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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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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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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자에게 영원한 우울증이란 없다.


BY 같은 자리에 2007-05-26

준비된 자에게 영원한 우울증이란 없다.

한 의학교수 선생님이 TV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서

우울증은 여자의 일생동안 찾아오며, 여자는 평생

우울증의 반복에 시달리며 살지도 모른다고 했다.

우울감은 어린아이에게도 찾아오지만 아이들은 부모

의 영향력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것 같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최초의 좌절과 어둠의 긴 터널은 10

대 사춘기 시절이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충동적이

고 민감했는지, 나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릴 정도

로 내게는 힘들고 고독한 시간들이었다.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 나는 심한 두통에 시달리며

친구들과도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외모에도 콤플렉

스를 느끼며 매사에 자신을 잃고 나태해지기 시작했

다. 고등학교는 그럭저럭 근방에서 제일 좋은 데에

들어갔다지만, 공부의 흥미를 잃은 나는 겉돌기 시

작했다.

틈만 나면 연습장에 낙서를 하고 인생의 허무를 느

끼며 마음의 요동을 억누르지 못한 채 감상에 젖어

있었다. 점점 친구들과 대화하기 싫어지고, 쉬는 시

간에는 혼자 나무그늘 밑에 앉아서 멍하니 하늘만

올려봤던 고등학교 2학년 때, 한학기가 끝나자마자

부모님께 구구절절 눈물어린 편지를 십여 장 이상

써서 눈물을 흘리게 했고, 학생지도 선생님을 설득

하는데 성공하여 자퇴를 하고 말았다. 말은 검정고

시하면 등급이 적용 안 되니 좋은 대학가겠다는 것

이었다. 검정고시는 기준 점수만 넘으면 고졸합격증

을 딸 수 있고, 혼자 있고 싶은 구실을 삼아 도서관

에 가서 온종일 벽보고 멍하니 앉아서 시간만 때우

기 일쑤였다. 그렇게 황금 같은 시간은 목적과 방향

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었다.

하루하루 한숨과 답답함을 느끼며 자기만의 세계로

벽을 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일류대학 열풍이라

서 부모도 친구도 사회도 싫어진 나는 도피 아닌 도

피생활 속에 심신이 지쳐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자살도 유행인지 어느새 입에 달고 살았으며, 불신

과 부정적인 생각들로 꽉 차 있었다. 부모님을 보면

미안함과 괴로움에 시달리고, 죽으려니 무섭고 두려

웠다. 죽고 싶은 만큼 다시 살기로 마음먹었을 땐,

이미 주위에 친구도 그 어느 누구도 없었고, 아무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배신감을 느끼며 고통스

러워하기 시작했다.

불안과 초조함 속에 내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절대자뿐이었다.

나는 간절히 목메어 매달리며 부르짖었다. 춥고 허

기진 마음으로 다시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만 했고,

고통과 눈물 속에 후회도 해보고 회개하기 시작했

다.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다시 삶에 대한

강한 의욕을 느꼈다. 다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지

고 만나면서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물지 않은 마음의 상처들이 다시 나를 괴

롭히기 시작했다. 내 생각과 주관이 바르게 정립이

안 된 상태여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생각을 의

식했다. 교회 청년부 지도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차차 남들이 내게 다가와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

았으며, 여러 형제자매들과 어울리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친교를 나누며 서로의 의견을 말하고 중보기도

하면서 하나 되는 체험을 하였다. 모든 것이 아름답

게 보이고 내 마음은 기쁨이 꽉 차고 남을 대할 때

도 있는 그대로 여유를 가지고 말하게 되었다.

성격이 밝고 활달하다는 칭찬을 들으면서 나도 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고, 사람 만나는 것이 즐겁

고 재미있는 일이 되었다. 가끔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에는 성경말씀을 암기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었

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두 구

절은 나의 생각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만들어주

는 지표가 되어 주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한 구

절을 열 번씩 외치며 하루를 시작했다. 스무 살이

넘어서 나는 1년쯤 보험회사 세일즈 판매활동을 했

다. 처음에는 사회생활을 하고 싶어서 갔는데, 세일

즈에 대한 또 다른 매력에 푹 빠졌다. 일 자체가 즐

겁고 재미있었고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때

만 해도 보험 아줌마들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안 좋

았는데, 나름대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남들의

말에 구애받지 않고 소신껏 인생 경험을 쌓을 수 있

는 기회가 되었다. 아무튼 나에겐 사회에 첫출발이

라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많은 경험을 통해 폭넓

은 대인관계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23세가 되어

대학생활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같은 또래들은 이미 졸업을 했거나 졸업 때가 되어

있었다. 갑자기 결정한 일이라 그해에 얼마 남지 않

은 6개월 동안 수능공부를 하고 다음해에 사회복지

학과에 입학하였다.

