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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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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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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BY 두모 2006-12-08

여삼을 쫓아 가다보니 몸은 축 늘어지기 일쑤고 드디어 정신마저 혼미해져 온다. 이불을 끌어 당겼다. 비록 쾌적한 수면용으로 맞추지 않더라도 엉덩이는 제법 데워진 요위에 축 늘어져 있다. 이만하면 됐다. 뭔 걱정인가. 여삼이가 어찌됐든 그건 단지 픽션일따름이지. 정오가 지난지 두어 시간은 족히 넘었건만 배도 고프지 않다. 그저 책속에 빠져 주인공 여삼과 호흡을 맞추다보니 ... 이제 눈꺼풀만 내리면 그만이다. 슬렁설렁 감기는 눈을 뻔쩍 깨운 건 역시 요란스런 전화벨이다. 저놈의 전화는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들 중에서 이런 순간만큼엔 하등 가치없는 존재다. 무시해버릴라 치면 뭔가 중요한 단서라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내심 불안해진다. 받아야겠다. 그래야 달아난 잠을 나중에라도 달게 잘수 있을 게다.

"여보세요."

"처형, 저 지니아빠."

저쪽이 누군지 밝히기 무섭게 잠이 확 달아나 버린다.

통화가 가능한 지 지금 전화한 게 적당한 것인지 등등 물을 것도 없이 걸었으니까 할말은 해야할것 아닌가... 

"저 실은 삼 일 전에 한 대 때렸쑤다. 진짜루 뺨을, 아니 사실은 장난으로다가 근디 그게 마자브러서, 폼만 잡으려고 해신디."

"네? 아니 그게 지끔 장난하는 거죠? 어떻게."

그러고 보니 싸한 술냄새마저 전화선을 타고 이쪽으로 흘러들어온 느낌이다. 백주에 직장인이 술을 마셨다는 건 뭔가 이유가 있을 것, 더구나 새신랑 딱지 뗀지 채 일년도 안된 동생 남편. 벌써 가슴이 뜨끔거리기 시작한다. 뭔 일이 있긴 있었나보다. 내가 얼마나. 근데 때렸다고 했잖은가. 뺨을. 헉! 갑자기 헛소리가 툭 튀어 나왔다. 본능이다. 결코 이성으로선 그런 소리가 나올리만무한 것.

뭐 사람 사는게 다 그러지 어쩌겠는가. 출가외인임에야. 물론 고리따분한 조선 중기 여인네 삶은 아닐지라도 시대가 그런걸 아직은 우리 대한민국은 전통을 중시하고 이름하야 동방예의지국이라. 학교교육 정상적으로 다 받고 자란 세대면서도 결혼과 동시에 폐백이니 시댁이니 친정이니 하구선 관혼상제의 미덕을 지켜야 할일이지 않은가.

고것 참, 진작에 내 말을 들을 것이지. 기어코 일을 벌려. 벌려도 조용히나 있으면 좀 좋아.

올해 안엔 기필코 결혼을 하겠다고 벼르고 벼르더니 쌤통이다. 그래 두어달 살맞대고 살아보니 이제 이해가냐? 마음같아서야 고소하기도 했지만 핏줄에 대한 애증의 그림자는 어쩐지 짙에 드리워진 그늘마냥 어둡고 침침하다.

그래도 그쪽에선 뭔가 변명이라도 늘어놓을려는 낌새였는데 이쪽에서 너무 성질 급하게 굴었나?

어쩐지 찜찜한걸 그새 양가슴도 두근반세근반 거린다. 아까전에 한 이쪽행동이 과연 옳은 것일까. 자신 없어진다. 지가 먼데 글쎄 내 동생을 때리냔말야. 힘세면 다야. 지 새끼 나아준 여자를 혼인식 올린지 얼마나 됐다고. 아직 아버지 소상도 못치렀건만 ....

그러는 동안  문득 아버지의 감긴 두 눈이 앞을 가로 막았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길 없던 여섯달 전 그 날들이 떠오른 건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유신아빠고 뭐고 당장에 서운한 걸 어쩌란 말인가. 아버진 이 세상 분이 아니다. 이미 가셨다. 우리들이 아무리 발버둥치더라도 이젠 만날수 없다. 돌아가신 마당에 지가 얼마나 사위 노릇한다고 눈물 펑펑 쏟으며 주위사람들마저 함께 신경쓰게 하지 않던가.  점점 지니아빠라는 사람이 미워지기 시작한다.

꿈에 본게 그다. 스물여섯에 객사한 남자! 화려한 관광지내에 쏟아지는 폭포수의 꼭대기에서 훨훨 날아 올라 서녘으로 사라져버렸다. 그가 예닐곱의 엣된 모습으로 다가온 것이다. 정말 귀엽고 아름다웠다. 피부결도 뽀얗게 흐리고 무엇보다 사지가 멀쩡하니 몸 어느한 군데 흐트러짐없이 이제 막 유아 티를 벗은 모습으로 내 곁에 앉아 있는 게다. 너무나 오랜만의 만남이라 우선 반가워 이것저것 묻고 대답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때묻지 않은 모습의 순진무구한 표정이 인상적이랄까 내가 날고 있던 그의 이미지와는 좀달랐다. 어쩌면 인십년전의 잊혀진 과거의 기억 속에나 존재했던 추억인양. 나는 하루종일 그생각이 들것만 같았다. 기뻐서. 그가 돌아왔다고 우리들 곁으로, 당장에 전화를 걸뻔했다. 진실과 꿈의 구분을 할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눈을 떴다. 그건 진실이 아니다. 아니 진실이면서 사실은 현실이 아님에 분명하다. 밖은 벌써 창문에 드리워진 아침햇살로 하얐다. 아이들은 여전히 새끈거리고 있다. 현실을 깨닫은 순간 뭔가 잃어버린 허전함이 물밀듯 쏟아졌다. 시계는 짧은 바늘과 긴바늘사이 예각이 분명45도를 막 넘겼다. 벌써 넥타이를 메고 있는 남편 그는 무신경하게 거울앞의 자기모습에 흠뻑 빠져 옷매무새를 이젛게도저렇게도 고쳐본다. 그는 멋쟁이다. 그는 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적어도 자기 마누라 앞에서는 좀더 우월하다고 뻐기는 걸 즐긴다. 마누라를 깔아뭉개면서 자신이 더 우쭐해지는 양 허세부리길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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