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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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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나라 물려주기


BY 둘리나라 2007-09-15

 

                             제목: 흐린 나라 물려주기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자르려 미장원에 갔다. 빨강, 노랑머리의 아가씨들이 인사를 하며 의자에 나를 앉힌다. 뚱뚱한 몸을 의자에 맡긴 채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았다.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거울 속에 어색한 모습의 아줌마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어떻게 해 드릴까요?”

 “짧은 단발로…….”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분무기에서 물이 머리로 쏟아지더니 환하던 주위가 갑자기 흐려진다. 안경은 아가씨의 손에서 탁자로 내려지고 있었다. 거울 속의 나는 형체만 보인 채 답답해하고 있다. 아! 정말 불편하다. 작은 계집아이였던 그 때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님, 6남매가 함께 살았던 시골집의 나른한 오후가 기억 속에서 걸어 나와 인사를 한다. 유난히 책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노란 금테의 알이 두꺼운 안경을 끼셨다. 엄마는 눈이 많이 나빴는데 옛날 분들이 여자가 안경 끼는 걸 반가워할 리 없어 속이고 시집을 오셨다 했다. 흐릿한 눈으로 살림을 하다 보니 실수 연발이었단다.

 찐 감자를 쥐로 알고 소리를 지르고, 밥 지으러 새벽에 일어나서 부엌으로 나오다 넘어져 다치는 건 다반사였다 하신다. 몇 달 만에 안경을 낀다는 사실을 털어놓았고, 그때야 밝은 세상을 볼 수 있었다며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자고로 여자는 안경을 끼면 영 파인기라.”

 시집가기 힘들다고 고개를 흔드셨다. 그러나 간절한 바람과는 반대로 큰언니, 작은언니는 약속이나 한 듯 눈이 나빠져 안경을 낄 수밖에 없었고, 마지막 남은 딸인 나만 그때까지 밝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안경은 사치품에 속하는 물건이었다. 어린 마음에 한 번 껴 보고 싶었지만 엄마의 야단과 성화로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나른했던 오후에 난 아무도 몰래 아버지의 안경을 쓰는데 성공하고야 말았다. 처음 써 본 안경 너머의 세상은 정말 신기했다. 뱅뱅 돌아가는 책상이며 의자, 벽에 걸린 괘종시계는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흐느적거렸다.

 ‘우와! 이렇게 재미있는 걸 엄마는 왜 못하게 한 걸까. 어른들만 재미있으려고 흥! 밉다, 미워.’

 그 날부터 몰래 안경 너머 세상 보기를 시작했고, 나만의 비밀이 생겼다. 어른들이 안 계시면 살짝 들어가 안경을 쓰고 좋아하기를 몇 달쯤 했을 때 갑자기 모든 게 흐려 보이기 시작했다. 안경을 쓰지 않아도 흐려 보이는 세상. 집 앞의 바다도, 우리 집 멍멍이도 눈을 찡그려야만 보이고, 눈앞에 하얀 천이 가려진 것처럼 답답했다.

 “니, 왜 눈을 찡그리고 있노?”

 “엄마, 눈이 아프다. 왜 이렇노?”

 놀란 엄마는 병원을 데리고 가셨고, 돌아오는 길은 한숨과 안경이 친구가 되어 주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이제 언니들처럼 똑똑하고 예쁘게 보이겠지. 바라던 대로 된 기라. 만세다. 만세!’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어린 나에게 안경은 정말 신경 쓰이고 짜증나는 물건이었다. 신나게 뛰어놀고 싶어도 혹시나 깨질까 봐 얌전히 놀아야 했고, 겨울에는 하얗게 앞을 가로막아 불편을 주었으며, 여름에는 땀 때문에 귀 뒤에 진물이 나기도 했다. 온 세상 뛰어다녀도 성이 안 차는데 안경에 갇혀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고……. 그제야 엄마의 말씀을 듣지 않은 걸 후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떠나 버린 버스였다.