오랫동안 공부에 손을 놓은지라 꽤 좋은 대학은 아

니더라도 서울 안에 있는 학교에만 가도 감사했다.

또한 같은 또래는 아니지만 동생뻘 되는 학우들과의

만남도 감사했다.

나에게 대학생활은 새로운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복

지학과라 봉사활동을 접할 기회가 많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서 인생의 소중함과 내 삶을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또한 심리학이나 인간행동, 사회학 분야를 접할 때

는 더욱 재미를 느꼈다.

강의가 끝난 후에도 학우들과 서클 활동을 통해 방

학 때는 시골에 가서 농번기 때에 농사일도 도와주

며 땀도 흘렸고, MT가서 조별로 장기를 준비하고 음

식도 만들면서 하나가 되는 즐거움 속에 제 2의 황

금기 같은 생활을 했다. 3학년 때는 방학 때에 사회

복지 실습이 있어서 복지관과 어린이집을 방문하여

지역복지와 아동복지를 체험했고, 폭넓은 경험을 통

해 나의 생각에도 변화가 왔다. 그리고 또 찬양 서

클 활동을 하면서 결혼 축가도 다녔고, 연습하면서

서로 챙겨주고 힘들 때 서로 위로하며 그 가운데 소

속감과 자아 정체성이 확립되었다. 사춘기 시절에

허무를 생각하며 방관했던 자아는 또 다른 나를 보

면서 자기 존중감과 예리한 관찰력에서 오는 날카로

운 판단력과 분별력을 갖게 되었다. 스물여덟 적지

않은 나이에 졸업을 하고 동생 학우들은 시간의 흐

름대로 하나씩 취업을 하였으나, 나는 그다지 만족

을 못했다.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자격증과 내가 배

운 것을 충분히 쓸 만한 현실이 아니었고, 대학원에

갈까 고심을 하며 이것저것 일을 해보았다.

책상에서 배울 때하고는 또 다른 냉혹한 현실을 직

시하며, 여성의 취업난과 우리나라 복지 실정의 어

려움을 느끼면서 앞으로 우리나라의 장래를 위해 개

척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과 동시에 사회복지사나 보

육교사의 임금에 있어서도 일선에서 뛰는 노력과 땀

에 비해 턱없이 낮은 것을 보았고, 결국 전공을 살

리지 못하고 정착하지 못한 채, 20대 시절은 막을

내리고 있었다. 30세 때에 내가 선택한 것은 결혼이

었다. 결혼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감 보다는 세월의

흐름에 감사하고 고개 숙이게 되며, 결혼생활과 현

재의 주어진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신혼 때는 어른들에게 무조건 열심히 잘하려고 애썼

다. 그런 나를 알아주시는 어른들 덕에 잘 적응해

나갔으며, 결혼이라는 것이 두 사람과의 관계가 아

닌 폭넓은 관계로 발전된다는 것을 알았다.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려 하는 중에 임신을 하게 되었고,

우선 육아에 비중을 두어 최선을 다하며, 개인적으

로는 잠시 휴식과 충전을 하는 시간으로 생각했었

다. 임신에 대한 계획이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

태라 처음엔 많이 놀라고 당황도 했다. 신체에 변화

가 오고 마음과 생각에도 변화가 많았다. 잘못되는

건 아닌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건지 점

점 생각도 많아지고, 포기하지 않은 나의 꿈에 대해

서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긍정적인 자세로 일관하

려고 마음을 잡으며, 임신과 출산이란 것도 내 역할

이라고 생각을 했다. 병원에 정기검진 받으러 가서

다른 배부른 엄마들을 보면서 동질감을 느끼며 위안

을 받고 안정을 찾았다. 그러면서 책이나 다양한 육

아잡지를 보며 즐겁게 태교를 했다. 점점 배가 불러

오면서 몸이 많이 붓고 얼굴도 변하고 짜증이 나기

도 했지만, 새로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면 기대감도

들었고 매일 기도하면서 씩씩해지기 시작했다.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자 양수부족으로 의사는 수술

을 권했고, 결국 수술대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수

술 당일 아침, 제일 먼저 수술을 하고 병실 침대로

돌아온 한 애기엄마의 통곡소리에 나는 겁이 나고

두려웠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고 마치 소가 도살장

에 끌려가듯 마음속으로 싫다는 말을 외치며 애원하

듯 가족들에게 수술 안한다며 뒤돌아보았지만 간호

원은 수술실 안으로 나를 떠밀었다. 수술대에 올라

가 손이 묶이고 마취한다는 말과 함께 기억은 멈췄

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산소 호흡기를 하고 있

었고, 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

지지 않아 한없이 울기만 했다.

