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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완전범죄


BY 둘리나라 2007-09-16

 

                            제목: 완전 범죄


Ⅰ그. 아내와 남자를 말하다


금방 재떨이에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비벼 끈 그는 피웠다는 걸 잊은 듯 무의식적으로 담배에 손을 가져가 꺼내 입에 물고는 라이터를 켰다. ‘팍’하는 소리가 나며 불꽃이 크게 일었다. 놀라서 피했는데 머리가 약간 그을렸는지 타는 냄새가 코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왔다. 순간, 그는 인간의 영혼도 냄새가 날까? 라는 물음표를 머릿속에 펌프질해 올리며 얕은 한숨을 허공에 뱉어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특유의 향기가 있다.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풍기는 독특함이 다르다는 결론에 이르니 슬며시 웃음이 났다. 생선장사에게는 씻어도 비린내가 나고, 과일장사에게는 달콤한 과일의 육즙 향이 나고, 은행원에게는 돈 냄새가, 화장품 장사에게는 뽀얀 분 냄새가 난다. 그러나 생활의 향이 영혼의 향이 될 수 없다. 신에게 영혼을 측정할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나와 아내와 그 남자에게는 어떤 향이 날까? 그는 생각의 틀을 벗어나려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깊게 빨아들인 필터 앞에서 빨간 불꽃이 빠르게 타들어가며 재의 냄새를 쉼 없이 만들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회사의 흡연실은 그의 독차지가 되었고 습관적인 담배피우기는 생각의 양과 함께 횟수를 더해가며 지독한 골초의 별명을 붙여주었다.

흡연실을 가득 메운 연기는 금방이라도 질식을 시키려는지 매서움을 동반하고 목을 향해 린치를 가했다. 마른기침이 바닥에 떨어지며 가슴이 답답해 왔다.


몇 날 며칠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타당성을 찾아보려 애를 써도 도저히 아내의 행동과 말들을 이해 할 수도 납득하기도 어려웠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급기야는 커다란 의심의 보따리만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가게 하였다.


“여보. 인사해요. 먼 친척오빠예요. 당분간 사정이 생겨서 우리 집에 같이 지내야 할 것 같아요. 당신에게 먼저 상의를 해야 했는데 미안해요. 워낙 급하게 생긴 일이라 말을 못했어요. 좀 불편해도 당신이 이해하세요.”


아내는 친척오빠가 IMF로 직장을 잃고 갈 곳이 없어 그러니 당분간 함께 지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일방적인 통보.

아내는 언제나 그랬다. 무슨 일이건 먼저 저질러놓고 문제지의 답을 알려주듯이 입에 침을 발라가며 정답이다 믿으라고 세뇌를 시켰다.

바람 빠진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듯 무조건 탱탱해질 때까지 꾹꾹 눌렀다. 그리고는 만족한 미소로 무사통과를 시키곤 했다.

연애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몇 달 동안 연락 한번 없다가 불쑥 나타나 핼쑥한 얼굴로 남의 이야기처럼 한마디 툭 던졌다.


“나 임신했어요. 책임지세요!”


그게 다였다.

아내를 생각할 때마다 그의 머리는 딱따구리가 쪼아대듯 편두통이 일었다. 결혼생활 내내 독재적인 일방성에 숨이 막혀왔다.


어느 날부터 기가 막히게도 그의 성기는 아내 앞에만 서면 한여름 더위의 개 혓바닥처럼 축 쳐져서 힘을 잃었다. 왜 그런 현상이 생기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자율신경이 망가져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의사소통이 안 되는 건지, 아니면 혈액들이 응고되어 몸속을 흐르지 않는 건지, 불안과 두려움이 밤마다 발기의 신경세포들을 서서히 죽여 나가고 있었다. 촉촉이 젖은 눈으로 무언가를 갈망하는 아내를 볼 때마다 더 깊숙이 숨어버리는 두 다리 사이의 물건은 무용지물이 되어 간신히 오줌 누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젠장. 남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한다고 자랑을 해대는데 이건 도대체가 설 생각을 안 하니 쓰벌. 미치겠네 정말!’


