는 복학한 다음 꼭 읽어 주기 바랄게.

 

니가 이번에 그랬잖아~~"한풀이 하듯 책 읽어 댄다. 무섭다"고..

그래, 영혼을 팔아 버릴것 처럼 읽어댈거야

혼자 여행 다녀 와 보고 찡하게 걸러 지는게 많으면 너희들도 꼭 보낼거야

내년 여름, 동생과 유럽 여행 갔을때 빡빡한 일정속에  '프라하'도 넣어  발품 팔고 오기 바란다

이런 저런 얘기 나누다 보니 전역일인  내년 7월 9일이 금방 다가와 코 앞인것 같은데...나만 그런거니? 하하 그런거야?

 

뭐하고 시간 보낼런지 안타까운 눈길로 보지마라.

나 요즘 너무 좋은 숲속을 알아 놔서 생활 패턴 바꿔가며 즐기느라 정신이 없다 

니가 있어 잠시 접었을 뿐 이야.

찐고구마 한 개, 사과 한개, 물 한통, 사탕 두어개랑 읽을 책 한권 들고 큰 손수건 한 장 준비해 가면 넓직한 바위위나 평평한 나무 그늘 아래 자리 잡고 앉아 종일토록 해바라기 즐기고 건들 바람과 희롱 하며 얼추 책 한권 다 읽고 온다야.

 

당분간 사람과의 조우 접고 숲과 사랑에 빠져 보려구.

9월이 가기전 12권의 책을 읽을거라는  좀은 벅찬 계획에 숨결은 가빠 오지만 새로운 정기 맘껏 흡일할 생각에 신바람 났어.

오늘은  생생한 너의 잔영이 내  길 안내 해 줄것 같고  널 대신한   가을빛 한웅큼, 종일 내 곁에 머무를것 같다. 

널 위해, 심심해할 가을빛 위해, 정갈한 시집 한권 더 챙길게.

아참! 숲에서 놀기 편하게  청바지 한벌 새로 사려 했는데...

옷맵시 봐 줄 그사람께 된통 당하고 나서 이맘 저맘 다 달아 났었는데, 혼자서라도 한 벌 사야겠다

산과 들에서 뒹굴기는 청바지 만한게 없거든..

청바지가 없는건 아닌데 빛깔 고운걸로 새로 하나 사고싶어. 텅 빈 마음을 이런걸로라도 채우고자 함일까?

 

그나저나 갈대꽃이 절정을 이루면 나 또 어쩌냐?

세월 흘러도 변함없는  가슴앓이, 홀로의 몫일테지.

주말 어느즈음, 예고 없이 널 찾으러 갈지도 몰라~~

그래, 니 말대로 80, 90이 되어도 갈대꽃 피면 징징댈것 같아서 걱정이야~

청바지 때문에 묻어 생각난 갈대꽃이 홀로 즐기는 숲속 향연에 진수성찬으로 밑자리 깔아줄것 같네.

 

중국 황산에 호수물빛과 어우러진 갈대의 자태가 신선의 그것과 머금 간다는데, 갑자기 조급해 오는 마음자락이 꼭 어린애 같음을 인지 하지만 그 풍광에 목놓인 울음 놓고 오고 싶어짐은 갈대 핑계 삼아 혼돈속에 구겨진 육신을 말갛게 비워내고 올 자릴 찾음일테지.

 

물빛과 갈대와 낯설음과 울음을 그 자리 그대로 놓아 두고 오려한다.

어쩐지 이 가을엔 마음자리 써래질 하고 뭔지 모를 씨앗 두어개쯤 품어올것 같다.

니가 많은 변화속에서  청년이 되어 왔을때, 니 앞에 희망  품은 화분 하나쯤 수줍어하며 내밀고 싶다

남들은 나름대로 수확할 즈음, 나는 언제 피어날지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심으려한다

주위 여건이 그러하고 외면 할 수 없는 계절이 자꾸 내 엉덩이 자락  들쑤시며 부추켜댄다

 

그래. 많이 그립고 그립다.

가을빛에 묻어 나는 너의 잔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