얼마나 목 놓아 울었는지 아파서 울고, 몸이 안 움

직여져서 또 울고, 수술실 밖에 가족들이 안보여 울

고, 병실에 올라와서도 가족들이 없어서 울었으며,

곧 금방 날 낳아주신 엄마가 보여 울기 시작했다.

피할 수 없는 출산의 고통은 나를 낳아주신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나를 키워주신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무조건 감사하고 앞으로 더욱 효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고통 후에 첫 기쁨은 신생아실에

서 처음 아기를 보고 젖을 물릴 때였다.

엄마의 심장 소리를 알아들었는지 젖을 물고 쌔근쌔

근 잠드는 아이의 모습에서 생명의 경외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 출산의 고통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인

지에 대하여 스스로 평가하긴 힘들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는 말을 실감하곤 한다. 한 아이의 엄마라는 생각은

나를 억척스럽고 뭐든지 해낼 수 있는 초능력을 가

진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

어도 왜 그런지를 알정도로 섬세해졌고, 손길이나

마음이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먼저 간다.

어쨌든 한 생명을 열 달 동안 품어서 이 세상에 나

오게 하는 역할을 했으니 얼마나 장한 일인가 스스

로 격려해본다. 출산 후 몸의 회복이 느린 나는 처

음에는 아이를 씻기는 일이 서투르고 밤에 깨서 우

는 아이 달래느라 몸과 마음이 탈진 상태였다. 산후

조리고 뭐고 당장 사람이 잠을 못자서 미쳐 돌아버

릴 것 같았다. 아이 할머니한테 맡길까도 생각했지

만 스스로 육아를 감당해내고 싶었고, 책임회피나

중도포기도 싫었다. 따뜻한 엄마의 손길이 이 아이

의 앞날을 좌우한다는 생각을 항상 가졌기에 모르는

것은 인터넷 지식검색을 해서 배우며 하나씩 헤쳐

나갔다.

여름에 아이를 낳아서 많이 지치고 운동하기도 힘이

들었는데, 아기를 재워두고 비디오테이프를 틀어놓

고 산후체조를 하고 스트레칭을 했다. 산후 조리가

잘되었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늘어가는 아기의 재

롱과 옹알이를 보면서 웃고, 성큼성큼 크는 재미에

어느덧 한돌 두 돌이 지나 3살(29개월)이 되었다.

어느덧 내게도 아이 키우는 요령이 생겼고, 아이의

일생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시기라 여기고 긴장을

늦추지 않고 아이의 생활태도와 기초적인 사회적응

훈련을 도와주려고 한다. 인터넷의 무한한 정보에

귀 기울이면서 여러 프로그램을 활용해 아이의 집중

력을 키워주는데 도움을 주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아이 스스로 터득할 때까지 조급하지 않게 기다려

주는 것이 엄마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다.

늘 아이보다 앞서지 말고 아이가 잘못 갈 때 붙들어

주고 도와주면서 뒤에서 밀어주고 지켜보는 엄마가

되기 위해 기도하면서 마음을 다진다.

또한 집안일이라는 게 해도 표가 안나고 끝이 없어

짜증이 나고 그러다보면 부부싸움 할 때가 많다. 남

편은 설거지와 청소를 가끔씩 도와주거나, 아이를

봐주기도 한다.

아빠가 아이와 많이 놀아주고 함께 있는 시간을 늘

림으로 아이에게도 아빠에 대한 신뢰와 엄마가 힘들

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요즘은 아이가 알아서 행

동을 하며 보채거나 우는 일이 없다. 남편도 내 편

이 되어주고 모든 면에 있어서 후원해 주려고 노력

하고 있다.

또한 하루에 30분 걷기 운동을 하는 것도 생활의 활

력에 도움을 준다. 지금의 몸무게는 출산 전으로 돌

아갔지만, 긴장이 풀리거나 나태해지면 금방 표 나

는 아줌마 배다.

배에 탄력이 줄어들고 늘어지기도 했지만, 당장 복

근을 키우려는 것보다 늘 나태해지지 않으려고 꾸준

히 자신을 관리하면서 지켜나가려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과 마음의 건강이라고 생각하기 때

문에, 지나치게 외모에 치중하거나 눈에 보이는 것

을 쫒지 않으려 한다. 지금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 나의 정

신과 마음에 큰 도움을 주며 진정한 자신감을 가져

다주는지를 안다.