욕구불만이 쌓여가는 아내의 목소리는 하루가 다르게 독을 품었고 귀찮은 듯 바라보는 눈빛에는 철저한 경멸이 서릿발처럼 흘렀다. 그런데 그 남자. 친척오빠가 온 뒤로는 집안에 침묵으로 고여 있던 어색함이 없어지고 활기가 생겼다. 웃음을 되찾은 아내는 나풀거리며 날아다닌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하늘하늘 나비처럼 방방마다 날개 짓을 하며 미소를 뿌려댔다.


처음 인사를 하던 날. 작은 키에 매서운 눈초리의 남자는 고개만 까딱하더니 자기 집에 온 듯 소파에 편하게 몸을 기대고 탐색하듯 뚫어지게 바라보았었다.

두서없는 말들을 횡설수설 해대는 아내 역시도 안절부절 했다는 기억이 나며 이상한 상상들이 자꾸만 머릿속을 지배해 회사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박 상구씨 뭐해? 퇴근시간 다 되었는데. 요즘 흡연실에서 아주 사네 살아. 안 좋은 일 있어? 쐬주나 한잔하자고.”

옆자리에 근무하는 김 일도였다. 항상 능청스런 웃음이 가득한 입사 동기 친구인 그는 직장생활은 타고난 사람이었다. 철저한 아부근성이 몸에 베인,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한 이 시대가 낳은 전형적인 산물이었다.


“여보세요?”

“어, 나 조금 늦어진 다구……포장마차에서 술 한잔하고 갈게.”

“알았어요.”


아내와의 대화는 언제나 단답식이었다. 말을 많이 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될 수 있는 한 말을 아꼈다. 수화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올 것 같은 불쾌감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가슴에 바람이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포장마차는 소주잔에 하루를 털어 넣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바쁜 일상을 마감하며 나누는 대화들이 통 오징어며 닭갈비 사이로 내려앉고 하루의 고단함이 어묵 국물에 양념처럼 뿌려졌다. 열심히 안주를 만드는 주인부부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기분 좋게 맺히고 있었다. 소주의 뜨거움이 목을 타고 흐르는데 김 일도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젠장 누구는 초고속 승진에 예쁜 마누라에 탄탄한 처가까지 복도 많은데 니미럴. 나는 복도 지지리도 없지. 김 과장 말이야 나랑 동갑인데 벌써 과장이라니. 누구는 태어날 때 거시기 두 개 달고 나왔나? 다 똑같은데 정말 불공평해. 허허.”


연거푸 석 잔을 들이키며 불공평하다 짜증을 내는 김 일도를 뚫어져라 바라보다 얼굴 위에 손바닥을 활짝 펴 보여줬더니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반문을 했다.

사람의 삶이란 누구나 손바닥 끝에서 시작을 해서 손가락 끝에서 마감을 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굵은 손금대로 큼직하고 뚜렷하게 인생의 자취를 남기고, 어떤 이는 굵고 가는 손금 속을 미로처럼 헤매며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하루하루 살기도 한다. 운 좋은 이는 손금을 건너뛰어 손가락 끝에 도착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은 죽음이라는 도착점에서 재회를 하게 되고 주머니 없는 옷 한 벌 입고 영혼은 육신의 집을 떠나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손바닥 같은 삶. 그게 인생의 전부이며 어떻게 사느냐는 본인의 몫으로 신이 남겨준 마지막 숙제이다.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말. 자신의 손금을 잘 들여다보라는 성인의 깊은 뜻인지도 모를 일이다.


약간의 취기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에 들어서니 콧노래도 흥얼거려졌다.

오랜만에 아내를 위해 과일도 몇 개사서 현관문을 열었다.


“여보 나왔…….”


