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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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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리고 수제비


BY 둘리나라 2007-09-12

 

                           제목: 비 그리고 수제비


 밖에 비가 온다며 큰소리로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미처 닿기도 전에 장대같은 비가 한꺼번에 땅으로 쏟아져 내렸다. 마당에 널어둔 이불이 생각나 신발도 대충신고 달려 나가보니 벌써 여러 군데 비 폭탄을 맞아 상처를 입고 패잔병이 되어 있었다. 부상병을 어깨동무해 데리고 들어와 빨래 건조대에 눕혀 상처부위를 보니 몇 시간만 지나면 회복이 가능할듯해, 휴식을 취하라고 툭툭 털어주고는 창을 열어보았다. 생선비린내보다 강한 비 비린내가 땅속에서 스물 스물 기어 나와 습한 공기를 타고 바이러스를 급속도로 퍼뜨리기 시작했다. 한번 맡으면 잊어버리기 힘든 비가 가진 이상야릇한 냄새가 코로 달려들며 폐부를 자극해댔다. 어느 장소에 내리느냐에 따라 틀려지는 독특하고 강렬한 향을 가진 비.

아스팔트에서는 후덥지근한 열기를 잔뜩 품은 비린내를, 흙 땅에서는 풀냄새를 가득담은 아릿한 비린내를, 산길에는 마른 지푸라기와 나무 그리고 여러 종류의 풀들이 어우러져 눈이 따가울 정도로 톡 쏘는 특이한 비린내를 가지고 있는 신비한 녀석이다. 특이한 건지 이상한건지 잘 모르지만 나는 생선비린내를 맡지 못한다. 생선가게 옆만 지나가도 비위가 상해 눈이 빨개지도록 웩웩거린다. 멀리에서 생선 파는 차만 보아도 속을 다 끄집어 낼 것처럼 헛구역질을 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기 일쑤다. 그런데 우습게도 비의 비린내는 참 좋아한다. 특이한 신체구조인지 연구를 해봐야할까 혼자 생각하며 비로 물들어가는 거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아이가 큰소리로 부르며 뛰어왔다.

“엄마 비 오는데 우리 수제비 해 먹어요. 네?”

“글쎄…… 그럴까?”

비와는 찰떡궁합 천생연분인 수제비를 오랜만에 해보기로 하고 부엌으로 향했다. 냄비에 물을 적당히 받아 영양만점 멸치 몇 마리를 넣었더니 구수한 냄새까지 동반하고 열심히 기록 갱신에 힘쓰며 수영을 해 댔다. 감자는 껍질을 벗겨 놓았더니 동그랗고 뽀얀 알몸을 드러내고 부끄러워 도마 위에서 진땀을 흘렸다.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냄비에 다이빙을 시키니 수영선수 멸치와 조화를 이루어 환상의 콤비를 이루며 끓기 시작했다. 밀가루를 그릇에 담아 반죽을 시작했다. 가루들이 하나씩 둘씩 합쳐지더니 어느새 말랑말랑한 덩어리로 완벽한 변신을 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아가의 엉덩이처럼 만질수록 기분 좋고 동그란 반죽을 조심스럽게 먹기 좋은 크기로 떼어서 넣었다. 들어가기가 무섭게 뜨겁다고 아우성을 지르며 위로 올라온 수제비들이 빨리 꺼내달라고 구조 신호를 보냈지만, 못 본 척 계속 떼어 넣었더니 어느새 얌전해져서는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군침이 돌 정도로 맛있게 익어 갔다. 양념을 하고 참기름을 한 방울 ‘톡’ 떨어뜨렸더니 집 안 가득 퍼지는 수제비의 유혹이 식구들을 식탁으로 불러 모았다. 예쁜 그릇에 담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더니 쫄깃함과 함께 그리움 한 덩이가 쑥 하고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가슴에 짜르르 퍼졌다.

 내가 끓인 수제비를 J와 함께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끝나지 않은 영화처럼 필름 속에 남아 아직도 되감기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그녀. 그녀가 울며 뛰어가던 뒷모습에 뿌려지던 비의 조각들이 아직도 여기저기 박혀서 쉽게 빠지지를 않고 있다.

