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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소로우의(월든)을 읽으며...


BY 물뿌리개 2010-05-22

 

급하게 해야 할 숙제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늘상 전쟁을 치루 듯 아침을 맞는 내게 오늘 같은 날은 작은 여백을 만들어 주는 시간이 된다.

조급한 마음을 다스려야지 하는 생각으로 아직 어둠속에 침잠해 있는 마당으로 나와 세상의 번잡함이 아직 깨어나지 않은 고요 속에 가만히 앉아 새벽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았다. 소로우의 그 오두막에서처럼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고독과 정적이 펼쳐지며 월든 호숫가 그 곳으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영글어가는 매실열매 사이로 속살거리며 지나는 바람과 여명 속에서 모란이 피어나는 소리에 한없이 나를 던져 놓아본다.

 나의 정신적 지주이셨던 법정스님이 입적하시며 내게 던져 주고 가신 물음표..... 난 그분의 무엇을 좆아 그 동안 그분의 저서들을 읽어왔으며 다달이 그 분이 추천하는 도서들을 찾아 읽으려하고 소유하려 했었나? 그동안 허영에 빠져있었다는 자괴감에 한동안 책을 읽어볼 엄두를 낼 수 없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막연히 시민운동가로만 알고 있던 이름 이였다.   19세기에 살던 그가 20~21세기를 살다 가신 법정스님과 많은 부분이 오버랩 되어 다가왔다. 그가 화려한 생활을 뒤로하고 월든 호숫가의  오두막 생활을 경험으로 써 내린 <월든> 천천히 강물이 흐르듯 읽어 가야할 책을 단숨에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전부터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미루어 왔던 책이었기에 선뜻 받아 들었다.

150년의 시간을 건너와 소로우는 내게 불멸의 영혼을 지닌 가련한 사람이 등에 진 짐의 무게에 눌려 나 하나의 욕구를 채우고 가꾸는 데도 힘겨워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부질없는 근심과 노동에 몸과 마음을 빼앗겨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따보지도 못하고 있다고 측은한 맘을 전해오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잠 못 이루며 근심하고 휴식하지 못하며 갈구하는 것들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에 나만 뒤쳐진다는 생각에 무언가로 채우려 했고 힘들게 뛰었다.

하지만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 그것은 삶의 본질, 진리에 대한 목마름 그것임을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 깨우쳐 알기가 왜 그리 어려울까?

소로우의 간소한 삶은 사소한 욕심에 인생을 허비하는 내게 책을 읽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함께 동화되어 맑은 즐거움이 되어 주었다.

그는 삶의 본질을 마주하고 진정한 삶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아 숲으로 향했다.

그가 그토록 갈구하는 것은 얽매임 없는 자유.

인생을 깊게 살기를, 인생의 모든 골수를 빼먹기를,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때려 엎기를 이야기 한다.

왜 우리는 이렇게 쫒기 듯이 인생을 낭비해가면서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배가 고프기 전에 굶어죽을 각오를 하고 바쁘게 늘 일속에 파묻히지만 이렇다 할 중요한 일 하나 하고 있지 않다.

그랬다. 어느 한순간도 오롯이 나의 본질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고 내 영혼을 윤택하게 하는 일에 치열하지 못했다.

이렇게 미성숙한 채로 나는 내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 일 수 있는지 문득 겁이 나기도 한다.

‘갖고자 하는 주머니칼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책을 읽어가면서 자기 손으로 쇠붙이를 녹여서 칼을 만든 아이와 학교에서 야금학 강의를 들으면서 아버지에게서 고급 주머니칼을 선물 받은 학생이 있다면 어느 학생이 더 많은 지식을 얻게 될까?’ 물고기를 잡아 주지 말고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라는 탈무드의 교훈은 수없이 들어온 말들이지만 정작 난 내 아이들의 손에 쥐어주려고만 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진 않았는지 돌이켜 보게 된다.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알게 하고 소박하고 간소함을 즐거워 할 줄 아는 맑은 지혜를 쥐어주고 싶다.

 우리들이 지나온 어리석은 삶을 연속하지 않는 지혜를 알게 하고 싶다.

자연이 주는 이점 물이 주는 특별한 혜택을 받은 콩코드 마을 사람들은 맑은 샘물을 술을 희석하는 일에만 쓰고 그 곳에서 모두 종말을 맞지만 그 터전에 오래전 주인이 심어놓은 라일락 한그루는 그때처럼 봄이 오면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날리며 굳건히 그 곳을 지켜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도 나무와 바람처럼 꽃과 비처럼 그렇게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고마움이 된다면 그 향기 또한 깊을 텐데 사람들의 사교는 값이 너무 싸다. 너무 자주 만나기 때문에 각자 새로운 가치를 획득할 여유가 없다고 소로우는 말하고 있다.

때때로 군중 속에 있어도 외로울 때가 있지만 숲길을 혼자서 걸어도 가슴이 충만해 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의 말처럼 천지의 자연이 벗이 되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친절한 자연의 힘을 빌어 결실을 맺은 생산물로 광을 가득 채우지 말고 자연에게 제물로 바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얼마 전 <아마존의 눈물> 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만난 조에족을 보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우리의 곳간을 가득 채우려 욕심을 내는 것일까?

그들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만큼만을 자연에서 취한다. 그들에겐 넉넉하게 사냥하지 못해 불행해 하는 일 따윈 없었다.

필요 이상의 것을 소유하게 되면 그 소유물에 구속되고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소로우가 귀한 석회석의 먼지를 터는 대신 마음속 가구의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석회석을 내동댕이치듯이 넘치도록 소유하고자 하는 나의욕심 가득했던 맘을 접기로 해야겠다.

소로우에게 월든 호숫가는 바로 아르카디아 였을테고, 내겐 운곡의 작은하늘과 숲으로 난 좁은길가의 들꽃들이 나의 아르카디아 이다.

호숫가 정경들을 노래한 그의 시어들은 나를 엷은 안개로 잠긴 호수가로 데려다 주기에 충분하다.

며칠 전 까지도 숲길은 투명한 연두 빛 세상 이였는데 그사이 진초록 일색이다. 초록색은 마음을 치유하는 마력이 있다고 했던가? 인간은

자연 속에 스스로를 놓아 둘 때에야 진정한 자유와 평온함을 얻는가 보다.

그의 언어들이 내 안에 들어와 사어(死語)가 되어버리기 전에 오랜시간을 두고 곱씹으며 다시 읽어 나도 그의 이야기를 통째로 삼켜 내 안에서 서서히 녹여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