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생, 다음 주 목요일날 저녁 약속 잡지 마요, 알지?"
닥터 안이 나를 보며 찡끗 윙크를 한다.
언제봐도 깔끔하고, 친절하고, 자상한 분….
그럼 뭘하나, 임자 있는 몸인데….
괜히 한숨만 폭폭 난다.
'누구는 복도 많지….'
복녀….
그녀는 복녀이다.
'복 복'자에 '계집 녀'
복녀, 다시 말하자면 '복이 지지리도 많은 여자'라는 뜻이다.
이제 막 사십줄에 들어선 복녀의 남편이자 나의 영원한 우상인 닥터 안은 강남 한복판에 최첨단 시설의 치과를 개업하여 페이닥터만 셋, 치위생사만도 둘이나 거느리고 승승장구하고있는 성공한 치과 의사이다.
어디 그뿐인가!
요즘에 머리가 조금 희끗희끗해서 탈이지, 수려한 용모에 성격까지 좋아서 언제나 '허허허'하고 웃는 그의 너털 웃음을 보고 있노라면, 나까지 절로 행복해질 지경이다.
이정도만 해도 나를 측은하게 여겨 이렇게 위로해주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다.
무릇, 밖에서 잘하는 남자는 집안에서 그 스트레스를 아내에게 다 푼다더라….
어허...이거야 말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시는 말씀!!
닥터 안은 '치과계의 최수종'이라 불릴만큼 아내를 위한 이벤트를 구상하고 선물을 고르는데 그 낙이 있는 사람이다.
"박선생, 이거 어때?"
닥터 안이 나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은 백발백중 그의 아내, 복녀를 위한 것이다.
짝퉁도 너무 비싸서 한번도 달고 다니지 못했던 내 앞에 깔끔하고 고급스런 구찌백을 쇼핑백에서 턱하고 꺼낸 닥터 안.
대부분 중국산을 애용하는 난 그날 처음으로 구찌라는 것이 이태리산이란 걸 알았다.
아! 여기까지 이야기하는데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두번이나 들락거렸다.
어쨌거나, 이렇게 훌륭하고도 바람직한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한 복녀는 누가 뭐래도 내가 가장 부러워 하는 인물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나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처구니없게도 생긴것부터 사는 모양새까지 하나도 비슷한 구석이 없는 복녀와 나는 딱 두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이름과 생년월일….
독자 여러분들은 믿을 수 있는가?
이름과 생년월일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두 사람이 무지하게 상반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믿기 싫어도 할 수 없다.
그게 엄연한 현실이므로….
당사자인 나 또한, 이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한동안 방황하다가, 언제부터인가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불쌍한 이 '무복녀'는 그저 밤마다 침대에서 내 가슴을 쿵쿵치는 수 밖에….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뭐, 어쩌겠나… 그것이 인생인 것을….
어쨋던간에 난 그 이후로 사주팔자고 사주할아버지고간에 그 비슷한 것도 안 믿는다.
사주팔자가 진정 존재하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복녀와 나의 운명이 이다지도 상이하더란 말이냐….
아! 여기서 슬프고 징한 옛날 이야기 한 토막….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이름과 생일이 같은 공주와 무수리가 한 마을에 살았답니다.
사람들은 그 둘의 이름이 헷갈려서 편의상 그 둘에게 별명을 붙여주었지요.
멋진 왕자님의 보호속에 으리으리한 궁에서 살고 있는 아리따운 그녀는 '복녀'
매일같이 심한 노동속에 손이 부르트고, 그 누구도 관심가져주지 않는 못생긴 그녀는 '무복녀'
내가 너무 불쌍하다고?
그럼 내가 한번 '복녀'가 되보기로 하자.
좋다!! 나는 '복녀'다!!! 우하하하하….
'배 복'자에 '계집 녀'….
똥배나온 나는 '복녀'
쭉쭉빵빵 그녀는 '무복녀'
으흐흐흑….
비참해지기는 마찬가지이다….
엄마!! 나를 왜 낳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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