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일 전에
무릎 앞 뒤가 아프고 저리고 땡겨서 정형외과에 갔다.
그 동안은 집 근처 병원을 다녔는데, 잘 낫지가 않아서
집에서 먼거리에 있는 병원을 찾게 되었다.
무릎보다는 허리의 신경이 문제란다.
다음 날부터 물리치료를 해야하는데 집이 멀어서 할 수 있겠냐고 한다.
어쩌랴,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야겠지....
다음 날,
병원 가기싫은 마음을 안다는 듯이 비까지 내린다.
물리치료를 한다. 이쁜 아가씨가 조근조근 주의사항을 말한다.
그러고는,
허리를 기계로 땡기고, 무릎을 뜨거운 수건으로 지지고
초음파로 찌릿찌릿 전기고문(?)을 하고.... 숨차다.
약속이 있는데,
치료가 약속시간보다 일찍 끝났다.
버스를 타고 약속장소 가까이에 있는 어린이 대공원 후문으로 갔다.
시간을 메울겸, 공원 안을 조금 걷기로 했다.
비는 그쳤지만, 바람은 여전히 존재의미를 맹렬히 과시했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는 데, 입구부터 쿠리쿠리한 냄새가 진동한다.
무언가를 줍고 있는 사람들의 구부정한 등허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수선한 분주함으로 인해 생동감까지 느껴진다.
남녀노소(아이들을 뺀)가 한데 어울려 은행을 줍고 있었다.
관리인들은 장대 빗자루로 쓱쓱 쓸어담고,
운동하러 들어오던 아저씨들은 자기가 지금 무엇하러 온 지도 잊고
은행줍기에 열을 올리고,
유모차를 끌고 산책나온 젊은 엄마들은 은행을 주우면서
'제발 그만 떨어져라, 줍기도 힘들다' 고 하고
할머니들은 쓰레기통을 뒤져 비닐을 찾아서 주운 은행을 담고,
줍기가 바쁘게 후두둑 떨어지는 은행은 사람들을 넉넉하게 만들었다.
너무 풍성하게 떨어지니, 모르는 사람끼리도 어서어서 주우라고 덕담들을 한다.
소풍온 유치원생들은 참새처럼 시끌시끌 재잘거리고,
분수는 바람에 물줄기를 맡긴 채 맘대로 춤추고,
살림을 아는 어른들은 머리나 엉덩이들을 스치면서 먹을거리를 장만하고,
비 설거지를 끝낸 햇볕은 공원안의 물기를 말리고,
무릎때문에 우울했던 기분이
사람들의 움직임 속에서 사그러 들었다.
삶의 체험 현장속을 나도 함께 누볐다.
젖은 우산을 펼쳐들고 햇볕을 쪼이며 걸었다.
짧은 산책길이었지만, 산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맛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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