 J는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에게 편지라는 것을 받게 해 준 소녀였다. 쌍꺼풀진 커다란 눈에 보조개가 예뻤는데, 웃을 때 보이는 덧니가 무척이나 매력적인 말수가 적은 학생이었다. 나와 친구가 되고 싶다는 내용을 적은 편지를 책상 서랍에서 발견한 날 아침에 그녀가 나와 같은 반이고 제일 앞에 앉아있다는 것을 알 정도였으니, 얼마나 조용하고 말이 없었는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덜렁거리고 조심성이 없고 시끄럽고 산만하기까지 한 천방지축 소문난 말괄량이와, 얌전하고 예쁘고 공부 잘하고 모범생인 J와의 어울리지 않는 만남은 그렇게 한통의 편지로 시작되었다.

 학교에서 입이 아프도록 이야기하고도 아직도 할 이야기가 남았느냐는 엄마의 잔소리를 등에 업고 몇 시간씩 수화기에 매달려 수다를 떨고, 쉬는 시간이면 매점에 달려가 빵이며 우유를 볼이 미어지도록 먹으며 웃고, 가끔은 비 내리는 학교 운동장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니기도 했다. 우정이 무언지를 조금씩 알아가며 사춘기의 여름을 우리는 뜨겁고 강하게 맞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적어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여름의 문턱에 들어선 날씨가 방학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소녀들을 지치게 하고, 그나마 한대 달려 있는 교실 선풍기마저 고장 내고 말았던 토요일 오후였다.

 “수정아 오늘 우리 집에 갈래?”

 “너희 집! 그러고 보니 우리 집은 많이 갔는데 너희 집은 한 번도 안 갔구나. 그래 오늘 가자.”

 그때까지만 해도 J의 집도 그냥 나와 비슷하게 살겠지 생각하며 버스에 올랐다. 10분, 20분, ……, 40분, …… 한 시간이 넘게 차 안에 있었나 보다. 도심 속 빌딩을 벗어난 풍경이 들판을 지나고 공장과 바다를 지나 이제는 길마저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로 바뀌어도 그녀는 내릴 생각을 안 했다. 버스 안에는 J와 나, 운전기사 아저씨 그리고 먼지 풀풀 날리는 더운 바람만이 목이 쉬어 거르릉거리며 돌아다닐 뿐이었다.

 종착역. 텅 빈 허허벌판에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철거가 시작된 동네에 남아 있는 집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고, 담벼락마다 붉게 ‘철거 반대, 생존권 보장’이라는 글씨가 아픈 눈물을 흘리며 달라붙어 있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까 염려스러운 좁은 길을 J의 발자국만을 따라 걸었다. 골목을 돌아 불어나오던 끈적거리는 바람이 온몸에 달라붙어 짜증을 토해냈고, 꼬불꼬불한 길을 곡예 하듯 빠져나가는 먼지들은 귀찮다는 듯 풀썩거리며 낯선 이방인의 침입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런 동네도 사람이 사는 구나!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S자의 하늘은 삶에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힘겨운 한숨을 쉬어 대더니, 기어이 꺼이꺼이 울음을 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피할 방법도 없이 고스란히 하늘의 울음을 맞으며 그녀의 집으로 뛰기 시작했다. 땅에 떨어진 비의 파편들이 신발위로 기어 올라오며 질척거렸다.

 “수정아 비 냄새를 맡아본 적 있니?”

 “아니.”

 “비린내 나지 않니? 먼지와 섞인 비가 내뿜는 냄새야. 아스팔트랑은 전혀 다른 향이야. 내가 사는 동네에서만 맡을 수 있는 비린내야.”

