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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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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부러워 하는 아이들


BY 박 진 2007-07-11

개를 부러워하는 아이들

 

박영애

 

‘짱구는 좋겠다!’

동네아이들이 우리 집에서 키우던 개를 두고 한 말이다. 학교가 파한 후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옮겨 다니느라 마음껏 놀 수 없는 아이들이 매일 빈둥거리며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짱구를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짱구는 까만색의 시추 종으로 매우 유순하고 사람을 잘 따른다. 종종 바깥나들이를 할 때면 짱구는 동네 아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머리털이 길어서 예쁜 리본이 달린 고무줄로 눈 위를 분수처럼 묶어놓으면 그 큰 눈이 드러나서 참 귀여웠다. 거기다가 사람을 좋아해서 처음 보는 사람도 경계함이 없이 꼬리를 흔들며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가끔씩 어린 조카들이 우리 집을 방문할 때면 짱구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밥알을 입에 물고 놀다가

“짱구야, 공 물어와!”

하는 가족들의 말 한 마디면 하던 일을 멈추고 쏜살같이 달려가 공을 물어오곤 했다. 모두 박수를 치며 신기해했고, 사람들 앞에 공을 내려놓고 눈빛이 반짝이며 칭찬받기를 기다린다. 그러면 나는 상으로 애견용 과자를 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짱구는 개 팔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주인에게 재롱떨며 집만 잘 지키면 개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그런 짱구를 바라보며 조카들은 부러움 섞인 한 마디를 잊지 않았다.

“짱구는 좋겠다. 공부도 안하고 학원도 안다녀도 되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막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디 부러워할 것이 없어서 개를 부러워할까?’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웃을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요즘 현실은 아이들이 개를 부러워할 만도 하다.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학교 정규수업외에도 배우는 것이 참으로 많다. 점심은 학교에서 급식을 먹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학교가 파하는 대로 집에다 책가방만 갖다놓고 곧장 학원으로 향한다.

배우는 과목 또한 매우 다양하다. 피아노와 미술은 기본이고 험한 세상에 멀미를 느낀 부모들이 딸들에게까지 호신술을 배우게 한다. 덕분에 태권도, 합기도, 검도 등을 가르치는 도장이 특수를 누리고 있다. 시대 추이를 감안해 논술과 한자도 가르쳐야 하니 한 학생이 서너 군데의 학원을 다니는 것이 보통이다. 더 많이 가르치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배우는 것에 치여서 뛰어노는 것은 뒷전이다. 잠깐의 짬이라도 날 때면 밖에서 신나게 뛰어놀기 보다는 집에서 혼자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전통놀이에 푹 빠져 해지는 줄 몰랐던 나의 어린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우리가 살던 시대에 비하면 요즘 아이들은 공부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럽기 그지없다. 극성스런 엄마들 탓이기도 하고,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옆집 아이가 하면 뒤떨어지기 싫어 시새워서 하게 되니 호황을 누리는 곳은 사설학원이다. 젊은 엄마들은 아예 마음 맞는 아이들을 몇 명씩 묶어서 그룹지도를 받게도 한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아이들은 참으로 바쁘고 힘든 나날을 보낸다.

바람이 매섭게 부는 날 초등학교 저학년 생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가냘픈 손으로 비쩍 거리며 보조가방을 들고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요즘 교육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친구들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보다는 학원을 다니느라 황금 같은 초등학생시절을 신나게 뛰어놀지도 못한다. 아파트단지 안에 알록달록 예쁘게 장식한 어린이 놀이터가 있지만 그곳을 이용하는 층은 유치원 아이들 뿐이다. 엄마와 함께 와서 그네를 타거나 모래놀이를 하다가 가곤 한다. 놀이터는 예전보다 더 시설이 좋아졌지만 놀 아이들이 없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그 시절, 빛바랜 편지처럼 떠오르는 소중했던 추억의 한 자락을 들춰본다. 그때 가장 많이 하던 놀이는 술래잡기였다. 술래에게 들킬까 조마조마하며 몸을 움츠리고 장독대 뒤나 헛간, 담 모퉁이 화장실 옆, 몸을 숨길만한 곳이면 어디나 좋았다. 팀을 짜서 노는 우리 집에 왜 왔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고무줄놀이 등을 하며 뛰놀다보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등에는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시원한 바람에 땀이 식어갈 때의 그 시원함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자치기와 팽이치기, 썰매타기는 겨울철 남자 아이들의 제일 재미있는 놀이였다. 빨래가 잘 마르지도 않는 겨울에 얼음을 지치다 물에 빠져 옷을 버려 어머니께 혼이 나기도 했지만 학원 다니느라 힘들지 않고, 자격증을 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없었던 그 시절이 진정 아이들의 낙원이 아니었던가 싶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가고 너무도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모든 것이 편리해진 시대에 살고 있어 예전에 모든 것이 부족해 뜻을 마음대로 펼칠 수 없던 시절에 비하면 천국에 온 것 같다. 질 좋고 세련된 모양의 옷, 값이 싸면서도 모양이 좋은 학용품, 셀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학습 자료들, 명문대를 나온 선생님들, 언제든 마음대로 사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들, 하지만 이런 좋은 조건임에도 아이들은 공부에 찌들어 개를 부러워하고 있다. 아이들은 더 이상 개를 부러워하지 않고 동심에 젖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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