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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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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구 갑재(3)


BY 오수정 2009-05-12

 

변소를 끼고 도는 막다른 골목이 우리집 대문이었는데

우리는 그 골목에서 암모니아 냄새를 맡으며 곧잘 놀았었더랬어요.

 

갑재 엄마는 늘 하얀 모시적삼에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얼굴빛도

모시적삼처럼 하얗고 동그마해서 늘 인자한 모습으로 기억이 되는군요.

그녀는 교육감인 갑재아버지의 후처였습니다.

그랬다고들 합니다.

형제는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여름방학때면 굵은 검은테 안경을

낀 그의형이 내려와 골목에서 놀다가 낯선듯이 올려다보는

어린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다닌다고 그 어릴적에도 귀에 들어올 정도로

그 아이네 집안은 동네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는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해 여름방학때 였습니다.

내가 암모니아 냄새가 가득한 대문간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부드러운 풍금소리가 잔잔히 들려오는 것이었어요.

나는 서둘러 닦고 일어나 밖을 두리번 거렸는데 그 소리는 바로

골목 건너편 갑재네 마당에서 흘러 들어온 소리였어요.

나무로 만든 오줌통을 딛고 게발을 하고 올려다 보니

희미한 전등이 켜진 마당에 누군가가 풍금을 치고 있었고

하얀 모시적삼을 입은 갑재어머니가 그의 서울대 약학대학에

다닌다는 형의 품에 안겨 부르스를 추고 있는 정경을 봅니다.

 

나는 너무 놀라웠습니다.

아..저건 뭐지?

 

그런데 모자간에 부둥켜 안고 돌아가는 천천한 동작이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어린 내눈에

그들은 정말 아름답게 비추어졌으니까요.

내가 조숙했을까요?

나는 모자간의  조용한 모습에서 화목함을 절실히 느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먼 훗날 내 장년시절에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몽환적인 상상을

기분좋게 하곤 했습니다.

 

약학대학에 다닌다는 형이 금호동에 개업을 했다는 소식과

모든 식구들이 그곳에 둥지를 틀었다는 소식을

그로부터 오년후에 듣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