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592

한국을 무지무지 좋아하는 아이들


BY 허무한 2006-09-19

아이들이 학교를 다닌 후로 나도 모르는 사실을
그들을 통해 배우게 된다.
배위에 올려놓고 놀던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모르는게 없는(?) 애들이 되어 있다.
대견하기도 하고 점점 내 손길이 필요없게 되어지는
것 같아 약간의 서운함을 종종 느끼게도 된다.

그중에서도 제일 놀라운 사실은 한국인이
제일 먼저 화장지와 편지봉투를 발명하고
티비를 제일 많이 생산한다는 사실이다.
학교다닐때 활자를 제일먼저 발명한게 한국이냐
독일이냐로 분분했던 걸 빼면 이런 사실은 금시 초문이다.

내 아이들은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운 아이들이다.
물론 혼혈이지만 자기들이 한국사람이라 굳게 믿고 있는
아이들이다. 종종 급우들이 아이들에게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
라고 묻는다고 한다.
“엄마 그들은 한국도 몰라, 촌애들이라서”
사실 내가 보기엔 걔들뿐만 아니라 한국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런 말을 들으면 꼭 한국인이라고 대답해준다고 한다.
한번은 하는 말이
“엄마 , 조는 한국을 알더라. 걔는 내가 한국인이냐 물었어”
나는 종종
“ 너희들은 한국피를 받았지만 미국인이야” 라고 말해주지만
“아니야 , 난 한국사람이야” 라고 우기는 애들이다.
요즘은 삼성의 핸폰이 인기가 있어 그제품을 쓰고 있어도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여기서 볼땐 동양인 같지만 한국에서 보면 당연히
미국애 같아 보이는 애들이다.

그런 애들이니 교사가 한국에 관한 말만 하면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모양이다. 잘 기억했다가 엄마인 내게 전해주는
것이다. 요즘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국적분포가 다양하니만큼
각국의 음악이라든가 동화 그런 것들을 들려주고
이해시키는 교육을 하고 있다.

여기 미국사람, 오징어, 김치냄새 무지 싫어하는 사람 많다.
예외로 김치에 중독되어 있는 미국인도 많다.
내 태권도사범이 그 대표적인 예다.
마스타와 함께 한국식당을 갔다온 후에 맛본 그 김치맛을 잊지못해
내게 간절히 부탁했다. 왈맡에도 팔지만 그 맛은 맛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반면 그 부인은 그 냄새 무지 싫어한다고 했다.
“여보 집에서 먹더라도 밖에 나갈땐 다른 사람 생각해서 먹지마”
했다나. 사범이 그 말을 하길래
“ 안 먹어본 사람은 몰라요” 하면서 둘이 큭큭됐다.
얘기가 약간 빗나갔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딸아이가 마른 오징어를
좋아해서 학교에 간식으로 가져간다는 것이다.
“그냥 집에서 먹고 말지 가져가지 마라. 애들이 냄새난다고 가까이
오지 않을거다”
딸아이 배포좋다.
“엄마는 별 걱정을 , 내가 먹겠다는데 “
그리고 싸가지고 갔다. 학교에 갔다와서는
“애들이 그게 머냐고 좀 달라고 난리더라. 그래서 아주 조금 찢어서
줬더니 좀 더 달라고 난리더라”
정말일까? 여하튼 딸아이는 거침이 없다.
여기 사람들 문어먹는다고 말하면 거짓말 좀 보태서 기절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이들이 한국을 이렇게 좋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뭘까?
내가 알기론 2002년 한국방문 때문인 거 같다.
여기 사람들 친척이라 해도 적당한 거리가 있는 거 같다.
물론 아이들 무지 이뻐하는 풍토이긴 하지만 말이다.
동생집에 머물면서 한달가량 있으면서 내친구도 만나고
다른 형제들도 만났다.
가는데마다 살갑고 다정한 손길. 특히 자기 아이들보다
더 위해주는 것에 무지 감명을 받은 거 같다.
말하자면 한국인 특유의 정에 완전히 빠져버린 것이리라.
또래의 외사촌과 말도 안 통해도 손잡고 피아노 학원으로
문구점으로 수퍼로 잘 돌아다니더라.
자기들 돈내고 군것질도 하고 그러는게 무지 재미있었던 같다.
특히 여기서 타보지 못했던 버스랑 기차여행을 무척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버스나 기차에선 가끔 드러내놓고 이쁘다고 노골적으로 만져보자는
사람들땜에 딸아이가 곤란해하긴 했다. 여기선 그냥 보통인데 한국사람들
눈에는 이뻐보였나보다.
여기는 항상 차끌고 부모랑 같이 간다.
특히 남동생이랑 설악산에 갔을때 무등도 태워주고 했던 기억을
지우지 못하는 거 같다. 강릉이랑 경포대를 다닐때 올케, 그러니까
외숙모의 손을 막내는 놓치지 않고 잡고 다녔다.
사내아이가 무지 정이 많다. 올케는 자기애들을 제쳐놓고
막내의 손을 어디에 가든 꼭 잡고 다녔다.
미국에 올때쯤 애들이 ‘외숙모’ ‘삼촌’ ‘이모’란 말들도
익숙하게 하게 되어 있었다. 여하튼 어마어마한 환영을
피부로 느낀 애들이 한국을 잊지 못하는 건 아마도 당연한 게 아닐까?

우린 매해 여름마다 휴가를 간다.
난 귀차니즘 땜에 어디를 가는 것도 사실 별로지만
남편은 꼭 연중행사로 어디든 갔다와야 한다.
작년에는 디즈니를 갔다왔다.
애들이 무지 좋아하고 나도 아이가 되어 즐기다가 왔다.
애들에게 물어본다.
“디즈니에 가고 싶니, 아니면 한국에 가고 싶니?”
두 아이는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한국”
흠, 나도 가고 싶다. 새 올케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고
조카들, 동생들, 언니들, 친구들이 보고싶다.
남편도 한국 무지 좋아하니 가자고 잘 꼬셔볼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