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장수
박영애
계란은 콩나물 다음으로 우리 식탁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쓸모가 많은 식 재료이다. 주부들에게는 ‘오늘은 무얼 해 먹을까?’ 생각하는 것이 늘상 하게 되는 고민 중의 하나이다. 그렇게 마땅하게 생각나는 반찬이 없을 때 이무럽게 내놓을 수 있는 반찬 중 하나가 계란찜이다.
계란찜은 계란과 당근, 쪽파 등 비교적 간단한 재료에 멸치가루와 소금만 있으면 해결되는 손쉬운 요리이다. 예전에는 냄비에 물을 붓고 중탕하던 것을 가전제품이 발달한 요즘은 전자렌지만 있으면 쉽게 해결된다. 6~7분 사이에 만들 수 있는 계란찜은 맵지 않고 자극성이 없어 아이들에게 자주 해먹이고 있다.
내가 계란요리를 할 때마다 머리 속에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영문자 J로 시작된다. J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의 짝꿍이었던 남학생이다. 그 아이는 키가 무척 컸고 덩치도 좋았다. 옷차림은 매우 털털했고 별로 희지 않은 얼굴에는 늘 개기름이 번들번들했다. 별로 단정해 보이지 않는 더벅머리였고, ‘청결’이란 단어와는 담을 쌓은 것 같았다. 아이들과 시시껄렁하게 농담이나 하고 공부에는 별반 관심이 없어보였다.
한 교실에 30명을 조금 넘은 소수인원으로 구성된 현재의 학급인원과는 달리 그 당시에는 인원이 제일 많을 때는 80명에 가까운 친구들이 한 교실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 콩나물교실이었다. 그래서 선생님 한 분이 그 많은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은 참으로 힘이 들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그 때는 긴 책상을 짝꿍과 함께 사용했다. 내 짝꿍은 책상 가운데 가르마처럼 줄을 그어놓고 공부하다가 무의식중에 내 팔꿈치가 그 금을 조금이라도 넘어갈 때면 그 큰 주먹으로 사정없이 팔뚝을 내리쳤다. 방심한 사이 엉겹결에 공격을 당한 나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화가 났지만 체격이 작았던 나는 힘으로는 그 아이를 당할 재간이 없어서 ‘어떻게 하면 저 녀석을 혼구멍을 낼까?’하고 생각하며 주먹만 불끈 쥐었다가 화난 마음이 슬그머니 사그라 들곤 했다.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되다보니 그 아이에 대한 미움이 커져갔다. 지금 같으면 선생님께 이야기를 하거나 부모님께 말씀드려 잘 타일러 다시는 괴롭히지 못하도록 혼내주었을텐데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묵묵히 견뎌냈다. J는 종종 내 필통이나 지우개를 감추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 때마다 다른 아이들이 내편이 되어 잊어버린 물건을 찾아주었다. 유난히 코를 많이 흘리던 J는 무심결에 흐르는 콧물을 옷소매로 ‘쓱’닦아 땟국물에 절어 반들반들해진 옷을 입고 다녔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진저리를 쳤다. 게다가 손톱을 물어 뜯는 버릇이 있어 공부시간 내내 때가 꼬질꼬질하게 낀 손톱을 물어뜯느라 온 정신이 거기에 다 쏠려 있어 공부는 뒷전이었다. 나는 J의 그런 모습을 보며 되도록이면 그 아이와 손을 가까이 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끔씩 칠판의 글씨를 배껴 쓰는 그 아이의 손을 바라보면 하도 손톱을 물어뜯어서 손톱이 길어 나올 사이도 없어 피가 날 것처럼 손끝이 빨갛게 약이 올라 있었다. 그런 모든 상황이 미움과 뒤섞여 그 아이를 하루라도 빨리 보지 않았으면 했는데 시간은 참으로 더디게 흘러갔다. 초등학교시절을 마감하는 졸업을 하면서 그토록 눈에 가시처럼 거슬리던 그 아이의 모습이 마침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때의 그 시원함이란…….
