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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창자수(父唱子隨)


BY 휘발유 2006-10-01

아내가 지난주 몇 일간 금강산에 갔었다.
어떤 이벤트에 당첨이 된 덕분으로 가게 된 여행이었다.
기왕지사 공짜로 보내주는 금강산여행을
부부동반으로서 가게 되었더라면 동가홍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늘상 빈궁한 필부의 처지에서
금강산은커녕 가까운 대천바다로도 못 나가고 있는
나의 처지에서 그같은 금강산여행의 수혜는
기실 감지덕지해야만 할 감사한 은전에 다름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여하간 아내의 부재 때문으로 집에는 아들과 나뿐이었다.
하지만 아들과 나는 삭막한 '홀아비생활'을
너끈하게 해낼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아들이나 나나
'홀아비 생활'엔 이력이 난 때문이었다.

우선 나는 너무도 일찍 생모를 여읜 때문으로
진작부터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는 따위에도
꽤나 소질이 있었다.
또한 아들은 작년에 군에서 제대한 '밑천' 외에도
한동안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손수 밥을 짓고
빨래까지 해결해야 하는 홀아비 아닌
홀아비 생활을 한 경험이 적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경력'이 쌓인 두 홀아비(?)가 뭉쳤으니
어찌 '과부는 은이 서 말이지만 홀아비는 이가 서 말'이란
어불성설이 통할 수 있었겠는가!

아내가 금강산으로 떠난 지 이틀 째 되는 날이었다.
퇴근하여 샤워를 하고 나와서 주방에 들어가
저녁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들은 이내 목욕탕에 들어가더니
우리 부자가 벗어놓은 옷가지를 챙겨
세탁기에 넣고 세탁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는 식사를, 아들은
빨래를 해결한 것이었다.
그같은 모습을 보자 문득 아들과 나는
오륜의 하나인 부자유친(父子有親)외에도
어떤 부창자수(父唱子隨)의 강이 질펀하게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는 듯 싶었다.

부창부수(夫唱婦隨)의 본질적 의미는 물론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이에 잘 따른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가정이 화목하고 부부간의
금실 또한 돈독함은 불문가지일 테니 말이다.

아들이 어렸을 적엔 이 녀석이 언제 크나 싶었으나
세월이란 것처럼 빠른 건 이 세상에
다시없음에 아들은 어느새 성인이 되었다.
아들 나이 때 나는 벌써 아들을 낳았으나
요즘은 만혼(晩婚) 신드롬인 시절인지라
아들 또한 언제가 돼야 결혼을 할 지는 미지수다.

그렇지만 역시나 아들이 성인이 되어
내 곁에 있는 것처럼 든든한 바람막이의
병풍은 다시없다는 느낌이다.

엊그제 아내는 금강산에서 돌아왔다.
나에겐 북한산 금강산 담배 한 보루를, 아들에겐
들쭉술을 한 병 선물했는데 하지만
심지 깊은 아들은 끝내 그 술을 고사하는 것이었다.
조만간 도래하는 우리 부부의 은혼식 때 드시라며.

그같이 착하며 아비인 내가 주장함에도
언제나 흔쾌히 잘 따라주는 아들의
어떤 부창자수(父唱子隨)가 있음에 나는 다시금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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