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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과 평상


BY 둘리나라 2007-09-12

 

                                   제목: 여름밤과 평상


 더위로 녹초가 되어 버린 시계가 벌써 12시를 넘어 새벽으로 가쁜 숨을 재촉하고 있다. 새벽으로 향해 가는 시간에도 넉살 좋은 기온은 내려갈 생각을 안 하고 열대야로 약을 바짝 올린다. 수박만큼 부어오른 배를 잡고 크게 숨을 내쉬고는 편안한 잠을 청해보려 하지만, 9개월에 접어든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아! 정말 덥다. 더위 속에서 연신 돌아가는 선풍기는 지칠 대로 지쳐 뜨거운 바람만 토해 내고, 토해 낸 알갱이들이 피부 속에 박혀 도저히 잠을 청할 수가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열한 가구가 사는 다세대 주택의 여름밤. 둥그런 보름달과 반짝이는 별들이 불청객의 가쁜 숨소리를 들으며 커다란 눈을 껌벅이고 있었다. 이렇게 더운 여름밤이면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평상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시원한 밤하늘과 옥상위에 놓여 있던 네모난 평상!

 지금부터 20년 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로 기억된다. 손재주가 좋으셨던 아버지는 집안에 굴러다니는 쓸모없는 널빤지를 모아 평상을 만드셨다. 못으로 이곳저곳을 박아 만든 그것은 내가 보기에도 단단하고 좋아보였다.

 “아부지, 이거 만들어서 어디다 쓸라꼬?”

 “우리 막내 딸캉 옥상에서 시원한 여름 보낼라꼬.”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연신 훔치시며 싱긋 웃던 아버지. 당신의 손은 무엇이든 만들어 내는 신기한 요술 손이었다. 의자며, 책상이며, 옷걸이, 평상까지…….

 네모난 평상이 놓인 후 우리 가족의 여름은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더위가 물러가는 저녁이면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님과 여섯 명의 형제들은 평상위에 모기장을 쳤다. 모깃불도 피우고, 전기도 연결해서 텔레비전을 보고 선풍기도 틀어놓고, 수박, 포도, 옥수수를 먹으며 밤을 새웠다. 더위로 늘어져 가는 동네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옥상위에는 낮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던 것이다.

 여름 하늘은 파란 호수에 은쟁반을 띄운 듯 반짝이는 별들로 아름다웠고, 뺨을 스치는 바람 역시도 더위를 씻기에 충분했다. 아버지의 팔을 베고 누워 바라본 새벽하늘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림처럼 다가온다. 동화책에서 보았던 옥토끼가 달나라에서 절구를 찧는 모습도, 별을 타고 다니는 요정들의 이야기도 여름 하늘에는 가득했다.

 “아부지, 하늘의 별이 왜 저렇게 많은교?”

 작은 눈에 호기심을 담아 물어보면, “하늘에 별이 많은 건 꿈을 가진 사람이 많아서 아이가. 저 별 하나에는 한사람의 꿈이 있는 들어 있제. 그래서 빛을 낼 수 있다 아이가. 수정이 니 별도 꿈이 있어 저렇게 반짝이고 있는 기다.”하시며 유난히 밝은 별을 가리켰다. 아버지의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어린 나이였지만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서 반짝이는 그 별이 괜히 좋았다.

 6남매의 막내로, 그것도 아버지의 나이 마흔다섯에 태어난 아이가 바로 나였다. 군인이셨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는 엄했지만 나에게는 항상 웃음과 사랑을 보내 주셨다. 아버지의 등에 업혀 항상 재롱을 부리고 애교를 떠니 왜 예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애지중지하던 보물은 당신의 가슴에 아픔의 못을 박고 불효의 죄를 짓고 말았다.

 “결혼은 안 된다.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허락할 수 없다!”

