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에서
박 소 영
연초에 종합검진을 받았다. 의사가 꾸준한 운동과 음식 조절로 체중 10% 이상 줄여야 한다고 했다. 퇴직 후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살이 찐 나에게 내린 두 번째 경고다. 가까이 있는 산까지 걷기 운동부터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을 수시로 하건만 손 가까이 있는 TV 시청과 신문 읽기에 아침시간을 다 보내고 만다.
지난해 입었던 여름바지 지퍼가 편하게 올라가지를 않는다. 다부진 맘을 먹고 다음날부터 산을 향해 걸었다. 오랜만에 산에 오르니 숨이 찼다. 정상이 바로 눈앞에 있건만 한 발짝 한 발짝 올라가는 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헐떡이는 숨결, 비 오듯 타내리는 이마의 땀, 가벼운 발걸음으로 뛰듯 따라오는 젊은이들에게 길을 비켜주다가 자리를 찾아 털썩 주저 앉았다. 내가 앉은 의자 곁으로 나이가 든 사람들이 다가온다. 2-30대 젊은이들은 건너편 의자에 앉는다. 젊은이들과 어울려 얘기하고 수다를 떨고 싶은데 그들은 내가 앉은 자리를 비켜갔다.
함께 앉은 부인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자식 얘기로부터 남편, 손자, 손녀 등 가족을 중심으로한 얘기를 하던 중 서로 나이를 알게 되었다. 나이가 좀 많으리라 생각했는데 나와는 동갑 내지 한두 살 차이였다. 그들 눈에도 비슷하다고 느꼈기에 내 옆자리에 앉았으리라. 염색시기를 놓친 머리카락이 이맛살을 비집고 올라와 흰띠를 이루고 엷은 검버섯과 잔주름은 누가 봐도 초로의 나이, 이분들이 나의 모습이다. 나는 젊은이들과 어울려 나이를 잊고 글도 쓰고 컴퓨터 공부도 잘 소화 할 수 있는 신세대라고 여겼는데 이 순간은 늙은이 편에 앉아 세상사에 대한 수다를 마냥 늘어놓고 있다.
'왕언니!' 젊은이들이 불러주는 나의 칭호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겠다는 뜻을 남편과 아이들에게 비치었을 때 적극 밀어주겠다고 했다. 나이를 가리지 않는 배움의 현장은 나를 젊게 해주었다. 사고도 노는 방법도 그들과 같다고 느꼈다. 후배들이 나의 글을 신랄하게 비평해 줄 땐 그들 속에 함께 커갈 수 있는 작가 지망생이라는 자부심도 가져본다. 내가 지향하고 있는 길은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데 여기 앉은 나는 소싯적 시집살이, 아들, 며느리에 대한 얘기를 하는 아주머니들과 어울려 있다.
화요일에는 성서공부, 금요일에는 글공부, 나는 젊은이가 있는 곳으로 용기 있게 달려간다. 마음을 살찌울 수 있는 글쓰기 공부에 어울려 가다 보면 희망이 샘솟는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숙제를 밤이 이슥하도록 하기도 한다. 유년시절과 학창시절, 아이들을 키울 때, 처음 집을 장만했을 때, 직장생활을 할 때의 나로 돌아간다.
정상을 향해 가려다 함께 앉았던 부인과 내려왔다. 자신은 아침마다 산에 온다면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차단해 둔 울타리를 넘어가자고 한다. 금지하는 곳으로는 가지 말자고 했을 때 그녀는 벌써 울타리 안에서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평소에 자주 다니던 길이라 걱정 없다고 하면서 우거진 풀숲을 잘도 헤쳐 간다. 한참을 들어가도 아무도 보이지 않아 나는 무섭다고 했다. 자기도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다닐수록 조용하고 그늘진 길이 좋다고 하면서 잠깐 앉았다가 가자고 한다. 인기척이 없는 산속엔 다람쥐와 산새들이 분주히 옮겨다닌다. '기집 죽고 자슥 죽고 나 혼자만 우째 살꼬.'라고 애달프게 토해대는 부엉이의 울음이 더욱 고적하게 들린다.
멀쩡한 길을 두고 다니지 마라는 울타리 속을 몰래 들어왔다는 죄스러움과 산속의 적막감에 감싸여 들었다. 첩첩산중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다. 따라온 것이 후회스러웠다.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다 왔다면서 엎드린 자세로 울타리를 뚫고 나간 뒤 내가 나갈 수 있게 도와준다. 그녀는 내일도 앉아 쉬었던 자리서 다시 만나자며 함께 내려오다 헤어졌다.
아침 등산길에서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나 생각지도 않았던 엉뚱한 길을 걸어왔다. 삶의 길도 어찌 이와 다르랴. 내 의지대로 세상을 살 수가 없다. 탄탄한 대로도 걸을 것이고 때로는 오르막에서 헐떡거리기도 하고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며 들어선 길이 둘러 가는 길이 될 때도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낯선 길손을 만나 허둥대던 때도 있었다.
인생의 가을철에 접어든 나이, 추수할 시기가 머지않은 시점에 있다. 얼마나 보람찬 삶을 살아왔나 저울질해 볼때다. 하던 일들도 접고 정리할 시기에 글공부라는 새로운 일에 도전 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늦었다고 망설이기를 몇 번 만에 두드린 문, 어쩌면 지금까지 살아온게 글 공부일 수도 있다.
늦게 동참한 글쓰기 수업, 나이가 든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젊은 동료들, 얼마든지 앞서 갈 수도 있으련만 늘 격려하며 함께 걸어 준다. 쌓아온 연륜에 충전을 가하면 가속이 붙어 잘 쓸수 있을거라는 격려의 말이 나의 글공부에 힘을 실어준다 . 늙은이의 수다의 자리도 젊은 동료와 글을 쓰는 자리도 둘 다 소중한 나의 자리다. 벌거벗은 겨울나무, 죽은 것이 아니라 새봄에 더 큰 나무로 성장하기 위한 긴 휴면을 갖는 시기다. 나도 잠에서 깨어 새 일을 시작했다. 실바람에도 맥없이 떨어진 낙엽, 겨울 동안 눈비를 맞으면서 나무에 거름이 되어준다. 둘러가는 길도, 남을 따라 나선 길도 삶의 밑거름이 되어 새봄엔 더욱 아름다운 꽃을 피우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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