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리운 아버지께
따스한 봄 햇살을 느끼고 싶어 창문을 열었는데 성큼 들어온 바람 녀석이 여름의 뜨거움을 데리고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며 자리를 잡네요. 구석에 숨어 있던 놀란 먼지들이 창문을 넘어 도망을 가는데, 짓궂은 녀석은 한 바퀴 휘돌더니 아버지의 사진 위에서 재주넘기를 하며 제 눈을 머물게 합니다.
아버지. 어느 유행가의 제목처럼 부르면 눈물부터 나는 이름이 되어 가슴 한쪽을 전세 내어 사신 지 벌써 10년이 흘렀네요. 아직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는데 그리움과 죄스러움이 발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와 목에 커다란 덩어리를 만들고 눈을 시리게 합니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부모라는 단어 앞에 서면 한없이 초라해지고 약해져 목이 메어 오고 눈물이 난다고 하지만, 저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말을 다 써서 표현을 해도 부모라는 커다란 화상이 가슴에 남아 지워지지 않을 듯합니다.
아버지. 당신의 나이 마흔다섯, 엄마의 나이 마흔에 얻은 6남매의 막내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막내가 얼마나 큰 상처와 아픔을 보따리 보따리 드렸으면 세상과의 인연을 그리 쉽게 끊으셨을까요. 제가 지금처럼만 그때 철이 들었더라면 당신의 가슴을 철사 줄로 꽁꽁 묶어 굵은 화살을 쉼 없이 날리는 죄는 짓지 않았을 텐데…….
후회라는 것도 당신이 존재하고 계셔야 의미가 있는 거지 말뿐인 후회의 눈물이 이제는 정말 싫어지고 자신이 미워집니다.
아버지, 생각나세요? 술 드시고 오시는 날은 항상 바지 주머니에 오징어 다리며 사탕을 넣어 와 잠든 머리맡에 놓아주시던 거요. 수염 난 뺨을 부비시며 ‘어이구 내 새끼’하실 때 풍겨 나던 술 냄새가 가끔 추억으로 다가와 어깨를 두드립니다. 사실 저 잠든 척하고 있었어요. 당신의 품이 너무 푸근하고 따스해 오래오래 안겨 있고 싶어서 잠든 척 했던 거예요. 제가 자식 낳아 키워보니 자식을 품에 안을 때 어떤 마음인지 조금 알아졌습니다. 그래서 더 보고 싶고 그리운 가 봅니다.
사춘기를 겪으며 나이 많은 아버지를 부끄러워해 학교도 못 오게 하고, 입학식 졸업식에도 못 오게 심술을 부렸을 때 왜 야단치지 않으셨어요? 몽둥이로 때려서라도 가르쳐 주시지 왜 안 그러셨어요?
말없이 중학교 졸업식 날 나무 뒤에 숨어 물끄러미 지켜보던 애처로운 눈과 마주쳤을 때 가슴에 바람이 불었습니다. 아버지의 가슴에는 비가 내렸을 테지요.
가끔씩 꿈에서 그날을 만납니다. 달려가서 손을 잡으려고 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암흑 속에서 보이지 않고 발만 동동 구르다 깹니다. 일어나보면 베게까지 젖을 정도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저를 봅니다. 기억 속에서는 아직도 시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나 봐요. 좀 더 애교스럽고 귀엽고 상냥한 딸이 되어 드리지 못한 게 자꾸 걸려서 늪처럼 헤어나지를 못하니 이것도 병인가 봅니다.
아버지, 결혼을 하겠다고 가족이 아닌 다른 남자를 처음으로 집에 데리고 왔던 날이었죠. 그렇게 화를 내시는 모습은 처음 보았습니다.
“결혼은 안 돼!” 수분기 없이 갈라진 음성이 숨소리마저 정지한 방 안에 울려 퍼지며 처음으로 제가 하는 일에 반대를 하셨습니다. 처음, 처음, 처음이 겹쳐진 겨울의 오후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고, 아버지와 저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지요. 그렇게 쉽게 인연의 끈을 놓는 게 아니었는데, 어리석은 생각은 돌이킬 수 없는 길 위에 사랑을 놓고 돌아갈 수 없는 길 위에 당신을 버려두게 했습니다.
훌쩍 떠나와 버린 빈자리가 얼마나 컸을지 겨울 들판을 스치는 바람도 당신의 스산한 가슴보다는 황량하지 않았을 텐데……. 저는 몰랐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에 빠져 지내느라 재만 남아 작은 바람에도 날아가 흔적도 없어져 버린 가슴은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면 대문 밖에 나가 밤이 새도록 기다리는 애가 탐도, 명절날이나 생일날, 제사 등 집안의 크고 작은 행사에 행여나 전화가 올까 안절부절못하는 눈물겨움도, 어디서 떨고 있을지 모르는데 보일러를 틀수 없다 하시며 냉방에서 주무시다 감기에 걸려 고생하던 안타까움도 내 삶이 아니었기에 저만치 밀어내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야 알았습니다. 당신의 삶이 위태롭게 부여잡고 있던 마지막 생명의 호흡이 바로 저였다는 걸 말입니다. 숨쉬는 이유가 사라졌을 때 다가온 허허로움과 공허함이 온몸에 암세포처럼 퍼져 끝내는 심장에 죽음의 자리를 내주고야 만 것을…….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부터 가쁜 숨을 내쉬며 흐린 눈으로 허공에 손을 내저으며 한 번만 보고 싶다고 마지막 소원을 토해내고 있을 때, 저는 사랑 속에서 혼자 즐거워하며 기뻤습니다. 제 자신이 미워서 미친년처럼 허허 웃으며 울기도 했지만,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기에 가슴만 미어집니다. 당신의 자리가 이렇게 크고 아플 줄 알았더라면 매몰차게 뒤돌아서서 사랑을 향해 뛰어가는 바보는 안 되었으련만. 너무 너무 아프고 후회가 됩니다. 삶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로워진 지금은 편하신지요?
아버지, 딸아이의 손을 잡고 시장에 나갔더니 봄나물도 많고 과일들도 색색으로 치장을 하고 사 가 달라고 노래를 부르더군요. 그 속에서 찐쌀을 보았습니다. 순간 울컥하고 그리움 한 덩이가 목구멍을 타고 머릿속으로 뜀박질을 했습니다. 어렸을 때 찐쌀을 유난히 좋아했던 막내딸이 ‘주세요’ 하면 입에 찐쌀을 꼭꼭 씹어서 제 입에 넣어주시곤 하셨지요. 또 달라고 떼를 쓰면 빙그레 웃으시며 씹어서 주셨는데, 정작 당신이 이가 안 좋아져서 찐쌀을 드시고 싶어도 먹지 못했을 때 저는 왜 그렇게 해드리지 못했는지…….
언제쯤이면 제게 주신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될까요. 그리움의 깊이도, 추억의 깊이도 눈물 속에 떠오르는 당신의 모습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봉투에 찐쌀을 사서 돌아오는데 어느새 따라온 바람이 옷소매를 당기며 장난을 칩니다. 예전에 제가 매달려 장난을 친 것처럼요.
보고 싶습니다. 이 말 한 마디에 마음을 담아봅니다. 열심히 살고 있어요. 이 말 한 마디에 그리움을 전합니다. 걱정 안 하시게 잘할게요. 이 말 한 마디에 추억을 묻습니다.
살아계실 때 한 번도 해드리지 못했던 말 지금에야 합니다.
아버지 사랑 합니다. 이 한 마디에 저는 영원히 당신의 딸로 세상을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