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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사막


BY 둘리나라 2007-09-12

 

                                     제목: 달과 사막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기억에 남는 사람 한두 명이 없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한 삶이 될까.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추억의 길 어딘가에는 아련한 그리움의 열매를 달고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을지도 모른다. 가끔씩 기억을 비집고 들어와 따 주기를 빌며 추억 속에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입 안 가득 퍼지는 과즙처럼 달콤함을 간직한 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 번쯤은 다시 나를 기억해주길 바라면서…….

 나에게도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고,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해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이름도 나이도 모르고, 아는 것은 이제는 조금씩 흐려지는 얼굴뿐이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가슴속에는 더 짙은 고마움과 감사로 각인되는 사람이다.

 1995년의 여름, 여름이라는 계절을 싸늘한 겨울로 느낌만큼 온몸과 가슴은 피멍이 들고 상처를 입어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 정말 죽음의 유혹 앞에서 순간순간 변하는 내 모습에 치가 떨리고 두려워 아예 눈을 감아버리기를 수십 번, 그러나 질긴 생명의 끈은 삶과 나를 떼어놓지 못했다. 잔인하게 죽음과 삶은 나를 번갈아 가며 저울질해 왔다.

 작은 식당을 친구와 동업으로 했었는데 제대로 장사도 한번 못해보고 졸지에 날벼락을 맞고 말았다. 모든 명의는 아이들 아빠 앞으로 되어 있었는데, 친구가 남편 앞으로 사채를 쓰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바람에 빚쟁이들이 순식간에, 아이의 손에서 과자를 빼앗는 것보다 쉽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가져가 버렸다. 그들은 나와 남편과 이제 막 돌이 지난 딸아이를 매몰차게 도로 위로 던져버렸다.

 너무나 기가 막혀 울음도 나오지 않는데, 품 안의 아이는 새파랗게 질려 발악을 하며 울어대었고, 무능력한 가장은 무심한 하늘만 쳐다보며 한숨을 쉬는 것이 전부였다. 아무 대책도 답도 찾을 수 없는 암울한 현실 앞에 목 놓아 하소연도 못한 채 남들이 알까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야 했던 그날은, 기억의 세포 곳곳에 아릿한 아픔으로 숨어 있다가 해마다 여름이면 온몸으로 퍼져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믿음에 대한 배신이 더 컸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돌아봤을 때 갈아입을 옷 한 벌이 든 가방과 몇 만 원의 돈이 전부란 사실에 목이 메여오고, 누군가에게 세게 맞은 것처럼 명치끝이 아파 왔다. 방법이 없었다. 텅 빈 길 위에 얼마나 서 있었는지…….

 할 말을 잃은 가장은 서울로 가자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날 밤 청량리 행 기차에 몸을 실은 우리는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하는 서러움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흐려지는 별들을 원망했었다. 삶의 밑바닥에 떨어지는 기분은 벼랑에 선 아득함으로 다가왔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었다. 언제 다시 고향의 냄새를 맡아볼 수 있을까? 언제 다시 떳떳하게 돌아올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우리의 잘못이 아닌데, 사람을 믿은 것이 죄라면 죄인데, 하늘은 너무 감당하기 힘든 숙제를 내 주셨다. 답은 과연 있기나 한 것인지.

 새벽기차는 세 식구를 토해놓고 무심히 가 버리고 낯선 곳, 낯선 땅에서 길을 잃은 이방인은 무섭고 두렵고 현기증이 났다. 정처 없는 발길은 몇 시간을 걸어서 종로 3가에 있는 ‘종묘공원’에 이르러서야 겨우 쉴 수 있는 의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여름의 더위가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와 발을 송곳처럼 찔러 댔고, 등을 타고 흐르던 땀들은 서로 옷을 비집고 나오려 싸움질을 해 댔다. 답답했다. 정신도 없었다. 내 삶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생각조차 못했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아무리 이를 악물어도 울음이 가슴에서 터져서 목과 눈과 코를 정말 세게 꼬집어 뜯었다. 아팠다. 하늘이 아프고, 땅이 아프고, 인간이 서러웠다. 차라리 죽어버린다면, 나 하나 사라진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땀으로 범벅 된 몸과 마음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신열이 나듯 몸이 아파 공원의 벤치에 앉아 지친 한숨을 내뱉는데, 그때 내 앞에 나타난 사람! 잊을 수 없는 사람! 바로 그 아주머니였다.

