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결혼할때는 이것저것 따져 보지도 않고 두살차이 나는 신랑과 친구처럼 편하게 얘기
가 통해서 나이가 차고 부모님도 했으면 해서 그렇게 시작한 결혼생활...
시댁은 그리 넉넉치는 않았지만 평범함 속의 가정의 따뜻함이 있어서 좋아보였다.
처음부터 따로살고 맞벌이하며 열심히 벌고 재미있게 살려고 했었는데 양가의 반대에 부딪
혀 결국 시댁으로 들어가 살았다. 아들하나에 첫며느리를 얻어서 인지 조금은 어색할정도로
때론 오히려 부담스러울 정도로 잘 대해주려 하는 시어머니....시할머니까지 계셔서 참 많이
이래저래 불편했던 신혼생활....
마을버스도 30분정도에 한대이고 처음에는 정말 집밖으로 안나가는 것이 오히려 편했을 정
도였고 점점 스트레스는 쌓여갔었다.
뭐라도 해보겠다고 무작정 나서서 학습지 교사 교육을 마친 어느날...
자동차가 없으면 일하기도 힘들다는 소리에 맥빠져서 빽구두를 신고 집으로 터벅터벅 들어
왔던 어느날, 그냥 내팽개치듯 아무말없이 출근을 하지 않았었다.
임신을 하고 입덧까지 심했고, 점점 시부모님 얼굴 대하기도 편치 않았던 시간들,
처음에는 며느리가 아니고 딸이라고 시아버지는 그러더만 불편하기만 했던 시댁에서 결혼후
9개월쯤되서 무작정 나오게 되었다.
월세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참으로 난감했고 친정아버지한테 상의를 했더니 월세는 안
된다고 그러셨다. 이래저래 속썩다 결국 친정 땅에다 작은 조립식 집을 짓고 살았다.
조립식을 짓고 한달 지내다가 바로 우리 아이를 낳았다.
남편과는 대화가 되니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어떻게든 극복이 되었던 것 같은데, 시부모님이
나 시집식구들은 그냥 여전히 시댁일 뿐이다.
처음에는 참 많이 노력하고 애썼는데 결국 얻은 한가지는 며느리는 절대로 딸이 될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시어머니와는 많이 어려운 것 같다. 어렵다기 보다는 이제는 어떤 상황에
서 무시해 버릴수 밖에 없는 경우가 생긴다.
물론 시할머니가 계시고 시고모님들 그리고 남편의 누님이 한분 계시지만 그분들보다는 오
히려 시어머니가 불편하다.
꼭 자기 할말 다하고 당신 아들을 그저 장식품정도로 아는 것같아 불쾌할 때가 많다.
시부모님 모두 한번도 어떤 문제든 우리와 상의를 한적이 없었다.
그리고 자식들에 관한한 무조건 가르치는 식이고...그것이 더없이 괴롭고 힘들게 한것같다.
지금은 이래저래 따로 산지 꽤 되어 오히려 무덤덤하지만 여전히 지난 일이나 말들이 떠오르
면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부터는 형식적인 인사나 말로 포장되어 대하는 모습을 발
견한다. 더없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재로서는 남편이나 나나 아이키우며 살아야 하기에 어
쩔 도리가 없다. 그냥저냥 "예예" 하며 통화하고 얼굴대하면 또 그렇게 맞춰진 행동들을 하
고... 모든 것을 내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걸까..
시댁에서 전화가 오면 또 무슨일인가 부터 생각이 떠오른다.
그냥 상투적인 인사...그리고 손주를 너무 이뻐한다는 그 한가지에 아이에게 전화를 건네며
그렇게 살고있다.
하긴 나한테는 친정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도 셋이나 있는데.........그것이 나를 있게하는 원
동력이며 당당하게 해주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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