방안에서 아내의 간드러진 교성이 과일 차에 달려있는 확성기처럼 집안을 울려댔다. 남자의 헉헉대는 숨소리는 이미 사람의 소리가 아닌 짐승의 울부짖음이었다. 술이 확 깨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처음부터 예감으로 느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나니 오히려 머리가 비워지며 가슴이 편안해져왔다.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의 원초적 본능은 절정을 향해 뜨거운 숨을 토해내고 흥분으로 젖어있었다. 순간, 그의 두 다리 사이에 형체만 남은 채 붙어있던 쓸모없던 물건에 서서히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불끈 불끈 피가 모이며 신기하게도 하늘을 향해 늠름함을 과시하며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듯 뜨거운 열이 온몸으로 퍼졌다.


그는 너무나 놀라서 손으로 잡고는 몇 번이나 확인을 해보았다. 진정을 못하고 허둥지둥하다 급기야는 밖으로 달려 나가 잠들었던 밤의 어둠이 놀라서 깨도록 ‘야호’ 하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아도 제대로 된 반응 한번 안보이던 고민 덩어리 그놈이 성난 황소 마냥 무섭게 솟아오르니 감당이 되지를 않아 미칠 것만 같았다. 아! 이것이 남자구나. 정말 살아있는 남자구나.

입가에 달린 웃음이 떨어질까 과일이든 비닐봉지로 입을 틀어막으며 그는 가로등이 켜진 공원으로 발이 안보이게 뛰어갔다. 귓가에 아내의 오르가슴이 헐떡이며 따라오고 있었다.



Ⅱ그녀. 남편과 그 남자를 말하다


그 남자의 몸에서 흐르는 땀이 그녀의 눈에 떨어져 아까부터 눈이 따가웠다. 침대위에 대자로 드러누운 남자는 숨을 고르며 담배를 꺼내 피웠다. 곁에 놓인 까만색 재떨이는 앙증맞은 까만색 발모양이었다.

재떨이! 언젠가 술자리에서 친구가 흘린 농담이 생각났다.


“야, 성철 스님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 캤는데 그기 뭔 뜻인지 아나?”


친구는 재떨이를 손에 들고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었다.


“재떨이는 재떨이 구실만 하믄 된다카는 말이다. 재떨이가 밥그릇 구실을 할라꼬 하믄 안된다 아이가. 인간이나 자연이나 다 생긴 그대로 자기의 구실만 하믄 된다카는 뜻인 기라.”


그녀는 물끄러미 재떨이를 바라보다 담배를 비벼 끄며 탄식처럼 숨을 크게 내쉬는 남자의 어깨로 시선을 옮겼다.


‘이 남자의 구실은 과연 무얼까?’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가장 필요한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204호. 언제나 약속장소는 ‘에메랄드 장 204호’였다. 보석이름처럼 아름답지도 고운 빛깔도 없는 인간 육체 본능의 살풀이 장소였다.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만나야 하는 거야? 나 자기랑 떨어져 있기 싫어 정말.”

“나도 마찬가지야. 근데 방법이 없잖아.”


그녀는 수건으로 눈을 닦으며 남자의 품에 안겨들었다. 행복한 만족감이 스며든 얼굴에는 땀이 촉촉이 베여있었다.

1층으로 내려와 주위를 둘러본 그녀는 재빨리 모텔을 빠져나가 차에 올랐다. 여유 있게 걸어 나온 남자는 운전석에서 시동을 걸며 뺨을 살짝 꼬집었다. 헤어짐이 아쉽다는 표현이었다.

3개월이 넘게 지속하고 있는 부적절한 관계.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남자의 이름은 윤 충호였다. 처음에는 그저 무료하고 지루한 시간을 달래려 배운 컴퓨터였는데 채팅을 배우고 난후 사람들과 얘기한다는 게 너무 좋았다. 얼굴을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방과 모든 것을 숨김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매력에 빠져 점점 중독이 되어 갔다. 하루라도 컴퓨터를 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삶은 계란을 물 없이 먹는 것처럼 목이 말랐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을 털어놓아도 부담이 안 되니 자연스럽게 그녀는 마음이 맞는 그 남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갈증에 타는 육체는 사막 가운데서 힘들어하고 있다고 …….그랬다. 그녀에게는 물이 필요했다. 자신의 갈증을 채워줄 가뭄의 단비 같은 물이 절실히 필요했다. 언제나 메말라 있는 입술로 농부가 비를 기다리듯 남편의 사랑을 기다렸지만,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고개 숙인 시간만 째깍거리며 밤의 고개를 넘을 뿐이었다.