그 후로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는 처녀시절을 맞아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처녀시절 우리 집은 단독주택에서 온 가족이 오순도순 재미나게 살았다. 나는 직장생활로 바빴지만 일을 갖고 계신 어머니를 위해 항상 집안 일을 같이 거들게 되었다. 그날도 어머니와 함께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계란사요, 계란!”
멀리서 들려오는 굵직한 남자목소리. 마침 삶은 계란을 먹고 싶다는 동생들 생각이 나서 계란을 한 판 사서 두고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급히 대문을 열고 골목으로 나섰다. 대문 밖 골목은, 골목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넓어서 웬만한 자동차들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어서 하루 종일 야채장수나 두부장수, 과일장수 들이 트럭에 마이크를 달고 와서는 조용한 주택가를 온통 뒤흔들고 가기 일쑤였다. 방안에서 앉아있을 때는 그 소리에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부식가게에 가지 않아도 되어 매우 편리해 그들을 나무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대문을 나서며 혹시라도 계란장수가 가버리면 어쩌나 염려했는데, 다행히도 계란장수는 커다란 짐 자전거에 계란 판을 높이 쌓아올린 채 힘에 부친 듯 자전거를 몰고 골목 깊숙이 들어서고 있었다. 챙이 긴 모자를 푹 눌러 쓴 청년은 체격이 매우 건장해 보였다. 나는 속으로 ‘저렇게 좋은 체격으로 어울리지 않게 짐 자전거람! 8톤 트럭 정도는 몰고 다녀야 어울리겠다’ 고 생각을 하며 자전거 근처로 다가갔다. 계란은
닭털이 하나씩 묻어 있고 표면이 까칠까칠한 것이 싱싱해보였다.
“저~, 이 계란 얼마예요?”
“예, 이쪽 것은 ○○○원, 이쪽 것은 ○○○원 인데요.”
“이쪽 걸로 한 판 주세요.”
계란장수는 말없이 계란 한 판을 한 깨씩 집어 조심스럽게 봉지에 담더니
“여기 있습니다.”
하며 계란봉지를 내밀었다. 나는 돈을 꺼내 계란장수에게 건네주었다. 계란장수는 돈을 세어보기 위해 푹 눌러썼던 모자를 조금 들어올렸다. 순간 나타나는 낯익은 얼굴! 순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야, 너!”
“야 ,너!”
하고 합창을 했다. 분명 그 친구, J였다. 초등학교시절 나를 그렇게도 못살게 굴던 짝꿍! 살만 더 쪘을 뿐 어릴 적 그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친구는 아직도 그 때와 다름없이 역시 털털한 모습이었다.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그렇게도 복수의 칼날을 갈던 J였는데 오랜만의 만남이 참으로 반가웠다. 나는 계란을 높이 쌓아올린 그의 짐 자전거를 바라보며 차마 그에 대해 아무 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마주 선 우리는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빙그레 웃으며 쳐다보기만 했다. 그 때 언제 오셨는지 맞은편 대문 집 아주머니께서
“아가씨 아는 사람인가부다.”
하며 아는 체를 했다. 초라한 J의 모습에 마음이 편지 않은 나는
“아, 아니예요.”
하며 계란봉지를 받아들고 대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J에게 미처 잘 가라는 인사도 못한 채……. 담 너머로 그 친구가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아이가 눈치 채지 못하게 계란 파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웬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속마음으로는 ‘그래, 여학생이나 괴롭히는 아이가 잘 될 리가 있겠어.’하며 나는 어느 사이 J의 초라한 모습을 고소해하고 있었다. 계란 판이 다 비어갈 무렵, 자전거에 몸을 싣고 골목 밖으로 사라져가는 J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계란을 알맞게 삶아 가족들과 함께 소금을‘꾹꾹’찍어 가며 맛있게 먹으면서도 J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아는 체라도 제대로 할 걸……. 그 후로 나는 ’사랑손님과 어머니‘에 나오는 옥희 어머니처럼 계란만 보면 동창생 J가 생각났지만 그 후로 골목 안에서 J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 J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잘 살고 있을까?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가끔씩 계란을 보며 초등학교 시절의 낡은 기억들을 더듬어 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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