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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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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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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BY 둘리나라 2007-09-13

 

                                  제목: 하루


 엄마의 목소리는 간절한 애원으로 떨리고 갈라져 있었다.

 “다른 날은 몰라도 오늘은 꼭 오너라. 미워도 너를 낳아 준 아버지인데 제사에 얼굴을 보여야지.”

 수화기를 잡고 울고 계실 당신이 머릿속에 그려졌지만 끝내 대답을 하지 않고 가을바람 같은 한숨만 날려 보냈다. 방안 가득 외로운 먼지가 들썩이며 어깨에 내려앉았다. 늙어 가는 엄마를 위해서는 가지 않더라도 ‘예’하고 대답을 했어야 했다. 아버지라는 한 마디에 가슴 끝에서 잊고 지냈던 기억 덩어리가 세포 증식을 시작했다. 이제는 잊을 만도 하련만 건망증의 천재인 내가 유독 아버지라는 단어 앞에서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도록 몸서리를 치는 건 죄책감 때문이었다. 슬픈 기억을 부여잡고 흐느끼는 죄책감! 바로 그것이었다.

 엄마는 하루도 얼굴이 성한 날이 없었다. 무능력한 가장을 대신해 생계를 짊어진 젊은 여인의 허리에는 언제나 리어카의 굵은 밧줄이 뱀처럼 감겨 있었다. 새벽이면 졸린 눈을 비비며 시장에 미역과 나물을 팔러 나가는 엄마. 억척스럽게 모은 돈을 고스란히 아버지에게 뺏기면서도 저항 한번 제대로 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 어린 내 눈에 비친 당신의 모습은 고단함과 불쌍함으로 똘똘 뭉친, 손대면 그 자리에서 소리도 없이 바스라질 것 같은 아픔이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의 사정없는 발길질이 잦아들 때면 작은 흐느낌 사이로 ‘내가 무슨 죄가 많아서’라는 말을 수도 없이 되뇌면서도 잠든 우리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고는 뜬눈으로 장사를 나가시곤 했었다. 어둠이 내린 길을 리어카를 끌며 걸어가던 힘없는 어깨를 보며 어린 나의 눈에도 슬픔이 맺혔고, 아버지란 존재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싹텄다.

신에게 벌을 받고 높은 산에 돌을 올리는 시시포스를 알게 되면서 삶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었고, 방황으로 얼룩진 사춘기를 시작했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아버지를 힘들게 하는 방법이라 느꼈고, 솔직히 일종의 쾌감도 있었다.

 숨바꼭질을 하듯 나는 숨고, 아버지는 찾아다녔다. 가출과 술과 담배로 가득한 청춘을 보내면서 일종의 복수를 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위하며 나를 정당화 시켰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엄마에게 쏟아내던 욕설과 충혈된 눈을 나에게로 돌리면, 엄마의 얼굴에 얼룩덜룩 붙어 있는 멍 자국들이 사라지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가 그러면 그럴수록 아버지는 길길이 날뛰는 미친 사자처럼 엄마를 물어뜯었다. 맞는 것에 길들여진(?) 엄마는 비명 소리도 없이 전당포에 저당 잡힌 몸을 주인에게 내주듯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엄마는 바보야? 아니면 살기 싫은 거야? 도대체 왜 소리도 안 질러. 맞으면 안 아파? 엄마는 생각도 없어!” 엄마는 악다구니를 하고 달려드는 나를 조용히 바라보더니, “나도 사람이야. 왜 안 아파. 하지만 때리는 아버지도 마음이 아프실 거야” 했다.

 그때 엄마의 눈에는 작은 희망이 일렁이고 있었다. 시시포스가 정상에 바위를 올려놓으면 다시 아래로 떨어지고, 또 힘겹게 굴려서 정상에 올리면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무의미한 행동의 형벌을 받으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언젠가는 반드시 바위를 올려놓으리라는 강한 신념이 그에게는 있었을 것이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아픈 몸으로 눈물을 자식들의 뺨에 떨어뜨리면서도 언젠가는 남편이 정신을 차리고 제자리로 돌아와 자신과 아이들에게 용서를 빌리라는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어려운 시간들을 이겨 낼 수 있었겠지. 그러나 나는 믿지 않았다. 아버지는 영원히 자신의 삶을 학대하고, 술에 허비하며, 흐린 눈으로 비틀거리며 걷다가 평생을 마감하리라 그것이 당신이 지금까지 걸어왔고 또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다.

 가을로 들어선 어느 날 밤, 나에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그날, 아버지는 엄마를 무섭게 고문했고, 참을 수 없었던 나는 당신을 파출소에 신고했다. 술이 이미 당신을 마셔 버려 정신은 육체와 분리 된 지 오래였고, 야수의 본성만 남아 울부짖던 아버지는 경찰차에 실려 밤의 어둠으로 사라져 갔다.

