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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살 세상은


BY 둘리나라 2007-09-12

 

                                     제목: 네가 살 세상은


 내 딸아, 앞으로 네가 살 세상은 시험이라는 단어가 아예 사라져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에도, 국어사전에도 없었으면 좋겠구나. 이번 수능 시험에도 세상에 아직 나서 보지도 못한 몇몇 학생들이 안타까운 목숨을 버리고 말았단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슬픈지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더라. 학교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그때부터 어깨에 시험이라는 짐을 얹고 살아야 하는 어이없는 현실은 이제는 제발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비싼 과외를 받아가며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수학공식을 풀고 영어단어를 외우고 뜻도 모르는 시인의 시를 국어라 적힌 노트에 베껴 쓰지. 공부라는 사슬을 온몸에 칭칭 감고 시간의 노예가 되어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워야 할 청소년기를 보내는 대한민국이라는 땅이 답답하구나. 오죽했으면 태어난 나라를 버리고 이민을 가 버리기까지 할까! 과외비를 벌려고 엄마들이 파출부를 나갈까!

 내 딸아, 사람을 평가하는 방법이 시험이란 제도에만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개인과 개인끼리 경쟁을 시켜서 승자와 패자를 가려내 희비를 바라봐야하는지 의심스럽단다. 대학을 나와도 취직을 못해 젊은 청년 실업자가 쏟아지고 있는데 앞으로 10년, 20년 후는 어떨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구나. 나라와 나라의 경쟁으로 전쟁이 생기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경쟁으로 이기심과 욕심이 생기고, 개인과 개인사이의 경쟁으로 시험이 생겼으리라 엄마는 혼자 고개를 끄덕여 보았다. 차라리 시험이 있다면 환경 보호 과목과 이웃 사랑 과목과 인성 교육 과목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1년에 몇 시간이나 하늘과 별을 보았는지, 먼지 나는 흙 땅을 얼마나 밟아 보았는지, 산과 바다를 여행하며 호연지기를 키웠는지가 시험문제라면 신이 날 텐데. 1년에 몇 시간 재활용품을 분류하고, 쓰레기를 줍고, 물을 아껴 쓰고, 자연보호를 위해 활동했는지가 과제라면 보람을 느낄 텐데. 1년에 과연 몇 시간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부모님께 사랑의 마음을 나누었는지가 숙제라면 가슴이 뿌듯할 텐데. 1년에 얼마를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선생님과 대화하고, 청소년기에 해야 할 문화활동과 취미생활과 개인의 적성을 찾는 일을 했는지가 시험이라면 즐겁게 할 텐데. 나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고 세상에 나가서 큰 일을 하리란 걸 믿는 마음이 과목이라면 아까운 목숨을 버리는 일은 정말정말 없을 텐데 말이다. 거기다 공부는 조금의 지식을 전달해주는, 그래서 사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 만큼만 해야 하는 교양 과목 정도라면 좋겠다.

 내 딸아, 네가 살아갈 세상은 인간이 존중받고 귀하고 소중했으면 하는 바람이란다. 돈이 최고가 되는 지금이 제발 사라지고……. 돈 때문에 부모를 죽이고 모시지 않고, 자식을 버리고 죽이고 아니면, 가족 전체가 삶을 포기하는 비극이 생겨나지 않았으면 한단다. 열심히 일하면 다 잘사는 나라. 거짓 없고 착한 사람들이 대우 받는 나라, 범죄가 없어 경찰이 필요 없는 나라가 되면 좋겠구나.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과 함께하는 여유로움을 안 지키면 회사에서 불이익을 주고, 돈이 많으면서 세금을 안 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아예 사회에서 격리시키고, 수많은 불법과 나쁜 일을 서슴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국외로 추방시켜 버려 정의가 바로 서고 편법이 용서되지 않는 바른 나라가 대한민국이었으면 한다. 많이 가진 이들은 작게 가진 이들에게 나누는 것이 당연하고, 복지를 위해 세금의 상당부분이 쓰이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소외계층이 마음 편히 아플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빈단다. 투명하고 밝은 정치로 비자금이니 뒷돈이니 검은 거래니 하는 뉴스가 사라지고, 사람들 사이의 정이 흘러넘쳐 인간이 최고로 여겨지는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엄마의 바람은 없다.

 내 딸아, 진실로 바라는 세상은 남녀라는 말보다는 우리라는 말이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굳이 국어사전에서 평등이란 단어를 찾아보지 않아도 남자와 여자라는 테두리에 스스로를 가둬 두지 않는 밝은 정신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으면 한다.

‘여자가 뭘 안다고! 여자가 어디서 나서냐! 여자가 재수 없어 집안이 안 된다!’ 이런 가슴 아프고 슬픈 말들이 자라나는 너희들의 희망에 절망의 씨앗을 심는 일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여자도 충분히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바 책임을 훌륭하게 할 수 있고,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수 있는 세상이 되면 기쁘겠구나. 엄마는 너와 동생을 딸이지만 감사하고 귀하게 낳아 눈부신 빛으로 키웠단다. 평등은 말로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름답게 여기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란다. 너는 깊이 생각하고 느껴 네가 가진 꿈을 모두 펼치길 바란다.

 내 딸아, 우리가 지금까지 살았던 세상보다 네가 살아갈 세상은 행복하고 기분 좋은, 그래서 계속 살고 싶은 평화로운 땅이면 한다. 여기서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갔으면 한다. 따스함이 살아있는 뜨거운 심장이 살아있는 좋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살기를 빌며……. 평화를 가르쳐 주지 않아도 피부로 느끼며 서로를 사랑하라 말하지 않아도 가슴으로 알아지는 그런 희망이 박동치는 자유롭고 기분 좋은 나라에서 네 꿈을 펼치기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우리라는 말이 사랑해라는 말로 통하는 세상에서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아나가길 정말정말 바라며 엄마는 작은 희망의 쪽지를 접어 심장의 주머니에 넣는단다. 그 쪽지를 꺼내 보는 날 평화와 사랑과 희망과 기다림이 하나로 뭉쳐 얼싸안고 흥겨운 노래와 어깨춤이 들썩이겠지. 네가 살 세상은 바로 이런 세상이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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