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가 한박스 왔다. 김치 냉장고에 자리 마련해 서로 생채기 나지 않게 줄 지어서 쟁여두니 행복해진다.
문득
해마다 주문해 먹던 햇고추를 보내주시던 할머니가 올해는 편찮으셔서 농사를 짓지를 못했다는걸 늦게야 알아내고 아직 겨울 김장에 쓸 햇고추를 준비하지 못한게 생각나 마음이 무겁다.
본인과 자식 먹을 농사만 짓는 분을 인연으로 알아 해마다 믿고 의지했는데 이제 이런분을 어디서 다시 만나나 싶은것이 햇고추보다 그 할머니의 건강이 더 염려된다.
어제는 비가 오더니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다.
기온도 떨어지지 않은것 같고 바람은 적당히 한갓지다.
침대시트를 벗겨내 세탁기에 돌리고 매트리스를 뒤집고 반대방향으로 돌려놓았다.
옥상에 올라가 빨래를 너는데 어제 내린 비로 하늘이 참 푸르고 너르게 다가온다.
한적한 주택가의 이집 저집을 옥상에서 훔쳐보는데 감나무 없는 집이 없다. 담타고 호박이 열려있는것도 보이고 옥상에 고추며 겨울초를 심어 놓은 집도 보인다. 고춧대에 고추는 이제 얼마 달려 있지 않지만 여름내내 그리고 조금 남은 이 가을에 색을 달리하며 풍요를 안겨줬을 것이다.
비록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언젠간 나도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가을이면 더 간절해진다.
갖가지 소음과 다른이를 배려하지 않는 뻔뻔한 모습들에 나이가 조금 더 들면 세상사 다 이해하겠지 했던 일들이 더욱 더 이해못할 일만 많아지고 사람들은 더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있는게 그 모습이 사실은 내모습일거란 생각에 얼굴에 열이 오른다.
여유로와지고 싶다.
느긋해지고 싶다.
푸근해지고 싶다.
그 더운 여름 한 낮의 뜨거운 햇볕과 폭풍과 비바람을 이겨내고 시간이 흐르면 보란듯이 성실하게 열매 맺는 자연.
그 자연을 우리는 항시 동경하고 그리워하는데...
왜 인생의 가을쯤에 해당하는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팍팍하기만 하는건지...
아마도 자연처럼 때가 되면 비워내는 베풂을 닮지 못해서 그런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