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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장군의 하루


BY 둘리나라 2007-09-15

 

이 순신(1545-1598) :조선시대의 명장

본관-덕수  별칭-자여해  시호- 충무

활동분야-군사   출생지-서울


 얼마 전 4월 28일 이 충무공의 탄신일이 지나갔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이루어 낸 그의 업적은 알아주는 이 없이 쓸쓸하게 달력 속에서 생일을 맞았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그 위에 존재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기억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안에서 잊혀짐이라는 근사한 변명으로 이 순신을 지우고, 오로지 학교 공부시간에 외우는 역사로만 알고 있지는 않는지. 그리고 그의 어깨에 놓인 애국심을 짐스러워하지는 않는지. 이제는 나서서 나라의 자랑인 그를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하기에 이렇게 글을 써본다. 누군가는 해야 하고, 반드시 바뀌어야 하기에.




                    제목: 장군의 하루


 새벽.


 푸르스름한 새벽 공기가 아스팔트에 내려앉으며 차가운 이슬 알갱이들을 도시 속에 분무기처럼 뿌려대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딧불처럼 밤을 깜박거리던 가로등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하나씩 빛을 죽여 나갔다. 어둠과 밝음이 적당한 명암 조절로 최상의 빛깔을 만들어내는 여명의 시간. 푸른 물이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져 내릴 것처럼 가슴 저리게 시렸다.

 세상이라는 공간 속에서 생활이라는 하루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숨소리가 거리마다 활기로 출렁거리고, 차도 위에는 시간이 갈수록 숫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가는 자동차들이 빨간, 파란 눈의 신호에 따라 저마다의 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수도라고 불리는 이곳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들과 자동차들, 자고 일어나면 생겨나는 크고 작은 빌딩들로 언제나 약간의 몸살기를 지닌 채 활동 중이었다.   멀리서 1톤 트럭 한 대가 매연을 꽁지에 달고 부리나케 달려왔다. 속력을 낼 때마다 시커먼 덩어리가 기침과 함께 바닥에 떨어져 볼썽사나웠다. 고개를 쑥 내밀어 맞은편 건물에 걸린 시계를 보았더니 5시를 넘어가느라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시간에 앞을 지나가는 생선장수 김씨였다.

 “쯧쯧. 얼굴이 퉁퉁 부은 걸보니 어제도 한잔했구먼. 그래도 일하러 나오는걸 보니 정말 철인이야, 철인.”

 장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어깨에 사뿐히 내려앉은 참새에게 말을 건넸다. 새벽 시간에 말동무가 되어 준 날개 달린 친구는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짹짹’ 소리만을 연거푸 뱉어 내다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조금 있으면 꽃가게 미스 리도, 인쇄소 박 사장도 지나가리라. 장군이 살고 있는 동네의 가게들이 문을 열고 삶의 뜨거운 숨을 토해내면 하루가 태엽소리와 함께 시작될 터였다. 되풀이되는 똑같은 시간 속에서

저마다의 생각들로 개인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을 하며 참새가 사라진 하늘을 보았다.

 ‘아! 내게도 날개가 있다면 답답하고 숨 막히는 여기를 잠시라도 벗어나 내 영혼이 잠자고 있는 심장의 바다에 가볼 텐데.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으며 지친 몸을 쉬어 봤으면 …….’

 눈을 감으니 귀에서 갈매기의 소리가 메아리로 울리고,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의 함성이 금방이라도 온몸을 감싸 안을 듯했다. 철갑선을 타고 끝없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가슴에 품었던 뜨거운 애국심이 시간을 뛰어넘어 혈관 곳곳에 펄떡이며 살아 움직였다. 맥박이 요동을 쳤다.

 ‘정말 돌아가고 싶다. 내 그리움의 바다로.’

 가벼운 한숨이 목을 차고 오르며 명치끝이 칼에 벤 듯 아팠다.

 눈을 떴더니 새벽이 아침의 기세에 눌려 뒷걸음을 치는 게 보이고, 빌딩 사이로 붉은 덩어리가 햇살을 쥐어짜고 있었다. 환하게 밝아 오는 빛이 의식의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틈. 공간은 언제나 상상력을 간직한 채 수백, 수천 가지의 가능성을 계산하며 이해의 잣대를 잰다. 실패했을 경우와 성공했을 경우를 적절히 타진해 보며 무의식이라는 포장을 씌워 머릿속 중요한 곳에 보관시킨다. 가끔은 잠재의식이라는 듣기 좋은 리본으로 묶기도 하는데, 결국은 이미 다 짜인 틀 속에서 정답을 내려놓고는 아닌 척 연극을 한다.