 안경과 더불어 불편한 생활을 했고,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딸아이가 학교에 갔다 오더니 칠판의 글씨가 잘 안 보인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싶어 안과를 찾았더니 의사 선생님이 왜 이제 데리고 왔느냐며 눈이 많이 나쁘다고 했다. 아이와 안경점에 가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속이 상해 아이를 보니 입가에 미소가 가득 했다.

 ‘어이구, 어쩜 나랑 그렇게 똑같은지…….’ 처음엔 좋을 테지만 며칠 못 갈 거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하루도 가기 전에 안 쓰면 안 되냐고 따라다니며 조른다. 하지만 어쩌랴. 안경을 쓰지 않으면 더 나빠지는 것이 눈이니 말이다.

 그날 밤, 꿈에 아버지를 보았다. 눈이 나빠진 딸을 위해 겨울 산 속을 헤매고 계셨다. 앞을 볼 수 없는 눈보라를 헤치며 이곳저곳을 얼어 버린 손으로 뒤지는 뒷모습에 고드름이 달리고 있었다. 하얗게 성에가 낀 안경이 너무나 안쓰럽게 주인의 앞을 열어 주고 있었다. 아무리 부르려고 해도 목소리가 입에서 나오지를 않아 발만 동동 구르는데, 무언가를 발견하신 아버지가 환한 웃음을 보이며 내게 뛰어오셨다. 두 손 가득 담은 그것을 내 손에 올려 주시고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방에 눈만 보이고, 손에는 동글동글한 토끼 똥만이 가득 들어 있었다.

 어릴 때 눈에 눈곱이 끼고 빨간 핏발이 서면 아버지가 산에서 구해 오신 토끼 똥을 끓여 눈을 씻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언제 아팠냐는 듯 나아 버렸는데, 머리가 커서 생각해보니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부 녹아 있었기에 어떤 약보다 효과가 빨랐다는 사실을 고개를 끄덕이며 깨달았다.

 꿈에서 깨어나니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 마당으로 달려 나와 하늘을 보았다. 당신이 사랑해 주신 반만이라도 내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안경을 끼고 두꺼운 책을 읽으시던 아버지에게 “아부지, 안경을 안 끼면 책을 못 읽습니꺼?”하고 물었더니, “읽을 수야 있지, 글자들이 지 멋대로 춤을 추니까 쪼매 힘은 든다. 그래도 가끔씩은 안경을 벗고 세상을 보면 흐린 속에서도 제대로 볼 수 있는 게 있는 기라.”하셨다. 그래서 일까? 아주 가끔씩은 안경을 벗고 세상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너무나 분명하고 밝은 세상에서 수백 수천의 비자금이 터질 때, 실업자가 백만을 넘어 살기 힘들다 할 때, 가정이 붕괴되어 가족들이 흩어진다 할 때 정말 안경을 벗고 싶다. 밝고 또렷한 세상에서 생기는 가슴 아픈 일들이 흐린 세상에서는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형체만 보이는 모든 것들에 기원을 해본다. 선명하지 않은 세상에는 확실한 건 없지만 그래도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 조금 안 보이기에 조심해서 걸을 수 있고, 한 번 더 쳐다보고 확인해야 하기에 실수도 줄어들며, 상대방을 자세히 보려 앞으로 다가가서 눈을 바라볼 수도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흐린 눈으로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좋을 텐데. 그러면 살아가는 모든 일들에 감사하고 불평이 줄어들 텐데…….

 안경을 벗어 머리맡에 올려 두고 잠을 청했다. 불이 꺼진 방 안으로 들어온 가로등 빛이 안경을 반짝이게 했다. 우리 아침에 만나자는 인사를 하고 눈을 감았다. 나의 흐린 나라 물려주기가 큰아이 말고 작은 아이에게도 내려갈지 모르겠다. 그때는 지금보다 밝은 마음으로 아버지가 해주셨던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내 욕심으로 아이의 눈이 좋아질 수는 없으니, 다만 아이가 안경을 친구로 만드는 걸 도와줘야겠다. 최선을 다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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