 “엄마. 아무리 기다려도 아버지는 달라지지 않아. 이제는 더 이상 엄마를 때리지 못하게 내가 지킬 거야!” 부서진 살림들을 쓸어 담으며 악다구니를 했다. 차라리 아버지가 없다면……. 있어서 아픔만 주는 당신. 다른 아버지들처럼 사랑 한번 주신 적 없는 당신이었기에 가슴 한구석에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지긋지긋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깜박 잠이 들었는데 문소리가 났다. 아버지의 체취였다. 마루에 앉아 멍하니 벽만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더니 어디론가 나가시는지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꺼내 신고는 문을 닫았다. 실눈을 뜨고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가슴에서 쏴아 하는 갈대밭을 훑는 스산한 바람 소리가 났다.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이었다는 걸 알았더라면 달려가 뒤에서 안아 드리기라도 했었을 텐데…….

 불길한 예감은 운명처럼 다가온다고 했던가. 아침 전화벨소리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컸었다. 반대쪽에서 낯선 목소리의 남자가 사무적으로 이야기했다. 병원의 이름을 말하며 아버지의 이름을 몇 번 확인하더니 빨리 오라고 했다.

 수화기에서 하늘이 울리고, 땅이 울리고, 매미가 울었다. 여름에도 울지 않았던 매미가 천지를 진동하듯 울어 댔다. 수천 마리가 한꺼번에 합창을 해 댔다. 캄캄하게 흐려지며 현기증이 났다. 엄마와 병원으로 달려가 보니 형사인 듯 보이는 분이 다가오며 목례를 했다.

 “자살입니다. 00 초등학교 운동장 농구대에 목을…….”

 한 장의 편지. 그것은 엄마에게가 아닌 나에게 남긴 마지막 서러움이며 간절한 절규였다.

 ‘내 딸아,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구나. 멋지고 자상한 아버지로…… 너에게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이 못난 아버지는 너를 사랑했단다. 저주받은 손과 발을 증오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또 되풀이되는 하루하루가 이제는 지옥처럼 느껴진단다. 나도 자유롭고 싶구나. 엄마를 부탁한다.’

 짧은 글로 모든 생을 접어 버린 아버지의 얼굴은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잠을 자는 것만 같았다. 행복한 꿈을 꾸고 계신 듯 웃고 계시다고 느낀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엄마는 바닥에 주저앉아 목을 놓아 우셨다. 그렇게 맞을 때도 안 우셨는데 하염없이 눈물을 토해 냈다.

 “아이고, 새벽에 전화 와서 우리 딸이 오죽했으면 나를 파출소에 고발했겠냐며 그렇게도 우시더니……. 술이 깨면 언제나 딸과 함께 운동장에 가서 놀아봤으면 하더니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아! 삶은 왜 이렇게 나와는 반대로만 돌아가는 걸까. 아버지가 나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죄책감에 내 눈물샘은 문을 열지 못했다. 자유를 찾아 가 버린 당신 앞에 말을 잃어버린 채 그렇게 나의 스무 살은 정지되어 버렸다.

 당신을 하늘로 보내 드리는 날. 그제야 내 마음에도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 한 덩이가 있다 는걸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용서 할 수 없었다.

 냉장고 문을 열어 소주를 꺼냈다. 반병 남은 소주가 ‘오늘도 마시냐? 그만 좀 하지’하고 부탁을 한다. ‘오늘만 봐주라.’ 잔도 없이 병째 입을 대었다. 목을 타고 흐르는 뜨거움에 울컥 눈물이 솟는다. 얼마 만에 터져 버린 눈물샘인지 갑자기 친구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내 모든 아픔을 알고 있는 유일한 친구, 아니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친구. 전화를 받은 친구는 자다가 일어났는지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웬일이냐. 이 시간에.”

 “응……그냥……. 오늘이 아버지 제사래.”

 “가지 그랬니. 마음으로 아버지를 봐야지. 눈에 보이던 아버지는 이제 잊을 때도 되었잖니.”

 “신이 너에게 하루라는 시간을 준다면, 어떤 날이건 상관없이 과거, 현재, 미래 중 하루라는 시간을 준다면 넌 뭐 할 거니?”

 “글쎄……, 너는?”

 “나?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 밤으로 가서 사랑한다고, 당신을 정말 사랑한다고 말할 거야.”

진심이었다. 독백하듯 술기운을 빌어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마지막 말을 꺼내 놓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기억의 사슬에 묶여 오랜 시간 아파했던 나의 하루! 그 하루를 찾을 수만 있다면 삶에 감사하며, 세상의 모든 것에 기뻐하며 살 수 있으련만 신은 내게 시시포스의 형벌을 주셨다. 나는 오늘도 하루라는 바위를 힘겹게 산꼭대기로 굴려 올린다.



 친구의 전화를 받고나면 잠을 이루기가 힘들다. 기억이 정지 해버린 그녀는 언제나 술에 취한 목소리로 나를 찾는다. 이제는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도 될 텐데 10년이 넘는 시간을 똑 같은 이야기만을 반복하고 있다.

 글자 하나 안 틀리고 그녀의 말을 할 수 있게 된 지금, 전화기 반대편의 그녀는 소주병을 손에 쥐고 울고 있을 것이다. 그녀와 나는 아버지라는 이름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고, 아파지고, 서럽고, 후회만 남는다. 친구야! 우리 이제는 그만 미안해하자. 너와 나는 신이 주는 하루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시시포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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