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로움을 참는 어느정도의 힘은 행복한 생활에 필수적이다.
위대한 저자의 책이 매순간 흥미로왔는가?
위인의 삶이 매순간 빛났는가?
아니다. 위대한 책 역시 길고 긴 지루한 부분을 지니고 있었고
위대한 생애 역시 초라하고 볼품없었던, 흥미없었던 시절을 포함하고 있었지.
다소간의 권태로움을 참아내는 능력을 길러야 해.
이론은 아주 훌륭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매사의 단조로움에 길들여진 일상은
세월이라는 허울속에 떠넘기려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행복한 시간이 도래할까?
한없이 이유없는 무기력증이 밀려온다.
곰팡이 핀 오래된 반찬처럼 변해가는 두 뇌(腦)를 느낄뿐이다.
자신에의 침잠(沈潛)이 너무 심각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자하는 충동이 억제되면서 꽃병속에 꽂아둔 꽃처럼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나보다.
야산의 작은 꽃송이 하나, 풀벌레 한마리,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푸성귀를 파는 노인네.
이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 권태를 이겨낼수는 없다.
이럴때 난 정지된 내면의 정적으로 인해 뼛속까지 혼자임을 느낀다.
아직 건너야 할 강이 깊고도 넓다.
기운을 여기서 소멸해 버려선 안되는데 머릿속에서만 뱅글뱅글 돌 뿐이다.
유심소작(唯心所作)이란다.
그렇지. 다 내 마음이 지어낸 바요, 내 마음의 산물인것을.
육체를 괴롭힌다. 땀을 흘리며 오래동안 걸어보았다. 가파른 산길로만 걸어도 봤다.
온집안 시끄럽게 바하를 틀어놓고 그 경쾌함에 빠져도 봤다.
베토벤이나 차이코프스키보다는 바하가 조금은 기분을 띄워주거든.
그럼 뭐해. 그때 뿐인걸.
이 충족되지 못하는 허허로움의 근원이 대체 어디서 오는거지?
그건 정신적 만족의 결여였어. 그래, 바로 그거야.
운명을 사랑하래. 내 운명을. 물론 사랑하지. 내 방식대로 말이야. 견딜뿐만 아니라 사랑도
하려고 하고 있어.
사랑하는 맘이 너무커서 허허로운건 아닐까? ㅎㅎㅎ
결론이 없군. 그냥 이 권태에 아주 푹 빠져서 절여지는 수 밖에.
|||