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오늘은 장모님의 생신입니다.
그래서 아침을 먹으러 처갓집에 갔습니다.
어젯밤에 미리 오신 처형과 처제는
반찬을 만드느라 부산했습니다.
인사를 하고 잠시 tv를 보고있자니
먹음직한 장모님의 생신상을 차려 내 왔습니다.
하지만 요즘 제가 치통으로 고생하는 터여서
미역국과 묵 따위의 부드러운 음식 외
갈비 등은 화중지병(畵中之餠)이었습니다.
장모님과 처형께선 왜 혼자만 왔냐며 아쉬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오늘도 직장으로 나가야 하기에
이따 저녁에 온다고 했고 아들은 새벽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못 데리고 왔다고 했습니다.
조카를 시켜 소주를 사 오라고 했습니다.
그 소주를 조카에게 두 잔을 따라주고
제가 나머지를 모두 마셨습니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처제에게
술기운을 빌어 어렵게 물었습니다.
"00 아빠(처제의 남편)는 지금도 소식이 없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나 더 이상의 얘기는
마다하려는 기색이 역력한 처제였기에
저 역시도 함구하기로 했습니다.
기실 아내로부터 안 좋은 소문을 듣긴 했습니다.
아랫 동서가 극심한 경제난에 봉착한 때문으로
대학생인 자녀 모두를 휴학시킨 것도 모자라
아내(처제)와의 반목과 상충을 피해 얼마 전
잠적했다는 우중충한 소식을 말입니다.
한 때는 우리 세 동서 중(저는 둘째 사위입니다) 돈을 가장
잘 벌어 떵떵거리던 아랫 동서였습니다.
그랬던 때가 엊그제 같건만 그러나 그 뒤론
줄곧 내리막길만을 걸었지요.
"제가 돈을 더 벌면 어려우신 형님부터 도와드릴게요!" 라며
말만 들어도 고마운 소리까지 마다 않았던 동서였거늘...
헌데 다른 날도 아닌 장모님의 생신 날에까지
불참을 했으니 어찌 제 마음까지
침잠되지 않을 도리가 있었겠습니까.
지난 추석에도 안 왔기에 우리 동서들까지
으레 즐기던 당구도 못 치고
그냥 서먹서먹하게 돌아섰던 기억이 새삼스러운데 말입니다.
제게 술을 따라주신 손 위 동서형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는 일이 자신의 의지완 반대로
영 그렇게 안 되니 답답한 마음에
그만 어디론가 일시적으로 잠적한 걸 거야..."
예전, 저도 하는 일이 너무 안 되고
괴로웠던 나머지 스스로 이승을 떠나고자
무모한 짓거리를 실행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손 아래 동서는 저처럼 그러한
부끄런 작태는 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결코!
이 풍진 세상은 능력 있는 사람을
출사(出仕)치 못 하게 합니다.
또한 착하고 성실하며 가정 밖에 모르던 사람을
한순간에 나락의 벼랑으로 몰아치기도 여반장입니다.
울적함과 진득한 아쉬움을 가슴에 담고
처갓집을 나왔습니다.
'동생~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부디 기운내게나!
그리고 어서 집으로 돌아 와!
나는 자네보다 더 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았기에
그나마 지금은 조금은 나은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