 마른 숨을 삼키며 내뱉으신 한 마디는 천식 환자의 기침처럼 갈라지고 메말랐었다. 깊은 바다 밑에서 건져 올린 난파선의 조각처럼 건드리면 바스러져 버릴 듯 당신의 손은 힘없이 내 등을 때리고 있었다. 매몰차고 못된 나는 20년을 안아 주셨던 따스한 둥지를 미련도 없이 훌쩍 떠나 한 남자의 품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1년이 넘게 집과 소식을 끊고 살았다. 어떻게든 성공해서 허락을 받겠다는 어리석은 생각만으로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의미 없이 보냈다. 그 바보 같은 생각의 처절한 대가는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사랑이 주는 달콤함에 젖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당신은 다 타 버린 숯덩이 가슴을 안고 하늘로 가신 것이었다. 내 아버지는 끝내 막내딸을 못 보고 혼자서 가야 하는 곳으로 영원한 여행을 떠나고 말았다. 집 나간 딸을 기다리다 감기가 드셨고, 텔레비전에서 신원불명의 죽음만 들어도 달려가 막내딸이 아님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숨을 쉬셨으며, 명절의 빈자리에는 돌아서서 눈물을 보이셨다 했다. 밤이 새도록 주름진 이마에 깊은 한숨으로 딸의 장래를 걱정하셨을 모습이 자꾸만 생각나 뼈에 사무치는 후회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직장 다니며 번 돈으로 집에 보일러를 놓아 드렸더니 손님들만 오면 “우리 막내딸이 해 준기라. 얼마나 따신지 모르제.”하며 자랑을 하시던 목소리가 가슴에 아리게 들려왔다. 그 보일러를 겨울에도 틀지 않으셨다는 이야기를 언니에게 들었다. 딸은 어디서 떨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혼자 따뜻한 곳에서 편히 잘 수 없다 하시며 도리질을 하셨단다. 허리가 아파 고생 하시면서도…….

 그 깊은 사랑을 어찌 다 글로 쓸 수 있을까. 찾아가서 뵙고 용서를 빌고 싶어도 유언대로 화장을 해서 뵐 수가 없다. 넓은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아버지의 하늘에는 엄마의 해가 뜨고, 형제의 달이 뜨고, 자식의 별이 떴으리라. 때로는 가슴이 아파 비가 내리고, 세상살이의 힘겨움에 폭풍이 치고, 친구들과 자식들과 세상 사람들의 시달림으로 천둥과 번개가 쳤을 것이다. 1년 사계절의 변화처럼 기쁨과 슬픔과 괴로움과 사랑이 스쳐가고, 그렇게 시간은 당신을 하늘로 다시 불렀을 것이다. 지금은 세상을 바라보며 막내딸의 행복을 걱정하고 계실 테지. 아버지의 하늘은 죽어서도 죽음이 아닌 자식에 대한 걱정인 것이다. 모두가 아름답고 행복해질 때 비로소 그 하늘은 자유로워져서 대 자연의 일부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엄마의 사랑이 겉으로 표현하는 행복이라면, 내 아버지의 사랑은 속으로 아파하며 전부를 내어주는 ‘살신성인’의 깊음일 것이다.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보물단지 ‘화수분’처럼 모든 걸 다 주고도 모자라서 안타까워하시는 게 바로 당신이었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가는 여름밤. 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보며 크게 심호흡을 해 본다. 시간이 흐르면 잊혀 질 줄 알았는데 해마다 여름이 오면 아버지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아버지의 팔을 베고 바라보던 여름 밤하늘의 별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추억들을 간직하고, 또 얼마나 많은 추억을 지금도 만들고 있을까?

 “너는 나의 별이데이. 영원한 별!” 하시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눈을 감으면 어제처럼 별이 보인다. 지금 손때 묻은 평상은 시간 속에서 땔감으로 변해 버렸고, 즐거웠던 그때는 추억이라는 단어 속으로 숨어 버렸지만, 아버지에 대한 기억만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자식의 아픔에는 긴 밤을 새우며 가슴 아파하면서 아버지의 삶에는 방관자가 되었던 불효가 오늘따라 코끝을 시리게 한다. 유난히 반짝이는 별이 당신의 눈처럼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버지. 당신의 막내딸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려고 해요. 잘살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살고 있어요. 당신의 가슴에 아픔이 되지 않게 착하게 살 테니 걱정 마세요.’

 뱃속의 아이가 내 마음을 아는지 발길질을 해 댄다. 내 어릴 적 꿈이 별과 함께 커 왔듯 내 아이의 꿈도 별과 함께 커 나가길 바라며 선풍기가 기다리고 있는 방문을 연다. 졸린 눈을 비비던 달이 환히 웃었다. 별은 더 힘을 내서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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