또한 일기를 매일 쓰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두기

도 하고, 육아생활을 소중히 남겨두어 세월이 흘러

아이에게도 보여주고 같이 웃을 수 있는 추억거리로

만들어두려 한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배려하는 길이 가족 모두가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알기에 조금 귀찮더라도 아이

의 세계에 귀 기울이려고 노력하며, 남편과도 매일

밤에 시간을 정해두고 아이와 손을 잡고 기도하고

부족한 점을 고쳐나가려 하고 있다.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이 모든 삶의 기초 작업이라고 생각하

면서 오늘의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아이가 앞으로 세상을 바로

알고, 세상의 주인으로 당당히 살며, 자신의 소질을

계발해서 그 가운데서 최고의 모습이 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를 생각하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날마다 신기함 속에서 힘이 나며 즐

겁고 재미있는 생활을 할 것이다. 내년에는 열심히

글을 써서 작가데뷔를 해보려고 한다.

어려서부터 글에 소질이 있다고 칭찬도 들었었고,

상도 여러 번 받은 나는 작가에 대한 꿈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사회복지 자격증을 활용해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그 수익금으로 버려진 아이들을 도우며 보

다 가치 있는 삶을 찾으려 한다. 큰 영리목적이 아

닌 서로 돕고 나누며 더불어 사는 모습 속에 인생의

가치가 있음을 아이에게도 배울 수 있게 해줌으로써

아이의 인생 전반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나의 인생의 과정에 있어서 갈등과 혼란의 시기가

있었고, 고독 속에서 몸부림치며 꿈을 찾았던 지난

날들이 있었기에, 오늘도 삶을 사랑하고 포용하고

삶의 주인이 되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친구

가 되어주고 그들이 꿈과 용기를 갖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기도해 본다.

내게 힘든 일이 생길 때면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움

가운데 처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기도하고 내 삶을

감사한다. 또한 지금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던 지난

날들을 떠올리면 지금의 이 순간 또한 소중한 것이

며, 나에게 들려주는 새로운 메시지에 귀를 기울인

다. 다시 힘을 얻고, 그렇게 또 배우며 나의 삶은

배움의 연속이 된다.

나는 기쁠 때나 어려울 때나 항상 감사하는 법을 배

우고 있다.

성경에도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할 것을 당부한

말씀이 있다. 현재의 자신의 모습과 생활에 감사하

며 사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것 같

다. 아직은 내게 살아갈 날들이 많기 때문에, 나는

늘 도전적인 생각으로 변화된 삶을 시도해본다.

삶에 있어서 언제 또 어려움이 찾아올지 모른다. 또

한 평안한 가정에 언제 또 위기가 올지는 모르겠다.

당장에라도 우리 마음에 알 수 없는 어둠의 정체가

나타날지 모른다.

언제 어느 시에 올지는 몰라도 즉각 판단하고 대처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항상 깨어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나의 삶을 포

기하지 않으며, 정면으로 맞서 나갈 것이다. 처음에

는 마음이나 생각에 살며시 다가와서 어떤 감언이설

을 할지도 모르고, 어느 모양을 하고 나타날지 모르

지만, 그때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포기하지 않으며

끝까지 헤쳐 나갈 것이다. 우리를 파멸로도 이끌 수

있는 무섭고도 치명적인 마음의 적, 어둠의 바이러

스 우울증은 빛과 같은 즐겁고 활기찬 생활만으로도

어느 정도 예방이 되고, 찾아온다 해도 겁을 먹거나

두려움의 대상은 더 이상 아니다. 좋은 책을 보면

좋은 생각들이 나의 가슴과 마음에 스며들어 좋은

길로 인도한다고 믿는다. 가끔 한번 씩 빼먹을 때도

있지만, 거의 매일 성경 한 장씩 읽으려 노력한다.

성경은 나에게 수많은 유혹과 갈림길에서 타협하지

않게 해주고, 분별을 주고 지혜를 준다. 또한 묵상

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고 내일을 향한 충전을 한

다. 기도는 마음을 정화시켜주고 담력을 준다.

텔레비전을 볼 때도 교양 프로그램이나 생활의 지혜

를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참 많다.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도 보지만 시사나 교양프로그램, 각종

생활 지식정보 프로그램을 꼭 찾아본다. 이러한 것

들은 살면서 상황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늘 좋은 생각을 가지고 혼란과 잡념의 틈을 주지 않

도록 매일 매일 나를 훈련하는 삶을 선택했고, 오늘

도 나는 그 길을 따른다. 삶속의 정도를 지키고 나

와 가족들을 하나로 생각하여 끊임없이 부지런히 관

리하고 체크해 나가는 것이 운동이나 영양 섭취보다

도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되새겨 본다. 나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

가며, 더불어 남을 대할 때에도 같은 마음으로 베푸

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의 삶을 어둠에서 해방하

고 진정 자유롭게 비상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한

다.  2005년 우울증 극복 체험수기 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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