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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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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과장


BY 박 진 2007-11-23

배달과장

박영애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호칭을 갖게 된다.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붙게 되는 자신의 이름 석자를 비롯해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 아무개의 엄마 등 호칭과 지칭이 생긴다. 또한 신체적 특징이나 성격적 특성을 따서 부르는 별명도 있다.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가져야만 하는 경우도 있으니 우리의 삶 속에서 호칭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이왕 불러줄 호칭이라면 약간 높여서 불러주는 센스도 필요하다.

호칭 중에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배달과장! ’처녀시절 다니던 직장에 드나들던 중국집 배달원의 호칭이다. 누가 처음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직원들 모두가 그를 그렇게 불렀다. 스물 살이 조금 넘었음직한 앳된 청년이었다. 배달과장이란 호칭이 없었다면 마땅한 호칭이 없어 그를 부르기가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총각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도 없어 불편할 판국인데 아주 적절한 호칭이란 생각이 들었다.

배달과장은 겉보기에도 둥글둥글 원만해 서비스업에 잘 어울리는 성격을 가졌었다. 그의 원만한 성격은 자신의 일터에서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가 몸담고 있던 중국집은 음식 맛이 좋은 편이어서 점심시간이면 배달주문이 많았다. 이 사무실 저 사무실에서 전화통이 불이 났다. 그러다보니 면이 불어서 배달되는 경우도 있었다. 배달과장에게 떨어질 핀잔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 때마다 그는 그저 ‘죄송합니다’하는 사과의 말로 일관하며 갖은 구듭을 묵묵히 참아내곤 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과장’이란 말을 듣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어보였다.

그는 우리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었다. 번쩍이는 은색 철가방을 들고 사무실을 들어설 때면 여기저기서 ‘배달과장’을 불러댔다. 우리 동료직원들과 그의 관계는 단순히 음식을 배달하는 사람과 고객의 관계만은 아니었다. 데면데면한 사이에서 한 단계 올라선 인간적인 관계였다. 하루라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직원들의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의 털털한 성격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데 편안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 까탈스럽지 않은 성격에 한국인 특유의 둥글둥글한 얼굴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 ‘붕~’하는 오토바이의 굉음과 함께 나타나는 배달과장. 그 많은 직원들 중에 한 사람도 그가 배달해주는 자장면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우리는 그 집의 단골고객이었다. 중국집이 쉬는 날이 아니면 하루도 결근하는 일이 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는 배달 통을 들고 사무실을 드나들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참으로 직업의식이 투철한 사람이구나!’하고 생각했다. 내가 직장에 근무하던 기간 내내 그의 모습은 내 시야에서 사라질 줄 몰랐다. 그 정도의 끈기라면 어딜 가든, 무슨 일을 하든 잘 해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간 지금 생각해보아도 ‘배달과장’이라는 호칭은 참으로 정감 있고 센스 있는 발상 인 것 같다. 가능한한 모든 호칭은 부르는 사람도 부담 없고 듣는 사람도 기분 좋다면 그것이 최고의 호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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