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에 아랫글에도 다짐했듯이,신용이 회복이 된후 다시 신용을 쌓기위해
이런 저런 일을 짬짬이 하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올 4월쯤이 되어 내 명의
의 카드도 만들게 되어 더없이 기뻤다. 아이 아빠도 신용에 이상이 된지 몇해가
된지라 내 속은 말할수 없이 탔었다.
울 아들도 벌써 5살이 되어 씩씩하게 훌쩍 컸다.
생활도 좀 나아져 울 세식구는 작년 여름 24평 국민임대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시댁에 시할머니가 계셔서 전에 잠깐 모시고 산 적도 있고,어려운 가운데 잠시
다시 살게되어 시아버지가 계약을 해서 남편이 세대주로 해서 무사히 들어오게
되었다.
생활전선은 여전히 치열하다. 눈을 뜨면 하루 하루 정신을 똑똑히 차리지 않으면
코베갈 세상임이 틀림없다.
세식구 살기엔 덩그러니 넓고 해서 지난해 가을 이사오자마자 옆집 아이를 돌봐
주기도 했다. 물론 보육교사 1급 자격증이 있고해서 내겐 가능한 일이지만 내새
끼 돌보며 남의 애까지 돌본다는 건 나에겐 또다른 숙제인 듯했다.
아이를 임신한 6개월부터 팔이 저린후 그후로도 아이를 키우며 더욱 저리고 아파
왔다. 신경이 더욱 날카로와지는 자신을 자제하면서 다시 임신전 내 모습을 찾기
위해 애쓰고 또 애썼으니, 뭐든 해내리라 독하게 마음먹었기에 할수 있었다.
그러기에 내 아이에게도 냉정해 질수 밖에 없었고, 아이와의 합일점을 찾
으며 아이로 하여금 스스로 터득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
작년 여름에 갑자기 친정쪽에 사건이 터졌고, 나 역시 연류되어 괴롭고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야 했다. 궁금해하는 분들을 위해 살짝 보인다면, 내겐 이복형제들이
있다. 그 중 막내이복형제가 아버지의 땅을 놓고 치밀하게 부모한테 못할짓을 저
질러 버린 것이다.
시간이 조금흐르고 나는 소설이나 다른 작품으로 가족사를 적어 나갈 계획이다.
뭐라도 해보고 열심히 살려하면 꼭 마가 끼는 인생, 그래서 호사다마라 하지 않
았던가. 나는 하루하루 배우며 또 커가고 있다. 때론 내 자신이 도를 닦게되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기도...
이복형제와 법정투쟁을 했던 지난 8개월,지금은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에게 시달
리며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에 나또한 마음이 여전히 분주하다.
짬짬이 아이돌보기를 시도하면서 시간을 활용하고 작은 푼돈이라도 모으려는
내 생활은 변함없이 거창하고 매일 계획을 써내려간다.
언젠가는 내게도 좋은 날이 오겠지.
작은 아파트 1층을 얻어서라도 우선 어린이집을 시작하고 싶은것이 지금 계획인
데,어수선한 가운데 잠시 주춤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저질러 보는데, 돌다리도 다시 두들겨보는 맘으로 한 번 생각
할걸 여러번 생각하게 된다.
2000년도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고, 그래서 자격증도 2개를 가지고 있다.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과 보육교사 1급 자격증.
물론 그당시 졸업할때쯤 딱히 할수 있는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같이 졸업한 학생들도 역시 몇명만 복지관에 근무했고, 또다른 길을 걷고 있다.
나는 늘 자격증을 썩히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기회가 오면 활용하려고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다.
작은 어린이집이라도 시작하게 되면, 나는 또다시 작가가 되기위해 도전할 것이
다.사복과에 다니면서 3학때 Y대 교육원에서 tv PD선생님과 공부하며 드라마 작
가반 수료증까지 받았었는데...그 당시 우리집이 홍수피해를 입어 잠시 접어두었
었다. 그때부터 나는 사회복지와 작가의 꿈을 동시에 이루기위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는 작가활동을 하며 사업을 할 것이다.
꼭 하고 싶은 사업, 해서 될 사업을 할 것이고, 차후에 다시 밝히기로 한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내일을 향해 살아갈 뿐이니 오늘의 어떤 시련도 나는 뛰어넘어야 할 과제일 뿐이
다. 인생은 마라톤이라 했던가. 길게 매진해 나갈것이다. 장애물은 뛰어넘고 넘
어지면 또 일어나고..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외친다. 내일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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