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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구 갑재(4)


BY 오수정 2009-05-12

 

그의 형이 개업한 약국은 금호동 어느 사거리 모퉁이에 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쉬임없이 오가는 번화가였습니다.

 

갑재는 약국 저 안쪽에서 고객관리나 사무처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갑재였어요.

여전히 목발을 짚고 있었으며 조금 달라진게 있다면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었던 그의 웃는 얼굴이

조금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작은 변화는 물어물어 찾아간 나의 작은 열정에 별반 상충되지 않는

것이어서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스러움으로 머쓱하기 짝이 없었드랬어요.

 

약국을 돌아서  언덕배기에 안집을 정한 갑재네는  옛날의 풍유는

사라지고 웬지 썰렁하면서 어둡고 좁게만 느껴집니다.

하얀 모시적삼의 부드러운 갑재네 엄마는 마침 출타중이어서 집에 없었으며

머리매무새가 흩으러진 늙은 퇴직 교육감인 그의 아버지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는데 다 자란 나에게 조금 어색한듯 어느정도 예의를 갖추어

주었습니다. 한참 눈아래로 보이는 작은 꼬마는 이제 아니었던거죠.

갑재아버지가 타준 커피는 아주 먼 나라에서나 맛보는 생경한 맛이었습니다.

나는 어렷을적 보다 더 그의 아버지가 어렵고 그랬습니다.

황망한 마음으로 서둘러 갑재네 곁을 떠나오고 말았습니다.

 

갑재는 그렇게 잊혀져 가고

나는 세월의 두 바퀴에 치어가며

정신없이 굴러가고 있었지요.

 

아주 가끔 헐벗고 굶주린  유년시절의

힘없이 미소짓던 내가 사무치도록 그리워

멍해 있을때 갑재를 떠 올리곤 했는데

이상하게 그것은 우울하거나 어두운 추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년의 내가 갑재와 함께한 정경들이 아리도록 고운 추억이 되어

간직하게 되더라는 겁니다.

 

그리하여 문득 갑재가 궁금해져서 미칠것처럼 해져갖고

어떻게 하면 그의 소식을 알 수 있을까

궁리를 했던게, 두 아이를 다 키우고 돌아서서 빈둥지 증후군을

심하게 앓았을때 였던 것이지요.

 

 

인터넷열풍이 유럽의 흑사병처럼 만연했던 시절

단순한 지적 호기심을 해소하는덴 이만한게 없었지요.

눈만 뜨면 수많은 정보속에 허우적 대면서 갖가지 크고 작은

정서에 휩쓸림을 당하는것도 큰 재미였더랬어요.

우연히 문득 검색창에 '김갑재'를 쳤는데

아.... 정말 놀라웠습니다.

 

35년만에 나는 그의 소식을 알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