이제 그녀의 나이 서른둘, 남편의 나이 서른다섯. 한창 싱그러워야 할 집안은 을씨년스러운 겨울바람만이 불었고 어둡고 침울한 기운만이 가득했다. 거울을 볼 때마다 가슴이 시려 왔다. 제법 통통하게 살이 오른 뽀얀 얼굴을 한, 귀엽게 생긴 여자가 슬픈 눈으로 서 있는걸 보는 게 두렵기까지 했다.


남편은 조금은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연애시절에도 자기의 주장보다는 그녀의 의견을 많이 들어주는 편이었고 언제나 흐릿한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사랑하느냐고 물어보면 얼굴까지 붉어지며 고개만 간신히 끄떡였다. 흔히 말하는 신혼시절의 기선제압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은 그녀에게는 필요가 없었다. 하자는 대로 다 따라주고 별다른 의견도 제시하지 않았기에 나름대로는 평탄한 결혼생활을 해왔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러나 기운을 잃어버린 남편의 중간 지지대는 자기가 설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설 생각이 없었는지 도통 반응이 없었다. 당황해 하는 남편 앞에서 짐짓 태연한 척 했지만 더 놀란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허허 별 이상은 없는데 아마도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요인이 작용을 하는 가 봅니다.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함께 해보도록 하지요.”


의자가 좁아 보이도록 배가 나온 의사는 대수롭지 않은 병이라 말했지만 사실은 심각했다. 한창 젊은 나이의 부부가 성생활을 할 수 없다는 건 엄청난 일 아닌가. 밤이 오면 남편의 눈은 언제나 불안하고 초조하고 불쌍할 정도로 초점이 흐려져 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둠이 장악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허공에 보내는 날이 많아져 가고 둘 사이의 대화는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가 전부였다.


사는 게 짜증나고 혼란스러웠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바람이 강렬하게 찾아 왔을 때 배운 게 컴퓨터였다. 그리고 사이버 안에서 새로운 남자를 만난 것이다.


“안녕하세요. 얘기는 많이 나누었는데 처음 뵙네요.”

“네, 저도요. 반가워요 ”


토요일 오후의 커피숍은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약속이란 무얼까. 살아가는 일 중에서 인간이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사회적 행동중 하나란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연인과 부모와 자식과 스스로와 세상과 우리는 약속을 하고 있다. 우정은 변치 말자, 사랑은 영원하자, 부모님께 효도 할게요, 아들딸아 행복한 가족이 되자, 너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야, 세상아 난 너를 이겨낼 수 있어 약속해! 어쩌면 세상을 만들면서 신이 인간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이 약속인지도 모른다. 신과 인간과의 손가락 걸기는 아마도 절대 신의 영역에 침범하지 말라는 약속이 아니었을까?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먼지 알갱이들이 몸을 피하느라 분주하게 날아다녔다. 숨을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멍하니 먼지 알갱이들을 부러워하다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편과는 너무 대조적인 사람이었다. 자신의 살아온 얘기들을 솔직하게 꺼내놓으며 시원스럽게 웃고 있었다. 먼지알갱이와 미소알갱이가 섞이며 오후의 햇살에 부서져 내렸다.


“얼굴만 안 봤다 뿐이지 몇 달 동안 대화를 해서 그런지 전혀 낯설지가 않네요.”

