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이 잘린다. 짤깍거리는 소리에 윤영의 심장 한 귀퉁이도 뭉턱 잘려나간다. 그것은 추억이 잘리는 소리다.
사람의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에는 그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했던가. 어릴 적, 손발톱을 깎을라치면 꼭 하시던 할머니의 말씀이 윤영의 기억 저편에서 떠오른다.
‘손톱허고 발톱은 깎아서 아무데나 내삐리믄 안 되는기라. 쥐새끼가 와 서 줘 먹으믄 니맨치로 생긴 아가 되가꼬 나타난대이.’
저자가 누군지도 모를 전래동화를 빌미로 으름장을 놓는 할머니 때문에 윤영은 손톱, 발톱을 깎고 나면 꼭 휴지에 싸서 불타는 아궁이 속에 던져 넣었다. 그러고 나서 빨갛게 타오르는 불꽃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부디 못되먹은 쥐가 그녀의 손톱이나 발톱을 주워 먹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이었다. 혹여 손톱 발톱이 다 타기도 전에 너무너무 굶주린 쥐 한 마리가 미친 척 뛰어 들어 꺼내서 먹는 것은 아닌 가 던져 넣은 휴지 뭉치가 재가 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윤영은 안심하곤 했었다.
잘려지는 손톱이 자꾸 이쪽저쪽으로 튄다. 손톱 다듬기의 프로인 그녀인데 그 일도 예술이랍시고 마음이 번다하니 평소 하던 것처럼 잘 되지가 않는다.
‘아무데나 내삐리믄 안 되는기라.’
다시 한 번 기억의 장막을 뚫고 들려오는 과장되이 낮게 깔린 목소리에 이리저리 흩어진 손톱을 주워 모은다. 기다랗고 예쁘장한 열 개의 손톱들이 서로서로 부둥켜안듯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네 손톱은 꼭 작은 미술관 같아. 구경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단 말야. 이렇게 열 손가락 모두 다르게 그리 려면 어렵지 않아?’
세훈은 손을 잡을 때마다 윤영의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서 아름답게 물들여진 그녀의 손톱들을 한참동안 바라보곤 했다. 호기심 어린 그의 얼굴이 좋아서 윤영은 세훈을 만나러 가기 전이면 일부러 이미 그려진 손톱을 다 지우고 새로운 그림들을 정성스레 그려 넣곤 했다. 직업도 직업이었지만 세훈에게 보이기 위해서라도 윤영은 늘 새로운 그림들을 구상해야 했다. 그것은 꽤 행복한 일이었다. 윤영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는 그녀의 샾으로 많은 손님들이 몰려오도록 만들었다. 때로는 우아하게, 때로는 장난스럽고 귀엽게 그려지는 손톱 위의 그림들은 어쩌면 세훈 뿐만 아닌 다른 남자들의 눈길 또한 사로잡고 있을지도 몰랐다.
주워 모은 손톱을 윤영은 휴지에 꼭꼭 싼다. 어릴 때처럼 불을 피우는 아궁이가 없으니 손톱은 그냥 그렇게 휴지에 싸인 채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곤 한다. 발 디딤대를 밟으니 어서 손톱을 달라는 듯 쓰레기통의 뚜껑이 벌컥 열린다. 그 모습이 꼭 쥐새끼의 굶주린 모양 같아 윤영은 왠지 멈칫했다. 갑자기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것 같다. 휴지 뭉치를 버릴지 말지 아주 잠시간 고민하던 윤영은 피식 짧게 웃는다.
‘뭐야, 어린 애 같이.’
손톱을 깎아서 한두 번 쓰레기통에 버린 것도 아닌데 새삼스럽다고 윤영은 생각했다. 어이없는 자신의 모습에 황당하여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손톱을 버린 뒤, 윤영은 자신의 침대 위로 쓰러진다. 피곤함이 몰려와서 눈을 감았다가는 뒤척이다 다시 눈을 떴다. 아무래도 오늘은 저 쓰레기통 속에 들어있는 손톱이 신경이 쓰인다. 다시 몸을 일으킨 윤영은 쓰레기통을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마침 내일이 쓰레기를 수거하는 날이다. 윤영은 종량제 봉투에다 침실의 쓰레기통을 비우고 집 안에 있는 쓰레기통이란 쓰레기통은 죄다 베란다로 가져와 봉투 속에 꾹꾹 화풀이를 하듯 쑤셔 넣었다. 쓰레기로 꽉 찬 종량제 봉투의 손잡이 부분이 묶일 듯 말듯 힘겹게 매듭이 지어졌다.
시계를 보니 11시 반이 넘었다. 얼른 쓰레기를 아파트 정문에다 내다 놓은 윤영은 이제 정말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척이나 피곤한데 어째서 쉬이 잠이 들지 않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게 다 그 자식 때문이야. 생각 할 가치 따위라곤 조금도 없는 자식... ....’
격렬한 잠자리 후 매몰차게 헤어지자던 세훈의 얼굴이 떠오르자 윤영은 욕지거리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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