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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BY 둘리나라 2007-09-13

 

                                           제목: 가을


 계절의 끝은 언제나 추억이라는 꼬리표가 달려있다. 한 번의 계절이 끝날 때마다 사람들은 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가슴속에 저장한다. 좋은 추억은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꺼내 보기 좋게 예쁜 포장지로 싸서 넣어 두고, 나쁜 추억은 가슴속 어딘가에 열쇠를 채워 두고 인생의 길 위에서 가끔씩 기억의 자물쇠를 푸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나쁜 추억도 내 삶을 이어주는 한 부분이니까. 이왕이면 좋은 추억이 쌓여 가는 것이 즐겁겠지만…….

 오늘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작은 일에서 추억의 화살을 맞았다.

가슴이 따끔하면서 코끝이 아파 오며 유년의 가을 오후가 바람을 타고 걸어와 마루에 앉았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귀이개를 들고 뛰어오며 귀를 파 달라고 했다. 무릎을 베고 누운 아이의 귀를 살살 파 주니 시원하고 아프다며 엄살도 부리고 움찔거리며 좋아했다.

 첫아이라 신경도 많이 썼고 부모가 된다는 신비함에 많은 것을 해 주고 싶었는데, 하던 일이 잘못되어 가난이 불청객으로 들어오면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남들처럼 예쁜 옷 한 벌 못 사주고, 갖고 싶다는 장난감 한 개도 재대로 못 사주고, 먹고 싶다는 것도 마음 놓고 사 주지를 못했다. 어릴 때부터 고생이라는 달갑지 않은 선물을 안겨 준 엄마. 그러나 속이 깊은 아이는 한 번도 불평하거나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너무 의젓해서 아이다운 맛이 없다며 걱정을 하기도 했었다.

 “너도 다른 아이들처럼 부잣집에 태어났더라면…….”

 한숨처럼 새어나온 넋두리. 순간, 20년 전의 가을 오후가 기억 속에서 포장지를 풀고 있었다. 어쩌면 그리도 지금하고 똑같을 수가 있을까. 나와 엄마가 지금의 우리처럼 귀를 파며 나누었던 이야기를 거짓말처럼 똑같이 하고 있으니……. 엄마의 사랑을 처음으로 가슴에 느꼈던 그 날의 추억이 햇살 속에 따스하게 기지개를 폈다.

 아버지의 나이 마흔 다섯, 엄마의 나이 마흔에 6남매의 막내딸로 나는 세상에 태어났다.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우리 식구에게 내 존재는 부끄럽고 부담이 되는 껄끄러움이었다. 큰언니와 스무 살의 나이 차이가 나고, 많은 나이의 부모님은 자식이라고 말하는 게 힘이 드셨는지 잘 데리고 다니지를 않으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너무 어린 내가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을까 봐, 나이 많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상처받을 어린 딸을 위해 배려를 한 것이었다. 그때는 왜 알지 못했는지 너무 안타깝고 아쉽다.

 어느 곳에도 어울리지 못하는 나는 항상 혼자였고 말수도 적었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엄마는 아침에 나가면 밤하늘의 별이 자리를 잡아야 피곤에 지친 얼굴로 대문을 열었다. 자리에 눕기 무섭게 하루의 고단함을 잠으로 마무리하는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릴 수도, 품에 안길 수도 없었다. 사랑에 굶주린 계집아이는 언제나 배가 고팠다. 밥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이상하게 허전했다. 그때부터 외로움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던 유년의 하루하루는 철저히 혼자가 되는 법을 배워 나갔다.

 바다를 보며 눈물을 참는 법을, 갈매기를 보며 날고 싶다는 꿈을, 등대를 보며 누군가를 위해 홀로 불을 켜는 사랑을 알아 나갔다. 어떤 날은 엄마는 계모이고, 친엄마는 다른 곳에 있다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나를 찾으러 올 거라는 기다림을 가져보기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맺힌다. 그러나 그땐 정말 진지했었다. 모든 아이들이 그러지 않았을까?

 먹고사는 것도 바빴던 시절. 손톱이 갈라지도록 생선의 배를 갈라야 열 식구 입에 보리밥이라도 먹일 수가 있었던 어미의 힘든 삶을 알 길 없는 철없는 어린 딸은 울고 떼를 쓰며 속을 많이도 긁어 놓았었다. 이제야 당신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며 가슴 한쪽이 시리니 얼마나 더 살아야 느낄 수가 있을까.

 엄마의 애정을 기다리다 눈물 젖은 얼굴을 베개에 묻고 잠이 든 딸을 보는 가슴은 아마도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따뜻한 말을 보내준 적이 없었기에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만 생각했었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그 믿음이 깨졌던 그 날은 가을 햇살이 세포마다 포근한 알갱이들을 뿌리는 오후였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보다. 모처럼 일을 쉬었던 엄마는 마루에 누워서 나를 불렀다.

 “수정아. 엄마 귀 좀 파 줘.”

 어린 딸의 무릎을 베고 귀를 맡긴 채 눈을 감고 낮잠에 드신 당신. 태어나서 처음으로 함께 있는 시간이었다. 조금씩 귀밑에 자리 잡은 하얀 세월은 이마에 패인 고생의 골과 함께 엄마를 더욱 늙어 보이게 했고, 작은 몸을 흐르는 비릿한 한숨은 바삭거리는 가을 낙엽처럼 하늘을 떠다녔다. 거친 바닷바람에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과 나무등걸보다 더 거칠게 갈라져서 터져 버린 손. 눈가에 달린 세월의 풍파는 어린 내 눈에도 너무나 쓸쓸해 보였다. 그러나 엄마의 표정은 정말 행복하고 너무 편안했었다. 삶을 달관한 듯 보이는 미소.

 “너도 젊고 예쁜 엄마가 있는 부잣집에 태어났더라면…….”

 혼잣말인지 아니면 들으라고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상하게 눈앞이 흐려졌다. 처음으로 엄마의 귀를 팠던 날, 어린 딸의 가슴속에는 비가 내렸다. 작은 가슴을 다 적시고도 모자라 눈으로 터져 나왔다. 세상 어떤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까. 내 가슴은 가을 단풍처럼 물든 사랑으로 계절의 끝을 보냈고, 좋은 추억 하나를 포장했다. 유년의 가장 행복했던 아름다움으로, 사랑을 알게 된 소중함으로.

 가을이라서 더욱 소중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엄마였기에 늦게 본 자식이 혹시 어른이 되기 전에 겨울에 묻혀 버릴까 봐 걱정을 하셨을 것이고, 혼자서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강함을 가지라고 더욱 모질게 품에서 떼어 내야 했을 테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사랑했기에 택한 선택이었고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강하게 키워주셨기에 지금은 어떤 좌절 속에서도 일어서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내 자식도 그렇게 키우고 싶다. 스스로의 삶을 책임질 수 있게 말이다.

 추억에 젖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딸아이가 “엄마, 나는 엄마의 딸인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하며 뛰어 와 품에 안긴다. 아! 나도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차오르는 눈물이 깊어 가는 가을 속에 사랑으로 떨어진다. 가을볕이 너무 너무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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