“네에, 저도요.”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간단하게 술을 마셨다. 남편에게는 동창회가 있다고 연락을 한 터라 시간에 구애 없이 술잔을 받았다. 아니 취하고 싶었다. 집에 가봐야 빈 가슴을 끌어안고 캄캄한 방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오지 않는 잠을 청하는 게 전부인데 오늘만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여자로 오직 여자로 한 남자의 눈에 비치길 원했다. 그게 다였다. 머리 굴려 생각하고 변명거리를 찾고 싶지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정해진 순서처럼 모텔 방에 들어온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심장박동이 횟수를 망각하고 제멋대로 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한 육체의 유혹을 뿌리치기에는 그녀는 너무나 외롭고 지쳐있었다. 서있기도 힘들 만큼 육체는 아파서 치료해줄 따스한 손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 남자. 지칠 줄 모르는 힘으로 무장한 사람이었다. 머릿속에서 불꽃이 터지고 눈앞이 아찔해져 오고 온몸은 활화산으로 터져 버렸다.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아득함과,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짜릿한 쾌감과, 약간의 소름이 끼치는 공포가 그녀를 감싸 안으며,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절정의 환희에서 신음이 막혔던 혈을 뚫고 일순간에 세포들을 긴장시키며 방안가득 터져 나왔다.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아니 더 깊은 황홀의 늪 속으로 자신을 던져 깊숙이 가라앉고만 싶었다. 남들이 보면 손가락질을 하고 침을 뱉을지 몰라도 그녀는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이해받기를 원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착각하지 말라고.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너희가 잘못된 거라고 …….

100명의 사람이 있는데 99명이 틀리고 1명이 바르면 그 한 명은 이상한 사람이 된다. 실제로는 한 사람이 바른 사람인데도 집단이기주의의 체면에 걸린 99명을 이겨낼 수가 없다. 그녀는 자신을 나쁘다고 말하는 세상 사람들이 99명이고 자기는 올바른 1명이라고 자꾸만 자꾸만 마약처럼 강도를 높여가는 의식의 주사를 놓으며 착각의 기준을 세워나갔다. 그렇게라도 해서 자위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자신조차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리라는 강한 느낌을 온몸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자기랑 못 헤어지니 어떻게 좀 해봐. 좋은 수 없을까?”


그 남자는 거의 매달리다시피 사랑을 애원했고 두 사람의 머리에서는 결국 같이 살고 싶다는 웃기지도 않는 결론을 만들어냈다.


“남편이 내 말은 그대로 믿으니 친척오빠라고 하면 될 거야. 어때? 잘 할 수 있지? 태연하게 해야 우리 의심 안 받고 같이 살 수 있어.”

“그래, 그래.”


인간이란 존재는 너무나 단순해서 무언가에 미치면 물불을 가리지 못하고, 형광등을 향해 뛰어드는 모기처럼 금방 죽는 것도 모르고 무작정 일을 저지른다.

그녀에게는 돈과 명예와 권력 따위는 필요가 없었다. 자신을 여자로 살아서 꿈틀대는 싱그러운 육체로 여기며 안아줄 남자만 있으면 됐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양심의 끝이 칼에 베인 듯 쓰리고 따갑고 아파서 남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할 때가 있었다. 완전히 믿고 바보같이 속아 넘어가는 남편에게 죄책감이 들어 견디기 힘들었지만 본능의 유혹을 넘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남편이 회사에 가고 나면 집안은 두 사람의 에덴동산이었다. 태초의 아담과 이브처럼 알몸으로 웃고 먹고 얘기하고 사랑했다.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면 남자에게는 갈비뼈가 한 개 모자라야하는데 왜 숫자가 똑 같으냐며 신기하다 만져 보기도 했고, 장난치다 눈이 마주치면 입술이 부어오르도록 입맞춤을 하기도 했다. 어떤 날은 오후 내내 침대에서 나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토요일 오후. 남편에게서 늦어진다는 전화가 왔다. 그녀는 침대 위에서 가쁜 소리를 내지르다 겨우 진정을 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흥분한 숨소리와 심장의 떨림이 금방이라도 선을 타고 들릴까 봐 애써 잔기침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오늘 좀 늦는다고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