 J는 뒤를 돌아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제일 꼭대기에 자리한 집은 손가락으로 밀면 금방이라도 쓰러져 버릴 듯 위태로웠다. 수건을 내게 던져주고는 젖은 몸을 닦을 새도 없이 문도 제대로 달려있지 않은 부엌으로 들어간 그녀는 한참 후 수제비 두 그릇과 김치 한 사발이 놓인, 한쪽 다리가 부서져 테이프를 발라 놓은 밥상을 들고 들어 왔다. 이마에 맺힌 땀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배고프니 빨리 먹으라며 수저를 건네주었다. 순간 나는 영악하게도 우정과 현실 사이를 머릿속으로 저울질 하며 갈등했다. 밀가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뜨는 둥 마는 둥 그냥 시늉만 했고, 그대로 그릇 속에서 퉁퉁 불어버린 수제비는 우리의 앞날을 예견이라도 하듯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J의 집에 다녀온 후로 우습게도 나는 의식적으로 조금씩 사이를 두고 우정을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며 거리를 두었고, 어떤 날은 매몰찬 말과 행동으로 가슴에 맺히는 서러운 눈물도 안겨 주었다.

 “그냥 싫어졌다고 말해. 나도 너 싫어졌어. 안녕.”

 그녀의 입에서 원망스러운 작별의 말들이 쏟아져 나오며 어둠 속으로 뛰어가던 뒷모습이 내가 본 마지막이었다. 정말 그게 끝인 줄 알았다면 달려가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었을 텐데. 빗속으로 사라진 내 우정은 방학이 지나고 학교에 나와 보니 찾을 수가 없었다. 불량스러운 아이들과 가출했다는 소식은 학교에도 적잖은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의 갑작스러운 가출은 원인도 이유도 모른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 지워져 갔다. 그러나 나는 수많은 죄책감과 후회로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리며 그녀를 기다렸다. 졸업식을 할 때까지 J는 나에게 용서를 빌 단 한 번의 기회도 주지 않았고, 앨범에서도 예쁜 얼굴을 보지 못했다. 끝내 나타나지 않은 그녀 J.

 평생 짐처럼 남아 있는 사춘기의 아픈 기억을 더 슬프게 한 만남은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후였다. 회사의 회식이 있어 저녁을 먹고 2차로 노래주점에 가게 되었다. 그 자리에 흥을 돋우기 위해 들어온 아가씨들 틈에서 거짓말처럼 다시 그녀를 만났다. 뭐라 말을 해야 할까! 만나면 할 말이 얼마나 많았는데 우리는 서로 쳐다만 볼 뿐 아무것도 하지를 못했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정신을 차려보니 J가 없었다. 따라나가 봤지만 어디로 숨어 버렸는지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몇 번이나 다시 그 가게를 찾아갔지만 모른다는 대답만을 여기저기 달고 지친 걸음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미안했다는 한마디는  해 보지도 못하고 나는 그녀를 또 잃어버렸다. 그것이 J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난 세 번째 만남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나에게 비의 비린내를 가르쳐 주고, 수제비를 끓여 주었던 그녀를 만난다면 꼭 손수 수제비를 끓여 주고 싶다. 그때는 맛있게 먹지 못했지만, 지금은 한 그릇 뚝딱 비우고 한 그릇 더 달라고 할 수 있는데 어디에서 이 비를 보고 있는 걸까. 혹 나를 생각하며 J도 수제비를 먹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의 인생도 수제비처럼 먼저 세상에 뛰어드나 나중에 뛰어드나 결국은 다 함께 떠져 삶이라는 그릇에 담겨진다. 좀 더 앞섰다고 자랑할 필요도 없고, 뒤쳐졌다고 주저앉을 필요도 없다. 결국은 앞섬도 뒤쳐짐도 없는 똑같은 삶일 뿐이다. 그녀는 나보다 먼저 세상의 힘겨움을 경험한 빨리 던져진 수제비였다. 이제는 함께 맛있게 끓는 일만 남았다. 다시 만나게 되면 상처 난 가슴을  끌어안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내 기억 속에 언제나 살아있었다고…….

 자리에서 일어나 수제비 한 그릇 떠서 옆에 놓았다. 금방이라도 그녀가 문을 열고 달려와 ‘와! 맛있다’ 할 것만 같아 자꾸만 눈이 비 비린내 가득한 마당으로 그리움을 담고 가고 있었다. 오늘따라 수제비 맛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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