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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일기 6 / 직업에는 나이가 없다


BY 그리운섬 2007-12-14

직업에는 나이가 없다

차가운 대륙성 바람이 봄으로 질주하는 훈풍을 막기엔 역부족인 듯 살그머니 꼬리를 감추던 2월 중순 어느 화요일, 화요일 장의 매출이 쉬이 오르지 않아 나는 다른 아파트에서 장사를 하기로 하고 수원 매탄동 5단지로 차를 몰았다.
아파트 단지를 돌아보니 세대수는 족히 600여 세대는 되어 보였다. 아파트 장에 도착했는데 채소와 건어물만 나와 있고 나머지 공산품이나 먹을거리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조금 있으니 숙녀복을 파시는 분이 오셨다. 연세가 60은 되어 보이셨다.
숙녀복이란 게 계절이 어중간하면 팔리지 않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이제 장사를 시작하신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시는데 종일 나와서 결국 장비도 못 버시고 짐을 싸고 계셨다.
조금은 안됐다는 생각에 넌지시 말씀을 드렸다.
“장사가 안 돼도 너무 안 되죠? 사람들이 이렇게 나오지 않아서야 무슨 장사가 되겠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팀장님이 장사가 잘 되는 곳이라고 해서 왔는데 쯧쯧”
“이건 농담입니다만, 뻥튀기가 안 팔리면 그 장은 안 봐도 뻔해요. 제 경험상으로 봤을 때 그렇단 이야기입니다.”
한참 웃으시던 그분께서 말씀을 이어가셨다.
“저도 몇 달 전까지는 아파트 관리소장을 했어요. 그만두고 나니 참! 할게 없네요. 허허”
“저기 정 그러시면 뻥튀기 장사를 한번 해 보시지 그러십니까?”
갑자기 그분이 너털웃음을 지으시며 말씀을 하셨다.
“뻥튀기요? 제가요? 하하하 세상 사람들 눈이 있지 제가 무슨 뻥튀기장사를 해요. 하하하”
나는 "세상 사람들 눈이 있지"라는 그 분의 말씀을 듣는 순간, 명치끝을 쿵쿵 내려치는 무언가가 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더는 그분에게 아무 말씀도 더 드릴 수가 없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어제오늘 들어온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애써 현실에 표현되는 뻥튀기를 미화하거나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뻥튀기하면 생각나는 것은 바로 추억이다. 우리가 지독하게 가난하던 시절 동네에 뻥튀기 아저씨가 오시면 동네 아이들은 살판이 나는 날이었다.
바로 우리 아버지께서 내가 어릴 때 뻥튀기 장사를 하셨다. 사람들은 어린 나를 보고 항상 하는 말이“너 튀밥장수 아들 맞지?"이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참 듣기 싫었던 말이었지만 그렇다고 튀밥장사를 하시는 아버지를 싫어했던 적은 없었다.
사실 뻥튀기 장사를 하는 분들은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이거나 아저씨들이었다. 또한, 알뜰 장에 가보면 장사하시는 분들 대부분 연령대가 오십이 훌쩍 넘은 분들이 많다. 그러나 모든 관념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벌써 채소 코너와 과일 코너 그리고 건어물코너는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내 이웃들만 보더라도 도넛츠 코너와 피자 코너 그리고 김 코너만 보더라도 나이가 대부분 삼십대이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장사를 하시는 연령층이 젊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내가 최근 들어 뻥튀기 사업에 관심을 둔 것 또한 나보다 십여 년은 더 젊은 분들이 일하는 것을 본 후 자신감을 얻어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직업엔 귀천이 없다'라는 말을 떠나 이제는‘직업엔 나이가 없다'라는 말로 달리 표현하고 싶다.
누구나 다 싫어하는 노점에 정신력 하나로 똘똘 뭉친 피 끓는 젊은이들이 종횡무진 삶의 현장을 누비는 모습을 보라! 이 어찌 대견하지 않은가?
바로 그 현장에 내 동생뻘 되는 아우들도 있겠고 나와 같은 젊은 중년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힘든 일을 하건 피땀 흘려 일하며 그 땀 속에서 삶의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만 있다면 어찌 '직업에 나이가 있다'라고 말 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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