작은 키에 파마머리를 한 40대 중반의 아주머니는 하얀 얼굴에 세월의 나이테가 조금씩 자리 잡고 있었는데 참 편해 보이는 인상이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첫 만남이었지만 아주 오래된 사귐처럼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처럼 편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했던 걸로 기억이 된다.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가 오히려 내 아킬레스 근을 다 드러내 보여도 부끄럽지 않은 이유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왜 여기 앉아 있냐는 아주머니의 물음에 흐린 웃음으로 지금의 사정을 넋두리로 늘어놓고 말았다. 그냥 너무 힘들어서 어디에다 속이라도 털어 놓으면 좀 나아질까하는 마음에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주머니가 내 손을 꼭 잡고는 자기의 손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 주었다. 놀라서 받을 수 없다고 했더니 한사코 손에 쥐어 주며 받으라고 했다.

 “나도 힘든 시절을 겪었어요. 지금 힘들다고 영원히 어려운 법은 없으니 참고 힘내요. 내가 급히 나오느라 지금 가진 건 이것뿐이에요. 받아줘요. 앞으로 잘살게 되면 어려운 사람 도와주면 살면 되는 거예요. 알았죠. 열심히 살아줘요!”

 햇살 속에서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총총히 걸어가던 뒷모습은 가슴에 조각이 되어 지금도 남아 있고, 열심히 살라던 그 말은 삶의 길잡이가 되어 나를 이끄는 용기와 희망이 되어 주었다. 언젠가 달력에서 본 그림 생각이 났다. 사막위에 달이 떠있는 그림이었다. 달과 사막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묘하게도 어울리며 기억에 깊이 남았다. 그런데 나는 그 아주머니를 보면서 달과 사막을 떠올렸다. 끝없는 사막을 걸어가는 나그네는 오아시스를 생각하며 지친 걸음을 옮긴다. 걸어도 걸어도 물은 보이지 않고, 타오르는 태양은 사막을 뜨겁게 달구기만 할 뿐이다. 그러다 밤이 오면 달이 떠오르고, 사막은 후끈거리는 온도를 내리고 휴식을 취한다. 나그네도 그제야 숨을 돌리고 내일은 꼭 오아시스를 찾으리란 희망을 되새김질한다.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면서.

 지금 난 사막을 걸어가는 나그네이고, 아주머니는 달이며, 앞으로의 내 삶은 오아시스라고 생각했다. 그 날의 소중한 만남 덕분에 수차례 닥쳐온 고통과 어려움을 용기를 내고 다시 힘을 내어 이겨 낼 수 있었다. 세상에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고,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리고 가끔씩은 아주머니를 떠올리며 달을 보았다. 사막위에 뜬 달은 지친 나그네를 쉬게 해주는 편안함이라면, 내 머리위에 뜬 달은 추억을 기억나게 해주는 그리움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일이 재미있고 즐거움만 가득하다면 인생의 깊이를 알지도 못할 것이며, 실패를 겪어 보지 않으면 성취했을 때의 가슴 벅찬 감동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가끔씩 아이들과 옥상에 올라가 달을 본다. 초승달은 보름달이 되려고 한 걸음씩 커 가고, 꽉 찬 보름달은 다시 초승달을 향해 자신을 비운다. 비우면 채우고, 채워지면 비우는 것이 살아가는 이치라면 나도 그러하리라.

 사막 위의 오아시스는 지친 나그네들에게는 최고의 휴식처이다. 달을 따라 도착한 그곳에서 느끼는 편안함을 나는 아주머니의 마음에서 느꼈다. 야자나무에서 따먹는 야자열매는 타는 갈증을 얼마나 시원하게 씻어 줄까! 나도 세상에 야자열매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노력은 할 생각이다.

 기회가 있으면 꼭 다시 만나 내 기억 속 나무에는 아주머니가 사랑으로 영글어 추억의 열매를 만들고 있었다고, 너무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은데 아직 만날 인연이 아닌지 만나지 못했다. 스쳐 가는 바람처럼 옷깃이라도 부딪힌다면 바람이 전하는 말이라도 귓가에 들려주기를 빈다. 그 때 그 애기엄마 열심히 잘 살고 있으니 걱정마세요라고. 하늘빛이 참 고와서 눈이 시리다. 오늘은 보름달이 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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