 ‘내 의식의 틈 속에는 실패라는 포장은 없었지. 하지만 누구보다도 실패가 무섭고 두려웠어. 강한 척할 때마다 작아지는 자신에게 이긴다, 이길 수 있다고 강력한 주문을 걸었어. 무의식과 잠재의식이 믿도록 말이야. 상상력은 무한한 힘을 발휘한다는 걸 그때 알았어. 전쟁의 승리는 내가 내 자신을 믿는 것. 그것이 유일한 정답 이였어.’



 아침.


 사람들은 나를 이순신 동상이라고 불렀다. 세종로에서 잔뜩 폼을 잡고 있으면 서울의 자랑거리 중 하나라고 칭찬을 하고, 멋있다며 좋아했다. 한때는 괜히 어깨에 힘도 줘 보고 위엄을 부린다고 눈에 힘도 넣었지만, 외로움에 당해 낼 장사가 없다는 걸 알고 난 후부터는 모든 것이 시들해졌다. 세상은 겉모습에만 열광하고 바라보며 정말 중요한 인간의 본모습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껍데기 세상.

 나라를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현세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었다. 그저 시험문제에나 위인전에 나오는 장군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의 전부였다.

 영웅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그 영웅과 함께 생과 사를 같이할 수많은 병사들도 이미 정해져 태어난다고 했다. 생사고락을 나누며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쳤던 나의 분신과도 같았던 그들의 이름은 시간의 저편, 역사의 한 페이지 속에 묻혀 버렸다. 혼자 남은 내게 인조는 충무공이라는 시호를 내려 주었지만, 그들이 없는 내게는 칼 없는 칼집과도 같았다. 지금은 동상이 되어 바다도 볼 수 없는 꽉 막힌 곳에서 아침 햇살을 보며 매연의 공기를 마시고 있다.

 ‘너무 외롭고 허전하구나. 진심으로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는 지금, 홀로 서 있는 이 자리가 추수를 마친 가을 들판 같구나. 서울을 지키라고 세워 놓은 경비처럼 우습구나. 허허.’

 해가 바뀔 때마다 보신각에서는 서른세 번의 종이 울렸다. 삼십삼천 대천세계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더 짙은 공허와 무력감을 가져다주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세월의 흐름 앞에서도 늙지 않는 청동색 얼굴과 몸이 초라하게만 느껴져 동상 안에서 가슴은 점점 굳어져 갔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는 게 두렵기도 했다.

 “장군 아저씨. 아저씨는 종은 보지 않고 종소리만 보시네요. 소리는 이 삼라만상에 퍼져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걸요. 본질을 보세요. 기억 속에서 사람들이 장군 아저씨를 잊어간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루어 놓으신 많은 훌륭한 업적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역사라는 거대한 테두리 안에서 언제나 숨 쉬고 있고, 자랑스럽게 존재하고 있을 거예요. 맞죠?”

 겨울바람이 살며시 다가와 전해준 말이었다. 이 간단한 삶의 진리도 모른 채 서울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는 게 부끄럽고 창피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조국의 바다를 수호하며 목숨을 바쳐 싸웠을 때 맡은 직분에 최선을 다해 임했지 누가 알아주기를 원해 칼을 든 것은 아니었다. 나라가 있어야 나도 존재하니 당연히 싸워야했고, 어떤 이유도 필요 없었다. 그러나 가끔씩 밀려오는 외로움과 그리움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장군도 붉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니까.



 점심.


 오후가 되자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무슨 환경단체인가에서 시위를 한다며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끼고, 목에는 팻말을 걸고, 내 발밑에 모여들었다. 마스크에는 검은색 테이프로 ‘X' 자가 되어 있었고, 머리를 빡빡 깍은 사람도 보였다. 머리를 고무줄로 질끈 동여맨 여자가 ‘환경이 죽으면 사람도 죽는다. 우리는 환경을 뺏길 수 없다. 00강을 살려내라’ 라는 글씨가 적힌 팻말을 들고 동상 위로 올라왔다.

 나와 눈이 잠깐 마주쳤는데 결의에 찬 눈에는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의지가 타오르고 있었다. 순간, 이들의 행동이 얼마나 어이가 없고 바보 같은지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승리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내 동상을 찾아와서 시위를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지 묻고 싶었다. 뭘 알고나 여기에 장소를 정한건지.

