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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훈훈한 효행


BY 휘발유 2006-11-05

몸이 찌뿌듯하여 오후에 목욕탕에 갔습니다.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는데
휠체어에 의지한 어떤 어르신 한 분이
30대 두 사람의 부축을 받아가며 욕탕에 들어오셨습니다.

근데 가만 보니 그 어르신과
두 30대의 얼굴이 동일한 '붕어빵'이었습니다.
유추컨대 부자(父子)지간이지 싶더군요.

아무튼 두 사람은 그 어르신을 휠체어에서 번쩍 들어서
세신사(洗身士)의 전용공간인
때밀이 대(臺)에 뉘였습니다.
그리곤 경쟁을 하듯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어르신의 몸을 정성껏 닦아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사우나에 들어가 몸을 더욱 달군 뒤에
냉탕에 들어가는 중에도 두 사람의
그러한 효행(孝行)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벽에 걸린 샤워기를 틀어놓고 머리를 감고
몸을 비누로 씻은 뒤 목욕을 마치자
마침 그 어르신 역시도 목욕을 마쳤더군요.

두 아드님이 다시금 마른 수건으로
그 어르신의 머리와 몸 부위의 물을
정성껏 닦아내는 정겨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처럼 효도하는 모습이 정말이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떤 모습이
아닌가 싶어 제 맘까지 덩달아
화들짝 핀 꽃이 되는 듯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헌데 세 가지만 열거하자면 우선은
오늘 제가 목욕탕에서 본 것과 같은, 자식의
부모에 대한 효도가 제일이 아닐까 싶네요.

다음으론 부부가 평생을 사랑하면서
해로(偕老)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끝으론 형제간의 변함 없는 우애라고 느낍니다.

작금 부모에 대한 효도는커녕 효(孝)의 실종으로
말미암아 인면수심의 패륜이 적지 않다는
뉴스를 접하곤 합니다.
각다귀처럼 부모에게 여전히 빌붙어
돈이 필요할 때만 아양을 떨며
하지만 돈을 안 준다며 부모를 구타하는
인간말종과 중풍에 걸린 시어머니를
상습적으로 구타하는 며느리 역시도 인간이라 볼 수 없겠습니다.

치매 부모를 거리에 유기해 수용시설로 보낸 아들과
밥도 주지 않고 아는 체도 안하며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아들 부부 역시도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조선 중기 무신 겸 시인이었던 박인로(朴仁老)가 지은
<조홍시가>라는 시조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철이 들어 부모님께 효도를 하려고 하였으나
부모님께선 기다려 주시지 않고
일찍 돌아가셔서 효도하고 싶어도
이젠 하지 못 한다'는.

조선시대 명신(名臣)이었던 송강 정철 선생 또한
어버이에 대한 효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일렀다지요?

'어버이 살아계실 제 섬기기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 뿐인가 하노라".

진부한 잔소리겠으되 부모님께는
생전에 효도를 다해야지 돌아가신 다음엔
아무리 후회막급의 대성통곡을 해 봤자
말짱 도루묵인 것입니다.

효도의 효(孝)라는 글자는 늙은 노인(老), 곧
부모님을 자식(子)이 업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만든 형성문자라고 합니다.

즉 키워주신 은혜에 보답하여 자식들이 늙으신
부모님을 정성껏 보살펴 드리는 것이
바로 효도의 근본이라는 것이죠.

누구라도 효도에 대하여는 말을 잘 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 효도의 실천인 효행(孝行)에 있어선
자신있게 잘 하는 사람이 점차로 드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운 즈음이라고 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함은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 하다는 뜻으로서
직접 경험해야만 비로소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뜻임은
누구라도 아는 상식일 것입니다.
 
효자의 훈훈한 효행을 '백문이 불여일견'으로서
여실히 보여준 목욕탕에서의 두 아드님과
하체를 사용치 못 하시던 두 아드님
아버님의 건승과 행운을 바라면서 목욕탕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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