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삶의 눈높이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의 수다는 시간이 깊을수록 정을 더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과 만나 부딪히며 각자의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여고 친구들. 얼마 전부터 연락이 닿아 만나기 시작했는데 한 달에 한 번의 모임은 새록새록 재미를 더해 가며 우정을 이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참 수진아, 너 이사 간다더니 살 집은 구했니?”
“아니. 이사는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아. 신랑이 다른 일을 새로 시작하는 바람에. 우리 집은 화장실이 좁아서 이제는 화장실이 넓은 집에서 살고 싶었는데…….”
수진이의 입에서 시작된 말이 삶의 큰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데는 불과 몇 분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화장실이 집 안에 있는데서 살아 보고 싶다했고, 옆의 친구는 부부 욕실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 옆의 친구는 화장실이 베란다 쪽에 있는 데서 살고 싶다며 웃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작은 불꽃이 터지며 눈앞이 환해졌다. 같은 하늘, 같은 땅에서 숨을 쉬고 살아가지만 바라보는 눈높이에 따라서 화장실이라는 공간 하나도 이렇게 많은 차이가 날수 있구나. 고개가 끄떡여 지며 다시 한번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저마다의 생각으로 인생의 잣대를 잰다. 그러기에 성공한 삶을 이야기할 때 많은 돈을, 때로는 명예를, 때로는 권력을 내세우며 각자의 생각을 말한다. 난 성공의 으뜸은 마음이 편한 것이라 믿는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진 부자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만인이 우러러보는 명예를 가진 이도 마음이 불편하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것은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은 것과 같을 것이다. 사는 게 조금은 힘들고 가난해도 죽을 때까지 마음 편하고 행복하게 살수 있다면 그게 바로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한다.
아주 친하게 지내는 이웃 분이 집에 놀러 와서는 옆집이 이사를 38평으로 간다며 한숨을 쉰 적이 있었다. 그 집 남편이 돈을 잘 번다며 자신의 신랑도 돈이나 잘 벌었으면 좋겠다고, 자신은 너무 불행하다 넋두리를 했다. 지금 가장 문제가 뭐냐고 물었더니 돈이 없는 것이라고 대답을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살고 있는 33평 아파트를 팔고 28평으로 이사를 하고 남은 돈을 통장에 넣어두라고 했다. 그러면 행복할 것이 아니냐고.
그 분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어쩌면 그리 태평스럽게 이야기 하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욕심의 끝은 어디일까? 아니, 인간이 부릴 수 있는 욕심의 한계는 없는 걸까? 수백억대의 재산이 있다고 자랑을 하는 재력가들이 그 돈을 과연 다 쓰고 죽을까? 은행에 보관시켜 놓고 통장 들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닌가. 쓸 수 없는 돈은 돈이 아니다. 물론 내 생각이 다 맞다고 소리를 높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돈과 행복이 비례라 생각하는 어리석음은 이제 바뀔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움에서 나오는 말이다.
가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너는 사람이니? 인간이니?’ 하고 말이다. 같은 말이 아니냐고 반문을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엄연히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말 그대로 사람 ‘인(人)’ 자에 사이 ‘간(間)’ 자. 사람과 동물의 중간에 속해있고, 사람은 올바른 생각과 경우와 이치를 가진 집합체라고. 우리가 나쁜 짓을 저지르면 ‘에라이, 인간아’ 라고 하고, 기분이 좋거나 즐거운 일에는 ‘예끼, 이 사람아’ 라고 하는 이치일 테지. 작은 차이이지만 생활 속에서는 큰 의미가 될 때가 있다. 인간이 될까, 사람이 될까! 인간과 사람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깊은 고민에 빠져 존재가치를 느껴 본 기억이 났다.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깨달음들이 하나씩 모여 지혜의 열매가 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밑거름이 되어 준다. 오늘도 그런 날 이었다.
화장실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발견한 삶의 눈높이는 물결이 일지 않는 잔잔한 호수처럼 가슴속에 머물다 문득문득 작은 돌들을 던질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눈높이를 맞출 것이 아니라 세상과 자연과 인생과도 적절한 높이를 맞출 줄 아는 현명함이 필요한 때이다. 아직까지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가야 할 날들이 많기에. 그리고 살아볼 만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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