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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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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와 바위


BY 둘리나라 2007-09-12

 

                            제목: 파도와 바위


 바람에 묻어온 그의 소식은 잊고 지내왔던 시간 속의 기억을 끄집어내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내 머릿속의 기억 시간은 언제나 그를 떠올리면 실종이 되고 방향을 잃어버린 나침반처럼 어지럽기만 했었다. 사랑이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웠던 스무 살의 설렘이 자리 잡았던 가슴과 잘 읽은 사과처럼 붉었던 뺨이 추억 속 그리움이 되어 눈을 떴다.

 친구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이라는 길로 나란히 걸어갔지만, 나는 사회라는 길로 걸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많이도 울었던 그해에 그를 만났다. 대학이라는 배를 탄 친구들을 선착장에서 손 흔들어 보내며 쓸쓸히 돌아섰던 그때. 나는 참 많이 외롭고 허전했었다.

 작은 새언니의 소개로 작은 사무실에 경리로 취직을 했는데, 그곳에는 작은 키에 쌍꺼풀이 없는 눈의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가 ‘기사’라는 명함을 달고 일하고 있었다. 그렇게 만났다. 첫눈에 반한다는 떨림도 없었고, 서로에게 강한 자석처럼 끌리는 어떤 느낌도 없었고, 그렇다고 특별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루하루 되풀이되는 직장 생활의 무미건조함에 길들여지기 싫어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때로는 술도 마시며 시간을 보냈지만 이상하게 외로웠다. 대학생이 되어 버린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면 할수록 미치도록 외롭고 눈물이 났다. 너무 외로워서, 미치도록 외로워서였을까.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그가 사는 게 참 외롭다고 농담처럼 던진 말이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처럼 동그랗게 파문을 일으켰다. 나와 같은 생각과 마음을 가진 사람이 가까이에 있었구나. 굳이 이유를 말하라면 외로워서 만났다고, 그래서 좋을 줄 알았는데 더 외롭더라고 말하고 싶다. 외로움의 공유는 더 크고 짙은 외로움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하다는 생각을 한 바보가 바로 나였으니까.

 우리는 조금이라도 덜 외롭기 위해 매일매일 만났다. 1년 365일을 하루도 안 빠지고 출석 표에 도장을 찍듯이 칸을 채워 나갔다. 영화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춤도 추러 다니고, 가끔은 친구들과 포장마차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며 서로의 따스함이 되어주려고 애썼다. 치유되지 못할 불치의 병은 공허함과 외로움이라며 목이 터져라 노래방에서 소리도 질러 보았다. 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걸어도 빈 가슴은 채워지지 않았고, 밤바다에서 심장을 쥐어뜯으며 울어도 바람만 텅 빈 공간을 훑고 지나갈 뿐 메워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게도 난 20대에 사춘기를 겪는 어울리지 않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을 알지 못하면서 사랑한다고 외치는 나는 사랑에는 청맹과니였다. 난,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좋아했을 뿐이었다. 그가 울 때 함께 울어 주기보다는 위로를 했고, 별것 아닌 일에도 화를 내며 싸움을 만들어 꼭 사과를 받아 내야만 직성이 풀렸다. 어느 순간부터 부담스러워진 사랑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고 거북했다.

 우리의 미래를 얘기하는 그에게 “나는 미래를 오빠와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라고 모질게 말했었다.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쓸쓸한 시선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왔지만 끝내 외면하고 말았다.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솔직히 머릿속에 그려 보지 않았었다. 이제 사회라는 구성체의 일부분이 되어 내 자리를 찾으려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 한 남자의 아내라는 자리는 너무 벅차고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러기에 나는 어렸고 철도 없었다.

 그와 난 파도와 바위였다. 파도는 끊임없이 바위에게 크고 작은 사랑을 보내지만, 무심한 바위는 파도에 겉만 젖을 뿐 속은 젖지 않는다. 부딪혀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속을 드러내지 않는 바위. 언제나 그의 사랑은 겉만 맴돌 뿐이었다.

 그때 내 앞에 나타난 또 한명의 남자는 가슴속에 따스함이 가득한 환한 미소를 가진 사람이었다. 외로움 더하기 외로움은 더 짙은 외로움이란 사실을 알아버린 내게 외로움 더하기 따스함은 사랑이란 걸 가르쳐준 그. 외로움 보다는 따스함을 택하고 싶었던 간사한 마음이 결국 해서는 안 될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말았다.

“오빠, 나……오빠를 사랑한 게 아니었나봐. 처음엔 가슴이 떨리고 얼굴이 빨개졌었어. 그게 사랑인줄 알았는데……, 아냐. 오빠, 사랑이라면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흐르고 가슴 끝이 저려 오고 보고 싶어야 하는 거 아냐? 난 오빠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오빠의 외로움을 사랑한 거 같아.”

 마지막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얼굴에서 번져 나오던 차디찬 슬픔이 뒹구는 낙엽을 따라 거리를 굴렀다. 소용돌이치는 바람의 종착역은 언제나 바다로 향했다. 그래서 더 애처롭고  더 슬픈 그였다. 바위를 만나지 말고 같은 색의 하늘을 만나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서로 같은 색깔로 쳐다보며 파도와 하늘은 거울이 될 수 있으니 하늘 같은 여자를 만나기를 빌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를 못했다. 두 번의 자살기도. 사랑은 목숨도 아깝지 않게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혼자 남겨진 외로움은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던 것이다. 난 그렇게 나쁘고 제멋대로인 여자였다. 

 창백한 얼굴로 찾아온 밤. 시계를 풀어 손목을 보여주며 “너는 나를 떠났어도 나는 너를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야. 손목에 새긴 너의 흔적이야.”라며 슬픈 미소를 보인 것이 파도와 바위의 마지막 인사였다.

우리는 지독한 외로움 속에 격리 수용된 환자처럼 멍하니 서로의 텅 빈 눈만 들여다보다 헤어졌다. 사랑은 일방적일 수 없음을 깨달으며.

 가을바람을 뒤로 하고 돌아서 가던 텅 빈 어깨와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를 간직하고 타들어가던 담배가 내가 본 그의 마지막이었다. 부디 행복 하라는 그 한 마디를 못하고 스물한 살의 가을은 낙엽 타는 냄새와 함께 추억이라는 배를 타고 떠나 버렸다.

 오늘 그의 소식을 들었다. 결혼해서 잘살고 있다는 소식. 시간의 좋은 점은 상처를 치유하는 효력이 있다는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해답은 모르겠지만,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각자의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려고 노력하는 게 어쩌면 정답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뒤를 돌아보면, 내 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 잊지 못할 얼굴 하나가 있었다는 것에 미소를 지으며 추억을 꺼내 볼는지도 모른다. 지나고 보면 가슴 아픈 시절도 인생의 길 위에 찍히는 발자국임을 알아질 테니 말이다.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의미하는 단어의 줄임말이 아니었을까 느끼며 지금의 시간을 소중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의 기억 속에 난 어떻게 남아 있을까? 부디 웃으며 기억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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