 통영 남망산 공원에 있는 나는 1953년에 시민들의 성금으로 세워졌고, 부산 용두산 공원과 진해 등 전국 곳곳에 제2, 제3의 내가 있다. 그런데 그들과 나를 자세히 비교해 보면 다른 점이 보인다. 그들은 전부 왼손에 칼집을 들고 그 안에 칼이 꽂혀 있는데, 유독 나만 오른손에 칼집을 들고 있고 칼이 꽂혀있다. 칼집이 왼쪽에 있어야 오른손으로 칼을 뽑아 전장에서 싸울 수가 있는데 …….

 적장에게 패한 장수는 오른쪽에 칼을 들고 자신의 졌음을 시인한다. 장수에게는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가. 결국 나는 패장의 모습으로 서 있는데 그 밑에서 이긴다, 승리한다 하고 시위를 해 대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처음부터 지고 들어가겠다는 말이 아닌가.

 패장을 만들어 놓고도 외국 관광객에게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위대한 장군이라고 소개를 하는지 의심이 갔다. 지방에 있는 다른 여러 내가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는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데, 이번기회에 말 좀 물어보고 싶다.

 ‘서울 시민여러분, 나를 패전 장군으로 만든 이유가 도대체 뭐요? 나도 좀 압시다. 정말 궁금하네요.’

 얼마 전 텔레비전에 매가패스 장군인가가 나오는 걸 보니 그 장군도 오른손에 칼은 들고 있던데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인기는 있는지 남녀노소가 나는 몰라도 그 장군은 다 알던데 어쩌다가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난 무릎 꿇은 장군이 아니라고!’

 시위 모습을 찍겠다고 신문사와 방송국에서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며 눈이 아파 왔다. 내일 신문에 뭐라고 실릴지 궁금했다. 승리란 말은 빼고 나와야 할 텐데.



 저녁 그리고 밤.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는 언제나 아름답다. 불빛들이 부리는 마술 같은 솜씨에 매번 탄복을 하며 하루의 절정을 맞았다. 원균의 모함으로  쉰세 살에 권율 장군 밑에서 백의종군하던 생각이 났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에서 수없이 갈등했던 인간적인 고뇌의 시간. 바다에 비친 별들이 지금 도시의 불빛보다 더 아름답게 물에 반사되어 가슴에 깊은 결의를 다지게 해 주었는데, 지금 세상은 겉만 화려한 물질에 싸여 참자아를 잃어 가고 있다. 슬픈 현실이다.

 6년 9개월에 걸쳐 ‘난중일기’를 쓰며 삼면이 바다인 조국을 걱정했고,

지금까지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어 보아도 역사적으로 해군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을 때는 국가안정을 유지했으나 해군력이 약했을 때는 외세의 침략을 받아 전국토가 황폐화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해군이 창설된 것은 1945년 11월 11일, 해방병단이 그 모체인데, 1948년에 정식으로 발족되었다. 최초의 제독은 손원일이었는데, 어쨌거나 해군에서는 나를 빼고는 이야기가 안 되는 것 아닌가! 해군 제독은 고사하고 말단 수병까지도 내 생일이나 창설일에 인사 한번 드리러 오는 놈 못 봤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는 놈 없었다. 지금 이 시대의 해군들은 자기의 존재를 알고는 있기나 한가. 수십 차례의 해전을 치르며 나라가 없으면 나는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싸웠다. 애국심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참, 얼마 전에 월드컵인가 하는 축구경기를 할 때 붉은 물결이 내 앞을 구름처럼 무리지어 지나갔다. 하루 일당을 주고 모이라고 해도 그렇게 모일 수는 없었다. 나 역시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면서 ‘아직까지는 대한민국의 중심이 흔들리지는 않는구나’ 혼자 흐뭇하기도 했었다. 미래가 밝으면 희망의 새날은 오게 되어있으니 말이다.

 사람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가 버린 도시 위에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거리를 쓸며 지나갔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깊게 새겨진 삶의 나이테들을 빗자루에 의지한 채 힘겨운 하루의 문턱을 넘고 있었다. 중심이 기울어 버린 어깨에 인생의 무게들이 짐으로 내려 앉고 있었다. 한숨처럼 바람이 스쳐갔다. 쉰네 살에 노량해전에서 유탄을 맞고 쓰러졌을 때 마지막으로 본 바다의 쓸쓸함이 아마도 저랬을 것이다. 밤은 새벽을 준비하는 전초전이다. 또 다른 내일이 시간과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오늘보다는 나은 기분 좋은 날이 되기를 상상하며 선채로 잠을 청했다.

어디선가 파도의 울림처럼 귓가에 시한수가 날아들었다


 한산 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앉아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둘러보니 새벽에 보았던 참새가 별 하나를 물고 어깨에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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