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암에 걸리셨다.
부잣집 맏며느리라 허울좋은 부잣집, 실속은 고생 덩어리...
변변한 옷한벌 없어 부부동반 외출때마다 옷장을 벌집 쑤셔놓듯 뒤져놓아도
마땅한 옷이 없어 늘 입던 빌로드 한복을 다시 들추어 꺼내입고
경북고, 고려대 화려한 학벌을 가지신 아버지 옆에서
반걸음 쯤 뒤에 따라가시던 엄마.
부부동반 모임에 나가면 엄마가 제일 초라하다며
걱정을 내내 하시고도 다음 모임엔 또 그 옷을 입고 나가시고...
그때마다 우리집 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거는 절대로 맏이로 시집가지마라.
말로만 부잣집 맏며느리지.
이쪽손에서 들어와 저쪽손으로 나가는게 맏이 살림이다.
지차들은 얼매나 편하노.
딱딱 저거살림 저거 끼리만 살면 되는게 지차 아이가.
누가 달라하나? 누가 보태라 하나?
제사가 있나? 대소가 큰일, 작은일 저거보고 챙기라 하기를 하나.
너거는 절대로 맏이한테로 시집가지 마라.
작은집 소고기는 사줘도 자기 옷 한벌 못사입는게
우리나라 맏이살림살이다."
그 엄마가 암에 걸리셨다.
간내 담관암
담석증이 10년도 넘으셨지.
내가 고3때일때 쓸개를 아예 절제하는 수술을 받으시고
담도에서 다시 돌이 생겼는데 무시하고 있던 터에 그 부위에 암이 생긴것이다.
크기는 작지만 혈관이 집중된 자리라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판결을 받았다.
참 희한하다.
시어머니께서 그리 되셨다면
결혼직후이든, 결혼전이든,
얼마나 물심양면으로 보살펴야 할것이며, 그리하지 않으면
온갖 친인척들게 욕을 먹을 일이 아닌가?
참 희한하다.
친정어머니께서 결혼하자마자 그리되시니
왜 그리 입이 안떨어지던지..
신세대라 자청하던 나조차도 입이 안떨어지던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돌아가신..... 엄마께....... 죄송....... 또....... 죄송하다......
남편 월급으로
그 당시 월급으로 아파트 중도금 붓던 중이라
일주일에 백만원이 넘던 엄마 병원비에 보태고 싶다고 입도 벙긋을 못했다.
"한달에 30만원이라도 돈 벌 수 있는 일 없을까?"
결혼하면서 그만둔 연구실이 왜 그리 그리웠을까?
남편이 내 말을 알아듣고 마이너스 통장 백만원을 내어 내게 갖다주었다.
장모님 드리라고..
백만원이 뭐 그리 대수냐 하겠으나
그 당시 우리 상황으론 매우 큰 돈일수 밖에 없었다.
그당시 1억 4천7백이나 하는 아파트가 당첨되어 기뻐할수도 슬퍼할수도 없는 상황에
그 중도금을 붓느라 있는돈 없는돈, 있는 빚 없는 빚 내고 있던 상황에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어 백만원을 만들어 주니
내겐 엄마 살아생전에 마지막 할 수 있는 효도처럼 생각되었다.
지금도 6대장손 내 남편이 밉다가도 그 생각만 하면
너무 고마워 미워하기만 할 수는 없다.
엄마는 돌아가셨다. 3년 6개월의 투병끝에 결국은 내 가슴에 한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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